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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② : 국회발(發) 신규사업 74%는 '지역구 사업'

A: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도 있네요."
B: "청소년 정서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C: "왜 예산에 반영이 안됐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제4차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2017년 11월 16일) 회의록 中>

 
A, B, C는 모두 국회의원이다. 송기석 의원(국민의당), 김한정 의원(더불어민주당), 이철규 의원(자유한국당)이다. 청소년 정서에 트로트가 어떤 도움이 될지 단정할 수 없지만, 세 의원의 대화로, 정부안에 없던 2억 5천만 원의 예산이 뚝딱 만들어졌다.
 
국회는 정부 예산을 심의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심의 역할을 하면서, '트로트 가요제 예산'처럼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과정은 과연 예산의 최적 배분이라는 대의와 부합하는 것일까.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예산회의록 전수분석① 증액 'TOP 3'는...> 기사에 이어 2018년도 예산 편성의 이면과 숨은 방정식을 파악하고자 국가 예산 사업을 추적했다. 또, 편성 근거를 확인하고 낭비 예산을 찾기 위해 국회 예산 논의 과정이 담긴 회의록 4,703장을 전수분석했다.
 
[마부작침] 회의록 링크
※  국회 문제예산 회의록 보기 http://mabu.newscloud.sbs.co.kr/20180117news/

● 국회에서 늘어난 신규사업 447개
 
예산안은 통상 각 국가기관에서 기획재정부에 예산요구서를 제출하고, 기재부는 이를 조율 취합한 뒤,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9월초)에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 상임위원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소위, 소소위 포함)에서 심사한 뒤, 본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확정된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 예산안은 일부 조정된다. 정부가 2017년 9월에 국회에 제출한 지출 예산액은 428조 9,713억 원이었는데,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1,374억여 원이 감액된 428조 8,339억 원으로 최종 예산이 확정됐다. 외관상 정부안을 일부 감액해 전체 예산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감액 또는 전액 삭감된 정부 예산은 6조 2,903억 2,632만 원이고, 증액된 정부 사업은 4조 2,756억 9,100만 원이다. 감액과 증액의 차가 약 2조 원 이상 난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전체 예산은 2조 원이 줄어들어야 되는데  실제 줄어든 건 1,300억 여 원이다. 여기엔 숨은 변수가 있다.

[마부작침]예산

국회에서 당초 정부안에 없던 신규사업이 만들어지면서 정부안 증감액 차이보다 예산이 결과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른바 '국회발(發) 신규사업'이다. <마부작침>이 예산안을 분석해본 결과, 국회발 신규 사업은 447개, 1조 2,580억 원 규모다. 국회의 한 보좌관은 "정부안에 반영되지 못한 예산이 부처의 요청으로 국회에서 신설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의원의 제안으로 만들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 신규사업 122개 국토부 vs 신규사업 제로 기관 24개…신규사업의 빈익빈 부익부
 
국회발 신규사업이 늘어난 이유를 알기 위해선 먼저 소관 부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마부작침>이 국회발 신규사업 447개를 전수조사해 소관 부처를 분석해본 결과 특이점이 발견됐다. 유독 특정 부처에 신규사업이 몰려있다는 점이다.
 
신규사업이 가장 많이 증가한 부처는 국토부다. 국회에서 122개의 신규사업이 만들어졌는데, 전체(447개)의 27.3%나 된다. 액수는 2,600억 원으로 국회발 신규사업 액수의 20.8%다. 문체부도 58개, 환경부도 39개 신규사업이 만들어졌다. 반면, 국회 단계에서 단 한 건의 신규 사업도 생기지 않은 기관도 있다. 대법원, 외교부, 관세청, 방통위, 통계청 등으로 54개 국가 기관 중 24개로 파악됐다.


※ 부처별 신규사업 전체보기 ☞ http://bit.ly/2Df4orz
[마부작침] 부처별 국회발 신규사업 Top10
 ● 국회발 신규사업 74.3%가 '지역구 사업'

-전문가 "강(江)이 없다고 하면 강도 만들어주는 게 의원"
 
국회발 신규사업을 두고 부처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국회가 유독 국토부, 문체부, 환경부를 좋아해서일까. 신규사업의 성격을 보면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있다. <마부작침>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발 신규사업 447개의 사업 내용을 추적했다.

그 결과, 국회발 신규사업 447개 중 '지역구 사업'은 331개로 파악됐다. 즉, 국회발 신규사업의 74.3%가 이른바 국회의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지역구 사업'인 것이다. 국토부 주관 신규 사업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으로, 도로, 공항, 철도 건설 등 부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즉, 청주국제공항 확장, 영일만횡단 고속도로 신규 사업 등 '특정 지역'에 무언가를 건설하거나 보수하는 사업들이다.
 
신규예산이 많이 편성된 다른 부처에서도 이런 경향성은 드러났다. 문체부는 아시아송페스티벌 같은 지역 축제 사업, 환경부는 서울시 하수관 정비 예산 등 환경 정비 사업 같은 것으로 특정 지역과 연결돼 있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다리를 건설해주겠다고 했더니, 유권자가 강이 없다고 하면, 그럼 강도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게 국회의원"이라며 "국회 단계에서 신규 사업이 늘어난 건 의원들의 요구로 무분별하게 지역 개발 사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부작침] 예산안

※ 국회발 신규 사업 전체보기 ☞ http://bit.ly/2EGhBFO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부보다 지역 상황을 잘 아는 국회의원이 지역 사정을 반영해 사업을 신설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점이 있다고 말한다. 국회발 신규사업도 정부가 간과한 부분을 국회의원이 보충해 예산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꼼꼼한 검증은커녕, 나눠먹기식 배분, 꼼수 편성이 적잖다는 점이다.
 
● 사업성 낮고, 불용 처리 알면서도…"10억 원 책정"
 
국회에서 신설된 '영일만횡단구간 조사' 예산도 이런 예산으로 볼 여지가 크다. 해당 예산은 사업 타당성이 낮아 이미 편성된 예산도 불용(미사용) 처리된 사업이지만, 신규 예산 10억 원이 또 다시 생겨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회의록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마부작침]예산

회의록에 드러나듯 16~17년에 편성된 예산 40억 원은 불용(미사용)됐고, 타당성이 낮다는 국토부의 설명까지 있었지만, 의원들의 편성 요구와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한 마디로 일단락됐다. "불용되면 뭐 어쩔 수..."
[마부작침]예산


 설계가 끝나지 않았는데 공사비부터 편성된 경우도 있다. '함평-해보 국도건설' 예산 5억 원이다. 국토부 도로국장은 "2018년 10월에 설계가 끝날 예정이라 착공을 못해 공사비를 반영해도 집행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의원들의 요구로 공사비 5억 원을 편성했다. 도화-송학 국도대체우회도로 건설 예산의 경우 실시 설계까지 완료돼 설계비가 필요 없는 상황이었지만, 5억 원이 최종 편성됐다는 사실이 회의록에 드러나 있었다.

● 논의도 고민도 없다 '뭉텅이 처리' 예산…"우리가 무책임하다"
[마부작침]예산


 부산, 천안 아산, 고흥, 강원 지역 사업으로 각 10억 원 씩 40억 원 대 신규 사업이 탄생한 과정이다. 의원들의 20억 원 요구에 부처의 10억 원 답변, 이 찰나의 협상(?)으로 편성은 끝났다. 정부안에 없던 사업이었지만, 필요성, 타지역과 형평성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이른바 ‘뭉텅이 처리 예산’이다. 지역별 나눠먹기식 편성으로 갈등 없이 처리된 것이다.
 
<마부작침>의 분석 결과, 이런 식의 뭉텅이 처리 예산은 환경부 하수관로 정비사업, 국토부 철도산업발전지원 사업 등 모두 42개로 718억 4,500만 원에 달했다. 이를 두고 국회 관계자는 "회의장에서 별다른 논의는 없었지만, 서면을 통해 관련 부처와 의견 교환을 한다”며 “예산 심의의 효율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논의 없이 쉽게 편성될 예산이었다면, 부처가 당초 정부안에 포함시키면 될 일이다. 또 '뭉텅이 처리'는 미포함된 지역, 특히 예산이 더 절실한 지역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산 심의의 효율이라는 말로 설명이 어렵다. 특히 이런 문제점은 의원들도 알고 있다. 단지, 알면서도 바꾸지 않을 뿐이다. 회의록을 보면 이런 정황은 잘 드러난다.

[마부작침] 환경부 하수관로 사업
국회발 신규사업 편성을 두고 일부 의원들이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회의록에서 언급됐듯 이미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사실상 견제나 제재의 방법은 없다.
 
● 출처도 알 수 없는 축제 사업…"A팜쇼 편성 이유 몰라…이름 바꿔서 집행"
 
'청소년 트로트가요제' 예산은 정서 함양의 효과를 두고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단 한 줄이라도 편성 근거는 등장했다. 하지만, 아예 근거도 출처도, 편성 과정도 알 수 없는 신규 사업도 있다. 'A팜쇼' 예산 3억 원도 그 중 하나다.
 
'A팜쇼'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 언론사의 공동 주최로 열린 농업 분야 취업 창업 행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행사는 정부 예산이 아닌 부처 자체 자금을 이용했고, 올 해 정부 예산안에도 포함 시키지 않았다. 국회 논의 단계에서 신설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편성 과정은 관련 상임위나 예결위 회의록에 등장하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소액 예산이다 보니 별다른 논의 없이 일괄적으로 최종 예산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예산을 민간 행사에 쓸 수는 없기 때문에 기재부와 다시 협의해서 예산 명칭(A팜쇼)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사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마부작침]예산










[마부작침]예산


 ※ 국회발 축제 예산 전체보기 ☞ http://bit.ly/2DwN4Lr  

국회발 신규사업 목록에선 A팜쇼와 같은 축제 예산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마부작침> 취재 결과, 477개 신규사업 중 확인된 것만 25개(105억 원)로 분석됐다. 이 중 개최 장소가 정해진 이른바 '지역 축제 사업'으로 볼 수 있는 건 15개(72억 5,000만 원)로 드러났다. 축제 사업이 국회 단계에서 늘어나는 이유다. 국회 관계자는 "지역 행사나 축제는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는 게 원칙이고, 불요불급한 사업이라 정부가 예산안에 포함 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의원들의 요구로 신설되면 지역구나 의원 입장에선 다행스럽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땐 예산의 비효율적 분배이자 낭비"라고 지적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분석가 (hyeminan@sbs.co.kr)
디자인/개발: 임송이
인턴: 김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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