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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영화 1987 속 인물들 지금은 어디에?

[리포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영화 1987 속 인물들 지금은 어디에?
1987년은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꿨던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이제는 역사로 남은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한 영화 한 편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87>입니다.
1987
특히 영화의 시선이 1987년의 '사건'들 뿐 아니라 1987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어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영화 <1987> 속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영화 <1987>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하자 이를 덮으려는 정부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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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987><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그래픽 및 사진 //" data-captionyn="N" id="i20113342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80105/20113342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1987년 1월, 경찰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이던 박종철 군을 불법 체포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고 갔습니다. 경찰은 박종철 군에게 선배이자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 씨의 소재를 말하라며 그를 고문했고, 1월 14일 박종철 군은 심한 고문 끝에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경찰은 인근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오연상 씨를 불렀으나 오 씨가 도착했을 때 이미 박종철 군은 숨진 뒤였습니다. 다급해진 경찰은 보호자와 합의를 마쳤다며 서울지검에 박종철 군 시신 화장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검사였던 최환 변호사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박종철 군이 사망한 지 하루 뒤인 1월 15일 저녁, 치안본부 책임자는 사건 개요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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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5일 치안본부가 발표한 사건 개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종철은,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고 여겨져 1월 14일 10시 51분경부터 심문을 시작, 박종운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하고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 //
■ "박종철 군 사건은 완전 조작극이야" 진실을 찾아서 움직인 사람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까지 내놓으며 고문치사를 단순 쇼크사로 은폐, 조작하려는 경찰의 시도에 사람들은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 언론사들은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고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는 부검의를 설득해 물고문과 관련된 양심선언을 받아냈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이부영 씨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실을 적은 글을 비밀리에 교도관들에게 건넸고 이는 재야인사였던 김정남 씨에게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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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동아일보><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기자 출신 이부영 씨가 1987년 2월 23일 쓴 쪽지] "友村(우촌·김정남의 아호)前(전), 모든 것은 잘돼 가는 줄 아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급히 몇 자 적어 보내네. 박군 건으로 구속된 조·강 건은 완전 조작극이야." //" data-captionyn="N" id="i201133428"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80105/201133428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이 쪽지를 전해 받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198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 미사에서 이 내용을 폭로했습니다. 이 폭로로 민주화 운동의 흐름은 더욱 거세졌고, 1987년 6월 9일 민주화를 외치다 전경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은 이한열 열사의 사망은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영화 <1987> 속 '그때 그 사람들'…서로 다른 행보

영화 속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주도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박처원 치안감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실존 인물로 고문사건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1996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박처원 치안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의 은신과 도피를 지원했다가 2000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처원 치안감
경찰의 은폐를 막기 위해 박종철 군 부검을 지시했던 최환 변호사도 실존 인물입니다. 6.10 민주항쟁 이후 서울지검장을 맡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현재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던 신성호 기자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윤상삼 기자는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기자상을 수상했고 1999년 간암으로 별세했습니다.
최환 신성호
박종철 군의 선배 박종운 씨는 '박종철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지낸 뒤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했습니다. 박 씨는 이후 16대와 17대,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감옥에서 쪽지를 작성했던 이부영 씨는 1990년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으나 현재는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박종운 이부영
김승훈 신부에게 쪽지를 전달했던 김정남 씨는 김영삼 정권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현재는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정남
?*그래픽
SBS 김영아 기자
꼭 30년 뒤에 스크린이 되살려 낸 1987년의 벅찬 기억. 그러나 영화는 지나간 승리와 환호에 취하는 대신 깊은숨을 쉬며 지금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다시 30년이 흐른 뒤에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2017년을 기억하게 될까?' //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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