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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희생하는 존재"…임신하자 회사가 내민 것은?

임신했다고 하자
회사가 내민 야근 동의서
저는 대구가톨릭대병원의
N년 차 간호사 A입니다.

몇 년 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유산한 경험이 있습니다.
많은 병원들이 그렇듯
저희 병원도 간호사의 근무 환경은 열악합니다.
간호사 한 명 당
평균 담당 환자 15명.

너무 바빠 화장실도 못 간 탓에
방광염에 걸리는 동료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초기 임산부가 밤을 새며 하기엔
정말 버거운 일입니다.
걱정이 돼 아이 가진 지
얼마 지나
병원 측에 임신 사실을 알렸습니다.
"네, 알았어요."

회사 관계자가
저를 따로 부르더니
종이 한 장을 쓱 내밀었습니다.
임신한 직원에게 받는
야근 동의서였습니다.
이곳 간호사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누가 임신을 해도, 아파도
자신의 환자를
대신 맡아줄 대체인력은
없다는 걸 말이죠.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밤 9시부터 아침 8시까지
한 달에 꼬박 7~8번
야근을 했습니다.

뱃속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버텨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아기를 유산했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아기를 보내다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따질 수 없었습니다.
이미 야근 동의서까지 썼기 때문입니다.

'유산 휴가'를 받았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누군가의 폭로로
대구가톨릭대병원의
야근 동의서는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병원 측은 더 이상
임신한 간호사에겐
야근을 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첫 아이를 잃었습니다.
"간호사는 봉사하고
희생하는 존재들이다"

병원에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신부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왔던 말입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이런 희생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임신한 간호사를 대상으로 야근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입니다. 해당 병원에서 재직 중인 간호사 A 씨도 몇 년 전 임신한 몸으로 자주 야근을 하다 유산한 경험이 있습니다. 간호사 A 씨를 스브스뉴스가 인터뷰 했습니다.

기획 하대석, 김경희 / 그래픽 김민정

(SBS 스브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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