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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④ : 국회의원의 예산 도깨비 방망이 "못 쓸 돈도 따낸다"

"상징적으로 100억만 더 넣겠습니다. 그래도 못 씁니다."

쓰지도 못 할 예산을 '상징적'이라는 이유 만으로 증액할 수 있을까. '예산은 국민 세금'이라는 당위까지 갈 필요도 없다. '상식적'으로 못 쓸 돈을 예산으로 잡는 건 이상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국회에선 가능했다.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예산회의록 전수분석①/②/③법률 어긴 국회>에 이어 예산 심의 과정을 담은 국회 회의록 4,703장을 전수분석했다. 또, 예산 편성 과정을 추적해 국회의 예산 편성 실상을 공개한다.
 

[마부작침] 예산안
※ 국회 문제예산 회의록 보기 http://mabu.newscloud.sbs.co.kr/20180117news/

●예산 나와라 '뚝딱'! 상징적 예산 증액 100억 '인천발 KTX'...세트로 증액된 '수원발 KTX' 100억
 
'상징적 예산 증액'이 이뤄진 현장이 있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 1차 회의(2017년 11월 6일). 소재는 '인천발 KTX 사업' 예산이고, 이 드라마의 주연은 국회의원, 조연은 국토부 간부였다.

[마부작침]예산

드라마의 내용은 이렇다. 정부가 원안에서 잡은 '인천발 KTX 사업' 예산은 135억 원이었다.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과 바른정당 이학재 의원은 318억 원을 증액하는, 453억 원의 편성을 요구했다. 국토부 입장에선 올해 10월 설계가 완료될 예정이고, 연말 착공 공사비도 이미 감안해둔 터라 추가 예산이 필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예산을 증액해도 못 쓴다는 거였다. 하지만, 의원 요구를 받아들여 '상징적 100억 원 증액'으로 결정됐다.

'수원발 KTX 사업' 예산 역시 '인천발 KTX 사업'과 함께 100억 원이 증액됐다. 맹성규 국토부 차관이 당초 예산인 79억 원에 이미 "연말 착공 수요가 다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우현 의원의 반말 섞인 "증액해"라는 강한 요구가 이어지자, 179억 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의원들은 왜 이렇게 강한 톤으로 증액을 요구한 걸까. 이우현 의원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 의원은 건설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된 상태여서 직접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의원실 관계자는 SBS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정부는 기본적으로 SOC 예산을 보수적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인천발 KTX 사업은 경기와 인천의 교통망 확충 사업이라 경기 인천 시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조속한 사업 진행을 위한 목적 때문에 증액을 요구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예산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국회...무역보험기금 출연금 300억 원
 
상징성을 이유로 100억 대 예산 증액이 이뤄지는 경우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300억 대 예산이 신설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역보험기금 출연 예산 300억 원이 바로 그렇다.
[마부작침]예산

무역보험기금 출연 문제의 경우 산자부는 예산 편성을 원했지만, 기재부가 반대하면서 정부 원안엔 포함되지 않았다. 우선 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무역보험기금은 중소기업 수출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제도다. 다만, 아무리 필요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규모나 범위를 정할 땐 근거를 가지고 꼼꼼하게 액수를 정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회의록에선 이런 논의나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의원들의 경쟁적인 증액 요구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보에서 특별히 부탁한 예산인 것 같은데, 위원(국회의원)님들도 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역보험공사는 방만한 경영 등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기업 대신 대출금을 변제하는 규모가 커지면서 무역보험기금의 건전성이 나빠졌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무역보험기금 특별출연금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2015년 모뉴엘 사태 등 보험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무보의 신뢰성이 급격히 하락하며 "줄줄 새는 무보의 재정을 국민 혈세인 세금으로 계속 충당하면 안된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있었다. 하지만, 회의록엔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도, 무역보험기금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논의도 없었다.

산자부 관계자는 SBS와 전화통화에서 "많은 의원들이 서면 질의를 통해 예산 산출 근거를 제시해 증액을 요청했던 사안이었다"며 "기금은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수출에 도움이 되는 건데, 편성이 안됐다면 기금을 줄 일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필요 없는 사업은 없다"면서도 "한정된 국가 지출 규모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기금은 작년 추경에도 편성돼 순위에서 밀려 정부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억 받을게요"...협상장 or 카지노?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소관 부처가 반대하는데도 신설된 예산이 있다. 국기원 리모델링 예산 30억 원. 해당 논의가 이뤄진 국회를 과연 '협상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카지노'라고 비판해야 마땅할지는 회의록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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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관 부처가 반대했지만, 국회의 신규 편성으로 30억 원 예산을 받게 된 곳은 문체부, 엄밀히 말하면 국기원이다. 그런데 이은재 의원이 왜 "받는다"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국기원이 위치한 곳이 이은재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남구 안에 있다는 것과 상관이 있는 걸까.
 
30억 원대 신규 예산이 지역구 챙기기 차원에서 필요했다는 의구심이 드는데, 편성 과정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예산 편성 과정이 마치 '베팅'처럼 이뤄져서 만이 아니다. 국기원은 노태강 문체부 차관이 언급했듯 방만 경영을 비롯해 각종 비리 의혹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기원은 국기원 간부의 외유성 출장 의혹 뿐만 아니라, 공금 횡령과 채용 비리 혐의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버스 와이파이 삭감 이유..."젊은이들이 버스에서까지 핸드폰 봐서야... 교육적으로 안좋다"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증액 또는 신설되는 예산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사유로 감액 되는 예산도 있다. 버스 와이파이 사업이 대표적이다. 앞서 <②국회발(發) 신규사업 74%는 '지역구 사업> 기사에서 "청소년 정서에 좋다"는 이유로 신설된 '청소년 트로트가요제 예산'과 반대로 이 예산은 "청소년 교육에 나쁘다"는 이유로 삭감됐다.
[마부작침]예산

버스 와이파이 구축 예산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업 중 하나다. 소득 수준에 따른 무선인터넷 이용 격차를 해소한다는 목적에서 12억 5,000만 원이 정부 원안에 포함됐지만, 국회 단계에서 6억 원이 삭감됐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제시한 자유한국당 김기선 의원 외에도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조한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 등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당초 정부안에 48억 원이 책정된 '반려동물산업 활성화 핵심기반기술개발' 예산도 14억 5,000만 원이 삭감돼 33억 5,000만 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에서 논의가 벌어졌고, 자유한국당 곽대훈 의원 등의 반대가 있었다. 곽 의원의 감액 이유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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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당 김기선 의원은 "시범사업 형태로 시작한 뒤 성과를 보고 본격화하자"며 감액을 주장했고, 다른 야당 의원들도 감액을 주장하면서 당초 정부 예산보다 줄어들었다.
 
●의원에게 직접 설명하지 않은 죄...'징벌적 감액(?)' 예산
 
예산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차로 감액되는 예산도 있지만, 부처의 태도가 도마에 올라 '징벌적 감액'이 이뤄진 사례도 확인됐다. '범부처 기가코리아 사업' 예산의 경우, 588억 8,400만 원에서 573억 8,4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소관 부처는 왜 '15억 원' 짜리 벌을 받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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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랬다.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관련 질의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보냈다. 하지만 과기부는 황 의원에게 직접 설명을 하지 않았고,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진규 차관이 "(황주홍 의원) 보좌진께는 (찾아가서) 설명을 드렸고 위원(황주홍 의원)님께는 설명 드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설명했는데, 의원의 화를 풀게 하기엔 부족했던 모양이다.
 
기가코리아 사업 예산은 일부만 감액 됐지만, 아예 삭감된 예산도 있었다. 혁신읍면동 시범사업 추진 예산 205억 원, 혁신읍면동 추진단운영 예산 4억 7,000만 원이 그런 사례다. 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정책으로 자치분권과 주민 참여를 높이기 위해 읍면동 주민자치회 설치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를 두고 여야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다. 여당은 대통령 추진 사업이라며 통과를 주장했지만, 야당은 일제히 "정부 예산으로 관변단체를 만들 수 있다"고 반대했다. 또, 지금까지 정부 지원 없이 주민자치회가 운영됐다는 점에서 낭비라는 이유로 전액 삭감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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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도, 타당성도 검증되지 않은 예산 감액
 
국회가 국가의 재정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예산을 감액하는 건 당연한 권한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증액과 신설, 그리고 감액 역시 타당한 사유와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일부 감액 사례를 두고 논란이 생기는 이유도 이런 사유와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예산 심의는 국회의원 자질과 직결되는 문제로, 국회 심의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전제했다. 배 교수는 "증액, 신설, 감액이든 그 바탕엔 근거와 사유가 있어야 되는데, 국회엔 추상적이고 감성적 논의만 있다"고 말했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말로, 한마디로 '디테일에 약하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정부가 법에 따라 9월 초에 예산안을 제출하더라도, 국회가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건 11월 초,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심의가 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기준과 검증이 결여된 정부 예산안 자체도 문제로 꼽았다. 배 교수는 "현재 정부는 부처의 한도를 정해주고, 각 부처가 그 안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Top Down)로 예산을 편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형식적인 평가만 있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한 해 지출이 끝나면 목표 달성이 얼마나 됐는지, 사후 평가를 필수적으로 한 뒤, 다음 해 예산 편성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다 보니 근거도, 타당성도, 효과도 없는 예산 신설, 증액, 감액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분석가 (hyeminan@sbs.co.kr)
디자인/개발: 임송이
인턴: 김인곤
 

▶ [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① : 증액 'TOP 3'는…행안, 교육, 노동
▶ [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② : 국회발(發) 신규사업 74%는 '지역구 사업'
▶ [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③ : 법률 어긴 국회…'꼼수 편성' 알고도 통과
▶ [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⑤ : 심의 흔적이 안 남은 예산 117개 "어떻게 심의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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