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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승부조작이 관행이라는 감독…말 못하는 선수들

[취재파일] 승부조작이 관행이라는 감독…말 못하는 선수들
[2018.01.03 8뉴스 관련기사] ▶ [단독] "감독 아들 위해 강제 기권" 테니스 승부조작 수사

지난해 4월 4일. 서울 장충장호테니스장 7번 코트에선 전국체전 고교부문 서울대표 선발 예선 8강전이 열렸습니다. 시합에 나선 두 선수는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 서울 모 고등학교 2학년 A군과 3학년 B군입니다. 1세트는 6:2로 A군의 승리. 이어진 2세트에서도 A군이 4:2로 앞서나갑니다. A군의 승리가 유력해진 상황. 갑자기 두 선수의 스승인 학교 감독이 A군의 기권을 선언합니다. A군의 팔 부상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갑작스런 기권패를 인정할 수 없었던 A군은 한참 동안 코트를 떠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기 시작 전 감독은 A군을 대회 본부석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깨동무를 한 뒤 A군에게 “적당히 몸만 풀다 나와. 3세트까지만 하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B군에게 경기를 내주라는 지시였습니다. 감독의 부당한 지시에도 A군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기권 선언 탓에 다 이긴 경기를 놓쳤습니다.
 
기권승을 거둔 B군은 사실 감독의 아들이었습니다. 전국체전 서울대표 선수는 모두 6명입니다. 8강전을 이겨 4강에 진출하면 대표 선발이 확정됩니다. 이후 전국체전에 나선 B군은 서울 대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전국체전과 같은 큰 대회 메달 수상은 대학 입시에서 사실상 당락을 결정짓는 큰 가산점이 됩니다. 감독이 대학 입시를 앞둔 자신의 아들을 전국체전에 출전시키기 위해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 감독의 황당한 해명

감독은 자신이 A군의 기권을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른 학교 감독들과 합의된 사항이란 놀라운 얘기를 꺼냈습니다. 8강전에서 같은 학교 선수끼리 경기를 하게 될 경우 ‘시드 선수(랭킹이 높은 선수)’를 무조건 진출시키는 것으로 미리 합의했다는 겁니다. 감독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학교 감독들이 조직적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한 게 됩니다. 감독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서울 지역 테니스팀이 있는 고등학교는 3곳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8강에선 이번 경우처럼 같은 학교 선수끼리 경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8강 승리는 전국체전 진출로 직결됩니다. 특정 고교 에이스 선수와 실력이 좀 떨어지는 선수가 8강에서 맞붙게 될 경우. 학교 측에서 더 많은 선수를 체전에 출전시키기 위해 에이스 선수를 일부러 패하도록 작전을 짤 수 있습니다. 에이스가 2명의 추가 출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패자부활전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학교 간 체전 출전 TO를 더 확보하기 위해 눈치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감독은 다른 두 학교 감독과 ‘8강전, 같은 학교, 시드 선수 우선 출전’이라는 걸 합의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 감독들과 합의된 사항을 이행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한 A 선수가 다른 학교와의 약속을 깨려고 해 자신이 기권을 선언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단 경기 당일 “팔 부상이 우려된다”고 했던 기권 이유는 거짓말이 됐습니다. “승패를 미리 정해 놓고 경기를 하는 게 승부조작이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감독은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 경기 결과를 합의한 것이다”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취재진이 문제의 감독 외에 다른 학교 측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애초에 그런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8강전 다른 경기에서 같은 학교 선수끼리 맞붙은 경우는 또 있었는데, 상위 시드 학생이 패배한 결과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의 감독에 대해선 고발장이 제출돼 있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감독이 주장하는 8강전 승패 사전 합의가 사실인지, 아니면 자신의 아들을 밀어주려다 들킨 감독의 거짓말인지 여부는 검찰이 밝혀낼 일입니다.
아들 위해, 제자 기권시킨 테니스부 감독
● 입을 열지 못하는 학생들

문제는 기권패를 당한 A군입니다. A군은 아직 고교 2학년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합니다. 감독의 지도 아래 훈련도 받고 대회도 출전해야 합니다. A군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당시 일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8강전에서 패할 것을 감독에게 지시받았는데 경기를 하다 깜빡해 앞서나간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아프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한 기권패를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의 감독은 서울시테니스협회에서 고위 임원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국내 유명 대학 테니스부 감독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군과 학부모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이 학교의 한 관계자는 “감독이 자신의 아들을 밀어주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1학년 때부터 전국 대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학내 선발전에서 탈락할 경우 재경기를 치르기도 했다”는 겁니다. 많은 학생들이 황당해 했지만 그 누구도 문제제기는 하지 못했다고도 전했습니다.
 
● 대학 입시를 앞둔 승부 짬짜미는 관행?

취재진이 접촉한 모 테니스팀 고위 관계자는 “이런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습니다. 테니스는 개인종목이기 때문에 잘하는 특정 선수가 1년 동안 풀타임으로 경기를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고, 입상을 싹쓸이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부터입니다. 실력이 부족한 학생이 대학을 못가면 감독과 코치 학부모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감이 작동하고, 또 대학 진학 성적이 저조하면 감독이나 코치들의 평가도 나빠지기 때문에 짬짜미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에이스급 잘하는 선수들은 대학 스카웃이 결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대회에선 특정 선수의 대학 진학을 위해 승부 몰아주기 등이 종종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 아마 대회에선 승패를 결정한 뒤 경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던 겁니다. 그래서 문제의 감독은 “승부 조작이 아니라 승패를 미리 합의한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당당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승부조작의 피해는 학생 선수의 몫

대학 입시를 앞두고 승부조작이 발생하고 그것을 묵인하는 관행이 이어져왔다면. 학생도 한번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다음번 혜택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입을 닫게 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같은 승부조작 관행의 최종 피해자는 결국 학생들입니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승패를 인정하는 게 기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하지만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목적으로 어른들에 의해 승부가 조작되고. 학생들이 이를 묵인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선수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이런 승부조작 짬짜미 관행은 테니스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도 비일비재하다는 제보가 계속 들어옵니다. 검찰이 이번 사안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만큼 테니스뿐 아니라 다른 아마 스포츠와 대학 입시 사이에 존재하는 승부조작의 고리가 끊어지길 기대합니다. 더 이상 어른들에 의해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 나선 학생 선수들이 눈물 흘리는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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