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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① : 증액 'TOP 3'는…행안, 교육, 노동

428,833,912,567,000
 
무려 15자리 숫자다. 여기에 '원(₩)'을 붙이면 바로 2018년도 대한민국 예산 총액이 된다.

사백 이십 팔조 팔천 삼백 삼십 구억 천 이백 오십 육만 칠천 원.

한 번에 읽는데 8초 가까이 걸리는 거액이다. 428조 원. 수억 원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게 일생의 목표인 경우가 태반인 대한민국 서민들이, 현실에서 '200억 원대 초호화 빌라 구매' 같은 건 그닥 생각조차 안하는 것처럼, 428조 원이라는 국가 예산은 국민 대부분에겐 나와 무관한 '비현실의 영역'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가렴주구(苛斂誅求),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세금은 국가와 함께 존재해왔다. 국가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기도 했고(가렴주구), 이런 가혹한 징세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가정맹어호)로 여겨지기도 했다. 근대 국가에서도 '납세'는 시민들의 헌법상 의무다. "국가는 해준 것도 없는데 세금만 잔뜩 거둬간다"는 우리 주변 납세자들의 일상적 푸념이다. '유리지갑'으로도 불리는 직장인들은 급여내역에 적힌 원천징수 액수를 꼬박꼬박 확인하고, 환급이 가능한 세금은 적극적으로 돌려받기도 한다. 수백조 단위인 정부 예산은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당장 내가 내는 세금은 몇백 원까지 따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세금 내는 일엔 예민한데 그 세금을 국가가 어떻게 쓰는 지엔 둔감하다. 내 손을 떠난 돈은 더 이상 내 돈도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둔감한 이유를 따지자면, 무관심한 탓도 있지만, 일반인들로선 나라 예산이 어떻게 편성돼 어떤 심의를 거쳐 어디에 얼마나 사용됐는지 잘 알기 어려운 탓도 크다. 나랏돈은 분명 내 통장, 내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부터 비롯된 돈이다. 국민들이 갹출한 돈이다. 나랏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꼼꼼히 알고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호갱'이 되는 신세를 벗어난다.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이런 맥락에서 2018년도 예산안을 정밀분석했다. 예산 편성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국회 회의록 4,703장을 전수 분석해 투명성과 공정성이 지켜졌는지, 지출 과정에서 효율적 재원 배분이 이뤄졌는지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5회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
 
● "예산은 철학이다"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방향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2017년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 中>
 
문재인 대통령 연설 내용처럼 예산은 정부 철학의 요체다. 정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회의 건강성 유지를 위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부분을 판단해 예산을 편성한다. 판단 주체가 달라지면 지출의 우선순위는 물론, 액수도 달라진다. 정권마다 예산안을 통해 서로 다른 특색과 철학을 드러내는 이유다.
[마부작침]예산

정부 예산은 지난 2011년(2010년 책정) 처음으로 300조 원을 돌파한 지 6년 만인 지난해 400조 원을 넘어섰고, 2018년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28조 원이 늘어난 428조 원으로 확정됐다. 이렇게 편성된 예산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을 포함해 54개 국가기관(부,청,처 등 포함)에 나눠졌다.

예산이 가장 많이 편성된 기관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교육부(약 68조 원)다. 다음이 보건복지부(약 63조 원)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행정안전부, 국방부, 국토교통부와 더불어 대부분의 정권에서 상위 5개 부처에 포함된다.

[마부작침]예산

늘어난 교육부, 고용노동부...줄어든 국토부, 문체부
 
예산 편성 상위 부처는 여느 정권에서도 비슷하지만, 지난 정부보다 유독 예산이 증가한 부처가 있다. 행정안전부, 교육부, 고용노동부다. 행안부의 경우 지난해보다 7조 1,735억원이 늘어난 48조 6,567억 원이 편성됐다. 지방자치를 지원하는 지방교부세가 5조 원 이상 늘어났다.
 
교육부의 경우 전년도 대비 6조 6,006억 원, 고용노동부는 5조 5,419억 원이 늘어났다. 두 부처의 증액 배경엔 이번 정부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지자체와 갈등이 끊이지 않던 누리과정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전액 국고 지원' 방침을 세우면서 2조 600억여 원을 편성했다. 이는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2조 9,700억여 원이 신설되면서 30% 이상 증가했다. 이번 정부의 경제 철학인 '서민층 소득증대, 가계 소득증대를 통한 성장'이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액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지난 정부와 비교할 때 눈에 띄게 늘어난 부처도 있다. 새만금개발청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편성한 새만금개발청 예산(2017년)은 1,213억 원 이었는데, 올해 예산은 84.1% 증가한 2,233억 원으로 확정됐다. 부처별 증가율로 따지면 가장 큰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새만금개발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새만금개발공사 설립자금 500억 원 등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대비 36.4% 증가한 3,386억 원이 편성됐다. 창업 벤처에 투자하는 '혁신벤처 투자펀드' 자금으로 1,000억 원이 신설되면서 증가했는데, 이는 이번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 성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마부작침]예산

전체 예산 규모가 늘어나면서 다수 부처의 예산도 함께 증액됐지만, 이런 흐름과 달리 감액된 부처도 있다. 54개 기관 중 모두 10곳, 이 중 가장 많이 줄어든 두 곳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다. 국토부는 지난해 보다 1조 원 가량 줄어든 40조 4,059억 원이 편성됐다. 전년도 예산보다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이 줄어든 결과로, 2017년 예산이 2016년 대비 824억 원 증가한 것과는 대비된다.

문체부 예산도 전 정부와 달라진 점 중 하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기간 동안 '문화융성,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등 문화 분야를 강조했다. 취임사는 물론, 2016년 시정연설에서도 이런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기조에 따라 문체부는 지난 4년간 작게는 3.7%, 많게는 13.0% 매년 예산이 증가해 지난해만 5조 6,971억 원이 편성됐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선 지난해 대비 7.7% 감액된 5조 2,578억 원이 확정됐다.
 
국가정보원 역시 감액 부처 중 주목해야 할 곳이다. 국정원 예산은 박근혜 정부 때 대선 개입 의혹 등 각종 논란에도 지속적으로 예산이 늘어나 올해 4,931억 원까지 이르렀다. 특수활동비 상납·불법사찰 의혹 등으로 규모 축소 요구가 높아지면서 올해는 6.1% 감액된 4,631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수준(4,499억 원)이다.

[마부작침]예산

전체 분야별 예산 규모를 보면...부동의 1위는 사회복지
 
한 해 살림은 54개 국가기관에서 따로 지출되지만, 큰 틀에선 지출 성격에 따라 사회복지, 일반, 지방행정, 국방 등 16개 분야(기획재정부 기준)로 나눌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분야별 예산 1~4위에서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지난 12년 간 순위 변동은 없었다.
 
지난 2007년~2018년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분야는 '사회복지 예산'이다. <마부작침> 분석 결과, 사회복지 예산은 10년 넘게 부동의 1위였고, 지난 2007년 56조 원에서 10년 새 133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2위는 지자체 및 국회 활동 지원 등이 포함된 '일반 지방행정', 3위는 '교육', 4위는 '국방' 순이다. 다음이 '농림수산 분야', '교통 물류 분야'로 서로 근소한 차로 순위 변동을 했지만 지난해까지 6위권 내에 빠지지 않고 포함됐다.
 
이렇게 1위~6위까진 사실상 '상수'로 볼 수 있을 만큼 고정적으로 편성돼 왔는데, 올해 예산에서 처음으로 6위권에 진입한 분야가 있다. 바로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 예산이다. 해당 분야엔 119 시설 확충, 경찰 및 해경 인력 충원, 지진 등 재해예방 예산이 포함된다. 지난해 대비 약 9,000억 원이 증가한 19조 원이 책정돼 '교통 및 물류 분야'를 제치고 처음으로 6위권에 진입했다. 이런 순위 변동은 도로, 철도, 공항 건설 등이 포함된 '교통 및 물류 분야' 예산이 지난 정부보다 3조 원 가까이 줄어든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朴 주택 지원, 文은 노동..."디테일은 달랐다"
 
여느 정권에서도 사회복지 분야는 전체 예산 중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2000년대 이후 사회복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복지는 시대 과제였고,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복지 분야는 전체 예산 증가폭보다 매번 더 크게 늘어났다. 전체 예산이 전년 대비 8.5% 증가할 때 복지 분야는 10.0% 이상 증가하는 식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2009년, 2013년 예산)에선 복지 분야 증가폭이 전체 예산 상승폭 보다 낮았다.
 
복지분야 예산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상승할 정도로 모든 정권에서 가장 힘을 주는 예산이다. 2015년(2014년 편성)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하며 16개 분야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같은 복지 예산이라도 정권마다 차이는 있었다.

[마부작침]예산

 복지 분야는 기재부 기준상 공적연금, 노동, 노인·청소년, 주택 등 9개 하위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기초연금 지급 등이 포함된 '공적연금' 부분이다. '공적연금'은 2007년 노무현 정부(기재부에서 발간한 보고서상 동일 기준으로 적용 가능한 시점이 2007년부터) 이래로 문재인 정부까지 복지 분야 예산 중 30% 이상을 차지했고, 올해 예산안을 제외하고는 계속 비중이 늘어났다. 다음으론 주택 분야다. 임대주택 공급,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지원 예산이 포함돼 있다. 박근혜 정부까지 복지 예산 가운데 부동의 2위였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순위 변화가 발생했다.
 
'노동' 분야가 새롭게 올라선 것이다. 노동 분야는 취업 지원, 육아 휴직 지원 등 고용 안정망 확충에 사용되는 예산이다. 올해 노동 예산이 지난해 대비 2.5%p 상승한 17.8%(23조 8천억 원)이 편성되면서, 복지 분야에서 처음으로 2위를 기록했다. 노동 분야는 2007년 노무현 정부 이래로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다. 3번의 증가가 있었지만 모두 1%p 이내(2009년 0.3%p, 2013년 0.2%p, 2016년 0.6%p)의 소폭 상승이었다. 2%p 이상의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12년 만에 처음인 것으로 분석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으로 예산(2014년)을 편성할 때, 복지 예산 중 '노인 청소년 부문'을 전년도 대비 2%p 가까이 높였던 것과 차이가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분석가 (hyeminan@sbs.co.kr)
디자인/개발: 임송이
인턴: 김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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