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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 좀 데려가 줘" 北 유인 공작 급증…억류된 '북한 상남자'

[취재파일] "나 좀 데려가 줘" 北 유인 공작 급증…억류된 '북한 상남자'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12.22 09:16 수정 2017.12.22 10:0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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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채널의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탈북자가 또 사라졌습니다. 2014년 탈북한 박모 씨는 지난해 북중 접경지역에 있는 이모를 만나러 갔다가 실종됐습니다. 박 씨는 사라지기 다섯 달 전 방송에 나왔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박 씨를 ‘인민군 특수부대 출신의 상남자’라고 소개했습니다. 박 씨는 “공부보다도 빙상하키(아이스하키)를 더 사랑한 진짜 북한 남자”라고 자기소개를 더했습니다. 통일부는 실종된 박 씨가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 억류된 '북한 상남자'…재입북한 '탈북 미녀'

박 씨보다 나중에 북한에 갔지만 먼저 재입북 사실이 알려진 인물이 있습니다. 역시 북한 관련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탈북 미녀’ 임지현 씨입니다. 임 씨는 지난 7월 북한 우리민족끼리에 나왔습니다. 그녀는 “부모가 보고 싶어 다시 북한에 돌아왔다”며 “탈북 사실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재입북자 임지현, 박모씨처음에는 임 씨의 말처럼 자진 입북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남한을 떠날 때 귀중품을 모두 챙겨간 점 등이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원 동기 등 지인들은 “임 씨가 지난해 초부터 북한 보위성의 회유, 협박 전화를 받아왔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북한의 유인 공작에 사실상 납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손에 쥔 '특별한 약'…목숨 건 탈북

탈북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합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탈북자는 “북한을 빠져나올 때 ‘특별한 약’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북한 보위성에 적발되면 끔찍한 고문이 예상되는 만큼 아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탈북 과정을 돕는 브로커도 온전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탈북자들은 “브로커 상당수는 보위성과도 연결돼 있다”면서 “돕는 척하다 일부는 의도적으로 보위성에 적발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탈북 브로커 활동을 하기 위해 보위성 관계자의 실적도 챙겨줘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 "나 좀 데려가 줘"…치밀한 유인 공작

북한의 재입북 공작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오도록 속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치열하게 약점을 찾고 가족인 양 행세합니다. 그럴싸하지 않으면 유인 공작은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 있는 친동생이 ‘중국에 있는데 나 좀 데려가라’는 전화를 했다”며 “가족들만 아는 비밀까지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흔들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진짜 친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 "1분 넘어가면 보위성 전화"

탈북자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보위성의 유인 공작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 김정은은 탈북 관리에 열을 올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습니다. 김정일 집권 시기 연평균 2,700명 정도였던 탈북자 수를 60% 수준으로 줄였지요. 체제 강화를 위해 탈북자는 줄이고 재입북 유도 공작은 늘리고 있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은 보위성의 전화임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도 터득했다고 말합니다. 핵심은 통화 시간입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할 때 1분 이상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청 우려 때문이지요. 하지만 보위성을 통한 전화는 이런 시간 제약 없이 오래 통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이 보위성 전화를 의심하면서도 솔깃해하는 것은 결국 돈 때문입니다. 탈북 브로커 비용은 꾸준히 올라서 올 들어서는 북에서 중국까지 나오는데 1,800만원, 중국에서 남한까지는 400~600만원 정도 필요합니다. 일단 가족이 북한 밖으로 벗어나 중국에 있다고 하면 많게는 브로커 비용의 80%를 아낄 수 있는 것이지요.

● 줄줄 새는 탈북자 개인정보
탈북자탈북자에 대한 유인 공작이 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개인정보가 줄줄 새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탈북자들의 개인정보 유출을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개인정보 유출 경로를 추적할 수 있도록 신고센터를 개설하는 등 대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탈북자들은 북한이 이미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를 확보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한 탈북자는 “하나원 기수별 명단과 전화번호를 모두 갖고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유인 공작 전화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탈북자 개인정보 관리에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실제 SBS 단독 보도로 통일부 공무원이 탈북자들의 개인정보를 브로커에게 유출한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6급 공무원은 탈북자 40여명의 개인정보를 1,500만원을 받고 탈북 브로커에게 넘겼습니다.

● 재입북자 불과 26명?

우리 정부는 김정은 집권 이후 재입북자 숫자를 26명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북한 대남선전용 매체에 출연한 사람만 공식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실제 재입북자는 훨씬 더 많을 거라고 말합니다.

실제 임지현 씨 재입북 이후 경찰청이 연락이 안 되는 탈북자 900명을 전수조사 했습니다. 소재 불명이 22명이었고, 746명이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들 출국자들이 정확히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한의 재입북 공작, 특히 탈북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년 넘게 억류돼 있는 ‘북한 상남자’ 박 씨는 현재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총회는 이런 억류자 문제를 의식한 듯 현지시간 지난 19일 채택한 북한 인권결의안에 처음으로 억류자 보호 조치 내용을 담았습니다.

영사접견은 물론 생사확인, 가족과의 연락 허용 등의 합당한 조치가 필요하단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인권결의안 논의를 비판했고, 억류자의 상태에 대한 확인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 상남자'를 위한 국제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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