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검찰과 법원은 치열하게 갈등해야 한다

[취재파일] 검찰과 법원은 치열하게 갈등해야 한다
최근 법원과 검찰이 충돌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잇따라 기각하면서다. 군 사이버사 댓글 수사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졌던 김태효 전 청와대 기획관과 현 정부 인사인 전병헌 전 수석에 대한 영장이 모두 기각되자 검찰은 격하게 반발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법원이 영장 기각 사유로 제시한 내용에 대해 “그런 사유는 처음 들어 본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법원도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구속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항변했다. 검찰이 원칙과 예외를 혼동해 영장을 남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언론과 정치권 등은 이런 검찰과 법원을 ‘갈등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구속적부심 이후 충돌했던 것을 1차 갈등, 최근의 충돌을 2차 갈등으로 명명하는 시각도 등장했다.

● 검찰과 법원이 갈등해야 시민의 삶이 나아진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지만, 기저에는 ‘갈등’은 피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깔려 있다. 언론과 정치권 등이 검찰과 법원의 충돌을 다루는 방식도 ‘이례적인 것’ 혹은 ‘발생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라는 시각에 바탕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과 법원은 갈등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 등을 모두 손에 쥐고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탈탈 털어 수사하고, 그 사람을 구속해서 수사할 지 말지, 그리고 재판에 넘길지 말지 등을 판단할 권한을 검찰이 오롯이 쥐고 있다. 법원은 이런 검찰의 권한을 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영장청구가 제대로 됐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곳이 법원이다.

이렇게 각기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이 갈등하지 않고 한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될까? 검찰과 법원, 양측이 모두 숨기고 싶어 하는 과거들은 모두 서로 갈등하지 않고 한 목소리를 낼 때 발생했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와 기소를 법원이 제어하지 못한 결과, 누군가는 생명을 잃기도 하도, 자유를 구속당하기도 했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과 법원은 더 치열하게 갈등해야 한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들도 갈등의 결과다. 최근 검찰과 법원이 갈등하고 있는 구속영장, 그것의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영장실질심사제도는 20여 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은 방어권 보호를 위해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가 법정에 출석해 항변할 수 있는 게 당연시 되지만, 20여 년 전에는 검찰의 수사 기록만 가지고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했다. 검찰 조서는 당연히 증거 능력을 가지던 것에서 현재는 피고인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 능력을 상실하는 것 역시 검찰과 법원의 갈등의 결과였다. 검찰과 법원이 갈등 할수록 시민의 삶은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 갑자기 종료된 갈등…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건강했나?

물론, 검찰과 법원의 갈등의 전제 조건은 있다. 갈등이 건강하고,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의 결과는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건강했을까?

최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생산적 결과를 내어 놓을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어 있었다. 양측이 충돌한 지점이 구속영장과 관련되어 있었던 만큼, 갈등의 결과 현재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추상적인 구속영장 발부 사유(일정한 주거 요건, 증거 인멸의 우려, 도주 우려)를 실무에서 구체화 시킬 수도 있었다. 또, 가난할수록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따라서 도주 우려가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결과적으로 가진 자에게 유리한 형사소송법의 영장 발부 사유를 개선하자는 식으로 논의될 수 있었다. 구속적부심제, 영장항고제 도입 등으로 논의를 확장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갈등은 갑자기 종료됐다. 앞서 ‘검찰과 법원이 충돌했다’고 과거형으로 쓴 이유다. 지난주 목요일까지 법원을 비판했던 검찰은 금요일부터 비판을 멈췄다. 앞서 두 차례 기각됐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 계기였다. 검찰이 공격을 멈췄기 때문인지,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구속은 예외’라고 얘기했던 법원도 언급을 삼가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의 구속으로 검찰과 법원이 향후 갈등 할 지점은 사라진 것일까.
우병우 구속
생산적 논의가 담보되지 않은 檢-法의 갈등은 권력 기관의 자존심 싸움일 뿐

당연히 향후 검찰과 법원이 갈등할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검찰이 비판한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 법원이 주장한 ‘불구속 수사 원칙’과 관련된 논의는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았다.

지금껏 검찰은 소위 주요 피의자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구속에 목을 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속을 통해 수사가 제대로 되어 가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임을 검찰도 모르지 않겠지만, ‘중대 범죄가 인정되어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면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일응 간주된다’며 격하게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검찰이 구속에 목을 매면서 구속은 형벌로서 인식됐고, 수사의 성패를 가르는 가늠자로 변질됐다. 그 결과 과거 ‘미네르바’ 사건처럼 종국에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피의자가 구속됐다는 것만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검찰의 격한 반발을 부른 것에는 법원의 책임도 적지 않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고 항변하는 법원은 지금껏 그 원칙을 제대로 지켜왔을까. 이에 대해 “그렇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건 법원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지금껏 영장이 발부됐던 사례에 비춰 검찰이 영장을 청구했는데, 갑자기 원칙을 강조하며 영장을 기각하면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구속적부심 인용률이 평균 15.3%였는데, 0.4%의 확률로 이것이 3차례 연속해서 발생한다면 그 배경에 의심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구속적부심이 영장발부의 위법성을 검증하는 것으로서 존재의 이유가 있다지만, 제도가 존재하니 결과를 마냥 받아들이라고 해선 곤란하다.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고,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여러 논쟁점을 남긴 채 갑자기 중단됐다. 갑작스런 갈등의 중단은 그간의 갈등이 건강하지 못 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든 구속영장 발부를 두고 검찰과 법원이 충돌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구속영장 발부와 구속적부심을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어야 했다. 그 결과 시민의 삶이 조금은 개선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 검찰과 법원은 갈등은 시민의 입장에선 힘센 두 권력기관 간의 자존심 싸움일 뿐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