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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구속영장 기각은 왜 비난받는가?…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원칙

[취재파일] 구속영장 기각은 왜 비난받는가?…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원칙
오민석, 권순호, 강부영. 전혀 뜻하지 않은 이유로 올해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을 포함해 검찰이 청구하는 모든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전담판사 3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유명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거나 기각될 때마다 이들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갔다. 어떤 때는 개념판사라며 찬양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적폐판사라며 저주와 신상털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유명인이 된 영장판사들…법원의 억울함

판사들은 대중의 이런 반응을 무척 억울하게 생각한다. 이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구속영장은 그 자체로 처벌이나 정의실현의 결과가 아니고, 죄가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발부되는 도구일 뿐인데 대중이 구속영장 발부 자체를 놓고 너무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고, 심지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더라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게 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 원칙을 수호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대다수 판사들은 생각한다. 지난 1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념식에서 "요즈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밝힌 것도 이런 생각의 반영이다.

판사들의 이같은 주장은 당위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구속영장 기각이 곧바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구속영장이 그 자체로 처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정식 재판(본안 재판)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영장청구서를 통해 주장한 내용만 가지고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범죄의 소명이 이뤄지더라도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구속영장을 기각해야 한다는 법원의 주장은 국가권력 앞에서 시민의 자유권을 보존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고전적 원칙에 부합하는 주장이다.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인사, 예컨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나 권력을 남용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법원, 재판, 생중계
● 당위론과 현실론 : 구속은 정말 처벌이 아닌가?

그러나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당위와 이상의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의 차원에서는 인정받기 어렵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을 통해 석방되지 않는 한 대부분 6개월 이상 구치소에서 지내야 한다. 사실상 꼬박 징역 6개월을 복역해야 하는 셈이다. 재판이 길어지면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1년 이상 구금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일반인들이 구속영장 발부를 처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당연하다

지금도 서초동에서는 구속영장 미청구나 기각의 대가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사례가 대단히 빈번하다. 만약 구속영장 발부가 실질적인 처벌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에게 그 많은 돈을 주며 간절하게 구속영장을 피하려고 할까? 직종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순 있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6개월 이상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 것보다, 불구속 상태로 기소돼 최종적으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의 유죄를 확정받는 편을 더 선호할 것이다. 구속영장 자체가 적어도 징역형이 아닌 형벌보다는 실질적으로 더 무거운 처벌로 인식되는 셈이다.

● 불구속 수사 원칙 강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인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과도한 비난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판사들의 주장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구속영장이 현실에서는 사실상의 형벌로 기능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더 크거나, 범죄 혐의가 더 중대한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상대적으로 혐의가 가벼운 인물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것은 실질적으로 공정하게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결과라고 사람들은 인식한다. 그래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됐을 때 이른바 '우병우 라인'의 힘 아니냐고 의심하는 반응이 많았던 것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됐을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 아니냐는 비아냥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놓고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현실적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처벌로 기능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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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판사들도 이 현실을 알고 있다. 오히려 구속영장 심사를 더 엄격히 해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구속적부심제도 등을 활성화해서 불구속 수사 비율을 높이는 것이 구속영장이 처벌로 기능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법 아니겠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 번 구속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개월 이상 구속기간이 계속되고, 또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대단히 높은 비율로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도주 우려가 적은 화이트칼라 범죄(뇌물, 횡령 등)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비율을 높인다고 해서 구속이 곧 형벌로 인식되는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다.

거꾸로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라는 지금의 영장 발부 기준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검찰은 영장심사의 경우 판결문이 나오지 않고 판례도 축적되지 않아서, 특히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명확한 기준 없이 자의적 영장심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구속과 석방의 기준이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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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반의 진실과 원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구속영장 발부가 곧 처벌이 아니며, 구속이 곧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는 말의 절반의 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행 구속영장 제도에 대한 전반적 개선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구속영장 발부 이후 거주나 통신 제한을 전제로 한 보석 조치 등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영장항고제(구속영장 심사 결정에 대해 항고를 해서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으로, 지금의 구속영장 심사와 달리 판례가 축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 도 논의해볼 가치가 있다. 또, 이른바 '특검 복덩이' 장시호 씨에 대한 법정구속 후 불거진 바 있는 '플리바게닝' 제도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는 구속영장 제도 등과 연결지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검찰이 구속영장 제도를 실질적인 '플리바게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당위와 원칙만 이야기하면서 현실에서 이뤄지는 일을 도외시한다면, 중요한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가 있을 때마다 법원과 검찰이 갈등하고, 진영에 따라 찬양과 저주가 엇갈리는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도 자기편이 구속될 때는 저주하고, 상대편이 구속될 때는 찬양하는 응원단장 노릇은 그만하고 구속영장 제도의 원칙에 맞는 개선안을 고민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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