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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죄' 국산 무기 현궁과 한 연구원의 죽음

[취재파일] '무죄' 국산 무기 현궁과 한 연구원의 죽음
그제(15일) 기쁘지만 안타깝고 다시 한번 슬퍼해야 하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산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의 연구원들이 2심 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현궁 연구원 3명은 지난 정부에서 방산비리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감사원이 현궁 개발 비리라며 수사 의뢰한 데 따른 검찰의 조치였습니다. 연구원 1명은 참혹한 감사원의 감사, 검찰 조사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감사원, 검찰, 언론, 세상인심으로부터 2년 동안 방산비리범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연구원 3명은 늦었지만 누명을 벗어서 다행이고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LIG 넥스원의 고(故) 김 모 수석연구원의 목숨은 되돌려 놓을 길 없어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참았더라면 김 수석연구원도 그제 살아서 무죄의 순간을 누렸을 텐데…

국가 재산이나 다름없는 무기체계 수석 연구원의 목숨을 앗아간 감사원과 검찰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습니다. 다 지난 일, 기억도 못 할 테고 양심의 가책 같은 낭만적 감정 따위는 한 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엉터리 감사를 한 감사관들은 "감사 잘했다"고 칭찬받으며 영전했습니다. 지난 정부 우병우 라인의 한 축이었던 방산비리 정부 합동 수사단 출신 검사들은 지금도 정부 곳곳에서 고개 들고 행세하고 있습니다.

● 현궁 사건의 전말

육군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은 북한군 신형 전차 선군호를 잡기 위해 지난 2015년 개발됐고 올해부터 전력화되고 있습니다. LIG넥스원이 생산을 맡았고 국방과학연구소 ADD가 성능평가를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원은 현궁의 성능평가 과정에서 생긴 사소한 일들을 방산비리로 엮었습니다.

첫 번째는 전차 자동 조종 모듈을 하청업체로부터 7세트 공급받고도 11세트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는 혐의입니다. 아닙니다. 전차 자동 조종 모듈은 현궁의 표적으로 쓸 폐전차를 무인 조종하는 장치입니다. 아쉬운 점은 하청업체는 11번 시험평가를 할 수 있게끔 모듈을 제공하면 된다고 이해했고 LIG 넥스원은 11개의 모듈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모듈의 어떤 부품들은 11개 이상, 다른 어떤 부품은 11개 미만 공급됐습니다. 하청업체는 공급한 물량만큼만 돈을 받았고 11차례의 현궁 시험평가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비리 아닙니다. 하청업체와 LIG 넥스원이 자동 조종 모듈의 공급건을 서로 다르게 이해했을 뿐입니다. 뒤로 돈 받은 자 한 명 없었습니다. 감사원 감사관이 연구원들 말 딱 5분만 들어보고 관련 서류와 비교해보면 명백해졌을 일인데도 감사관들은 눈 감고 귀 막은 채 가혹한 감사를 했습니다.

표적으로 쓰일 폐전차에 장착할 내부 피해 계측 장비도 감사원은 걸고 넘어졌습니다. 폐전차가 현궁을 맞았을 때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측정하는 장비입니다. 감사원은 "ADD 연구원이 계측 장비에 진동센서와 제어판이 부착되지 않아 작동하지 않는데도 합격 판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또한 아닙니다. 다락대 시험장에서 계측장비로 기능시험을 성공리에 끝냈습니다. 현궁 맞은 전차의 온도, 진도, 충격이 정확히 측정됐습니다. 진동센서, 제어판이 제대로 있었으니까 측정이 된 것입니다. 현장 시험에서 입증됐으니 ADD는 계측장비의 속에 어떤 부품이 있는지 일일이 뜯어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뜯어보는 주도면밀함이 없는 것이 죄라면 죄인데 그렇다고 검찰에 수사 의뢰할 일은 단연코 아닙니다. 감사원의 도덕적 잣대가 워낙 엄정해서 이 정도의 일이라도 단죄해야 하는 걸까요? 감사원은 남의 눈 티끌에 시비 걸기 전에 제 눈 들보부터 봐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방산비리를 색출하라는 명을 받은 감사원은 전차 자동 조종 모듈과 계측장비에 수상한 점이 있다며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2015년 7월 검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당시 방산비리 합수단은 이 사건을 현궁 시제 납품 비리라고 명명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취재파일] '무죄' 국산무기 현궁과 연구원의 자결
합수단은 2015년 8월 LIG 넥스원과 ADD를 압수수색하고 연구원들을 체포하는 과정을 언론에 흘려 현궁은 비리 무기, 현궁 연구원들은 방산비리범으로 몰았습니다. LIG 넥스원의 김 수석연구원은 그즈음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숨졌습니다. 3번째 검찰 소환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유서에는 "내 실수로 동료들이 너무 큰 고통을 겪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합수단은 그해 12월 ADD 연구원 2명과 LIG 넥스원 연구원 1명을 사기미수,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ADD 연구원 1명은 현역 군인 신분이어서 지탄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고 김 수석연구원도 살아있었다면 기소 대상이었습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기소된 3명 모두 그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2심 법원의 판결은 단 3분으로 족했다는 전언입니다. 누가 봐도 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ADD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일한 연구원들이 겪는 억울한 아픔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LIG 넥스원 관계자는 "김 수석연구원이 유서에 쓴 문장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린다"고 말했습니다.

● 달랠 길 없는 김 수석연구원의 한

국산 무기 개발에 정통한 군의 한 관계자는 "김 수석연구원의 무고한 죽음은 감사원의 감사, 검찰의 수사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감사원과 검찰이 훌륭한 연구인력 한 명을 살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20년 이상 경력의 무기체계 연구원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 자산"이라며 울먹였습니다.

현궁은 좋은 국산 무기입니다. 국가 우수연구개발 100선에 선정됐고 국방과학상 금상, 연구개발장려금 은상을 받았습니다. 군대 밥 먹어본 적 없는 검사와 감사관은 악평을 해대지만 해외에서는 호평받아 수출길도 크게 열렸습니다. ADD 관계자의 말처럼 무기 개발하는 연구원들이 겪는 억울한 아픔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단 한 번 사고로 언론으로부터 퇴물 취급받았지만 1조 원 수출을 눈앞에 둔 K-9 자주포, 감사원이 원가 부풀리기라고 했지만 법원에서 무죄가 입증된 수리온 헬기,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국방장관이 입 모아 비난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M-SAM, 그리고 현궁까지. 바깥에서는 좋다고 하는데 안에서는 없애지 못해 안달입니다. 세계 최강 미국 무기만은 못해도 몹쓸 물건은 아닙니다. 사람으로 치면 생명과도 같은 안보를 책임지는 창끝입니다.

이쯤 되면 불의(不義)하게 현궁에 손댄 검사와 감사관이 김 수석연구원 영전에 향 올리며 사죄하는 드라마 같은 반전을 떠올릴 만도 합니다. 부질없는 상상입니다. 오히려 검찰은 2심 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곧 현궁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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