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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당황하셨어요?"는 옛말…진화하는 보이스피싱

"고객님, 당황하셨어요?"는 옛말…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이○○씨 본인되십니까? 여기는 수원지검이고 저는 ○○○ 라고 합니다. 이○○씨와 관련된 사건이 있어 먼저 사건 경위를 설명드리겠습니다."

회사원 이 모(31)씨는 지난해 7월 처음 이 같은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또 보이스피싱이구나' 하고 웃어 넘겼습니다.

전화 속 여성은 "최근 김현준이라는 금융범죄 사기단을 검거했다. 검거 현장에서 대량의 신용카드와 불법 대포통장이 압수됐다"며 전형적인 사기 수법을 보여줬습니다.

조선족 사투리는 아니었고, 침착하고 사무적인 말투였습니다.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여성은 "다량의 차명 계좌와 이 씨 본인 명의의 농협과 하나은행 통장이 발견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주계좌를 개설해 김현준이라는 사람에게 불법으로 양도한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본인의 개인 정보가 유출돼 명의도용을 당한 피해자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은근한 듯 단호하게 못 박았습니다.

여성은 신분증이나 여권 등 물건을 분실한 적은 없는지, 금융기관에서 개인정보 유출 연락을 받은 적이 있는지 등을 집중 추궁했습니다.

이 씨는 농협에 개설된 통장이 있었지만, 자신은 당연히 가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씨를 피해자라고는 보고 있지만, 100% 피해자라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형식에 맞는 질문에 맞게 답할 필요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 시종일관 심드렁하게 대꾸했던 이 씨가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졸지에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여성은 전화를 '검사'라는 이에게 넘겼고, '검사'는 보이스피싱 범행이 아닌지 의심하는 이 씨에게 구속까지 거론하며 협박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씨가 자신의 통장에 들어있던 돈을 그들이 말하는 '국가 감시 안전계좌'로 이체하기까지는 4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 하루 동안 통장 잔액은 물론 카드론과 신용 대출까지 받아 이들에게 6천7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여기에는 결혼 준비 자금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검사나 금융기관 관계자나 등을 사칭해 전화금융사기를 벌인 혐의(사기)로 보이스피싱 조직원 박 모(36)씨 등 21명을 검거했습니다.

이들은 필리핀에 콜센터를 차려놓고 '범행 현장에서 당신의 통장이 발견됐으니, 통장과 범죄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속여 돈을 대포통장에 입금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만 91명, 피해 금액은 12억 원에 달합니다.

조사결과 이들은 "당신이 사기범과 공모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면 외부와 연락을 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들이 모텔에 은신하도록 해 가족의 신고까지 원천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기단은 범행 시나리오까지 마련해 콜센터 직원들이 숙지하도록 합숙훈련까지 시켰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충남경찰이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를 수사하던 중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노세호 충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보이스피싱 범행 수법이 날로 진화해 피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수사기관은 전화로 형사사건에 연루됐다고 돈을 입금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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