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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린이집 '투약 학대'…원장은 왜 약을 먹였나

어린이집의 점심시간, 식사 중인 아이들을 찍은 짧은 동영상. 영상 시작부터 한 아이의 자지러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고막을 긁는다. 카메라는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이동한다.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앵글에 들어온다. 아주 어린 아이. 불과 며칠 전에 첫 돌을 맞은 준이(가명)다. 준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원장의 다리에 짓눌려진 채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 아이를 짓누르고 밥을 '쑤셔 넣다'

영상은 충격적이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원장의 가랑이 사이엔 준이가 짓눌린 채 누워 있었다. 한쪽 허벅지로는 준이의 머리를, 다른 쪽 허벅지로는 준이의 배를 짓누른 채, 원장은 밥그릇을 손에 들고 준이 입에 국에 말은 밥을 밀어 넣고 있었다. 밥을 먹인다기보다는 강제 투입한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해 보인다. 원장 다리에 짓눌려 꼼짝달싹 못하는 준이는 자지러지게 울면서도 발만 움찔거릴 뿐이다.
인천 어린이집 묻지마 투약 학대
원장의 이런 행태를 다른 보육교사들은 “밥을 먹이는 게 아니라 쑤셔 넣는 거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기도라도 막힌다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첫 돌이 되면 고집이 생기게 되고, 밥을 돌아다니면서 먹으려고 하거나 편식을 하기도 한다며, 그 고집을 꺾겠다며 강제로 밥을 먹였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준이가 이렇게 바닥에서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공포스럽게 지켜보아야 했다.

원장이 밥을 놓고 아동 학대를 하는 데에는 ‘고집을 꺾는다’는 이상한 교육원칙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바로 투약이었다. 이렇게라도 밥을 먹어야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 0~3세에 '묻지마 투약'…숟가락 돌려쓰며 감기약 먹여

어린이집 내부가 찍힌 또 다른 동영상. 이번엔 한 교사가 아이들을 차례차례 불러 숟가락에 담긴 무언갈 먹인다. 교사는 원장의 딸이고, 아이들이 먹는 건 시럽 형태의 감기약이다. 잘 받아먹는 아이는 그냥 앉은 채로 입에 넣어주고, 약 먹기를 거부하는 아이는 자기 무릎에 눕힌 채 입에 약 숟가락을 밀어 넣는다.

이 장면에 나오는 약은 시럽 형태의 감기약으로, 일반 가정용이 아닌 갈색 병에 담긴 대용량 제품이다. 대한약사협회의 도움으로 이 약의 종류를 찾을 수 있었다. 쉽게 구매 가능한 감기약이지만, 만 2세 미만의 아이에게는 먹이면 안되는 약이었다. 이 약의 약병에도 "2세 미만에게 투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꼭 필요한 경우 의사의 진료를 받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이 약을 먹는 모습이 영상에 찍힌 아이들은 첫 돌을 전후한 아이들이었다. 먹으면 안 되는 약을 어린이집은 마구 먹인 것이다.
인천 어린이집 묻지마 투약 학대
인천 어린이집 묻지마 투약 학대

투약 용량도 제멋대로였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약을 먹일 때 눈금이 새겨진 약통에 정확한 용량을 재서 투여한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은 어른 밥숟가락 정도 크기로 보이는 숟가락에 약을 따라 그대로 아이 입에 밀어 넣었다. 용량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 길이 없다. 원장은 한 술 더 뜬다. 이 약을 먹으면 안되는 이제 갓 돌 지난 아이에게 용량을 더 늘려서 투약하라고 지시한다. 덩치가 커보인다는 것이 이유다.

원장 지시내용 (투약 현장 녹취)
"현수(가명/갓 돌 지난 아이)는, 걔는 '기침 시럽' 좀 자주 먹이고. 걔는 덩치에 맞게, 얘랑 양이 달라. 많이 먹여야 되는 거야."


하지만 정작 현수는 원장 말대로 덩치가 크지도 않은, 표준 몸무게였다. 하지만 원장의 판단으로 현수는 먹으면 안 되는 약을, 용량을 늘려가며 먹은 것이다. 이 어린이집에 원생이 17명에서 18명을 왔다갔다 하는데, 매번 이런 묻지마 투약을 당하는 아이들이 10명이 넘었다고 한다. 투약은 보통 아침과 점심에 한 번씩 해서 하루 두 번 정도 이뤄졌으며, 거의 매일 있는 일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투약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과다투약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별로 몸이 아프지 않은 아이도 기침이라도 한번 하면 원장은 아픈 아이로 간주하고 묻지마 투약을 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실제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집에서 따로 가져온 약을 먹고, 여기에 어린이집의 묻지마 투약을 추가로 당했다고 한다. 비슷한 성분의 약을 이중으로 투약 당한 것으로, 심지어 하루에 5번까지도 약을 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아이의 상태가 심각했다고 증언한다.

한 아이는 어린이집에 9시에 등원을 하고 감기 기운을 보였다고 한다. 원장은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감기약을 묻지마 투약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해 아이가 열이 난다고 얘길했고, 아이 엄마는 직장에서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다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아이 엄마는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였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원장은 하지만 본인이 약을 먹였다는 얘기를 이때까지도 하지 않았고, 아이 엄마는 아이가 중복으로 감기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다시 맡기고 직장으로 향했다. 이후 점심시간, 원장은 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약을 아이에게 묻지마 투약했다. 이 아이는 9시 등원해서 12시 점심시간까지, 불과 3시간 사이 아이는 비슷한 감기약을 3번이나 먹은 것이다. 아이는 하루 종일 축 쳐져있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만 0~3세 즈음의 아이들이 과다투약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취재 중 만난 한 현직 약사는 어린이집이 '묻지마 투약'을 하는 영상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한 이 약사는 그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안지원 / 대한약사회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현직 약사)

"어린이집 내부 영상에 나온 약은 '00시럽'이라는 감기약으로 기침을 멈추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이 약은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지만, 만2세 미만 어린이에게는 투여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졸음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고, 중추신경 쪽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특히 어린아이들은 체중에 따라 용량이 조금만 변해도 굉장히 과하게 작용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이 어린이집에선 숟가락으로 주는데 이거는 나이에 따라 정확하게 계량을 해서 줘야 하고요, 특히 금기사항이 만 2세 밑으로는 아예 투여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약을 먹고 이 약을 먹는다면 비슷한 성분이 겹쳐서 굉장히 과량 복용을 하는 거거든요. 굉장히 우려가 많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가하면 약을 먹이는 방법도 매우 비위생적이었다. 영상을 보면 원장의 딸인 교사는 컵에 물을 받아놓은 컵에 숟가락 2개를 꽂아 놓고 있다. 이 숟가락에 약을 따라 아이들 입에 집어넣은 뒤, 물컵에 담가 휘휘 저어 헹구곤 또 다른 아이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없는 병도 옮을 수 있는 매우 비위생적인 투약방법이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유형의 매우 위험한 학대행위라고 규정했다.

● '원장님의 극약처방'…여러 약 섞어 먹이기도

한 관계자는 이 어린이집에선 이런 묻지마 투약을 '원장님의 극약처방'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원장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서 약을 타 오는데 의사들은 늘 너무 약하게 처방을 한다며 "의사들은 믿을 수 없다"고 늘 주장했다고 한다. 실제 아이들이 병이 나을 수 있는 약을 먹여야 한다는 건데, 원장은 여러가지 약들을 섞어서 먹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원장은 이걸 '제조한다'라고 표현했다. 영상에 찍힌 것은 감기 시럽 하나이지만, 원장이 이 증언처럼 약을 '제조'까지 해서 먹였다면, 무슨 약이 더 추가되는지도 수사가 돼야 할 대목이다.

● "왜 먹였나요?" 부모의 눈물

취재 도중 한 아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만 1살 아이의 어머니였다. 담담한 목소리로 기자와 통화를 하던 아이 엄마. 기자가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묻지마 투약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 엄마가 말이 없어졌다. 전화가 끊어졌나 싶을 정도로 한동안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자도 말을 멈췄다. 그리곤 이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자는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어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흐느껴 울던 아이 엄마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우리 아이한테 왜.. 왜 먹였나요?"

아이 엄마는 어린이집의 투약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이집 설명회 때 어린이집에는 따로 비치된 약이 없다는 설명까지 원장에게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연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부분의 부모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어린이집에서 투약 사실을 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이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이 복용한 약이 어느정도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 "'책상 밑에서 발바닥을 꼬집으라' 교사들에게 가르쳤다" 증언도

이 어린이집은 강제 밥먹이기와 묻지마 투약 이외에 폭행이 있었는지도 현재 함께 경찰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이 아이들을 티 안나게 체벌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증언이 있었다. 아이를 때릴 때는 책상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발바닥을 꼬집으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이는 괴로워하지만 CCTV에도 찍히지 않고 몸에 상처도 크게 남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경찰은 CCTV를 가져다 수사하고 있다. 정말 폭행도 있었는지 밝혀져야 할 것이다.

● 이런데도 어린이집 평가인증에서는 '고득점'

상황이 이렇지만 이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의 평가인증에서 고득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어린이집을 상대로 지자체와 함께 평가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어린이집 현장조사를 하고 평가를 해 점수를 매긴 뒤 계속 운영해도 되는지 재인증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사건이 터진 어린이집은 지난번 평가인증에서 무척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현장 조사에 구멍이 뚫렸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집 평가인증 제도가 제대로 이뤄지고는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갈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인천 어린이집 묻지마 투약 학대
인천 어린이집 묻지마 투약 학대
● 어린이집 측 "아픈 아이에게 약 먹인 것" 주장

어린이집 측은 부모 동의 없이 약을 먹인것이 규정에 어긋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꼭 필요할 때 피치 못할 사정에서만 약을 먹였다고 해명했다. 예컨대, 아이가 갑자기 열이 치솟아 위급한데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 같은 때에만 약을 먹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을 먹일 때 사용한 숟가락도 아이들 용으로 나온 티스푼만한 작은 숟가락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영상에 찍힌 내용과는 맞지 않다.

밥을 강제로 먹인 것과 관련해서도 해명했다. 약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고, 활동을 해야하기도 하는데 밥을 안 먹으려 하는 아이들이 있을 경우 하는 수 없이 밥을 떠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를 못 움직이게 결박한다거나 학대하는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취재진이 아이 입에 밥을 우겨넣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한 해명이었다. 이 외에도 더 자세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어린이집 측은 경찰 수사가 시작 된 만큼, 경찰 조사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 지역 어린이집 관련 협회 회장인 원장…교사들은 두려웠다

사실 이번 일은 진작에 아동 학대로 신고가 들어갔어야 한다. 아동 보호기관의 교사라면 아동학대 신고의 의무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아동 학대를 묵인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지켜지기 힘들다. 원장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이 벌어진 어린이집 원장은 해당 지역의 00 어린이집 협회 회장직을 2년째 맡고 있다. 국회의원도 자주 만나고 구청장도 자주 만난다는 얘길 자주 했으며, 실제 사진도 여럿 비치해두고 있단다. 이런 원장에게 찍히면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게 되고 이 바닥에서 영원히 퇴출된다는 두려움이 교사를 짓누른다는 것이 관계자의 증언이다.

한 관계자는 아이들 물 주는 것 조차 원장 눈치를 봤다고 털어놓는다. 원장이 아이들이 물을 달래도 잘 주지 않는데,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딱히 지시가 없는데도 덩달아 물주는게 눈치가 보이고 결국 애들 물주는것 조차도 숨어서 해야 했다고 한다. 이러니 아이 걱정이 돼도 신고는 커녕 원장에게 '그러지 마시라'는 말 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잊을만 하면 또 터지는 어린이집의 아동 학대 사건, 이제 그 방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더 위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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