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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종교인만 교묘한 세금 특혜…여론만 살피는 기재부

[취재파일] 종교인만 교묘한 세금 특혜…여론만 살피는 기재부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14일 보수 개신교계와 간담회를 가진 뒤 종교계에 특혜를 몰아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는 보도, 여러 차례 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종교계에 대놓고 특혜를 준 조항들, 즉 다른 직종과 달리 '유일하게' 종교활동비 비과세 혜택에 상한선을 두지 않은 점, 그래 놓고 종교활동비 장부는 콕 찍어서 세무조사를 원천봉쇄 해놓은 점 등을 지적했었죠. 이번엔 간단하지만 교묘한 특혜를 하나 더 찾아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한국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죠.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222조를 보면, 국세청 공무원은 질문조사권을 행사하기 전, 즉 세무조사에 착수하기 전에 종교 관련 종사자(종교인)이나 종교 단체에 세금 탈루나 오류의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국세기본법 45조에 따른 수정신고(덜 낸 세금을 마저 내는 것)를 우선 안내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선' 안내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이 개정안이 향후 국무회의를 통과할 경우 국세청 공무원은 세무조사 전 종교인에게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고 수정신고를 안내해야 합니다. 이게 왜 문제냐고요? 

● 기재부 "모든 납세자에게 수정신고 안내"

"이것도 특혜 아닙니까? 수정신고를 안내해서 안 낸 세금을 마저 내면 세무조사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니까 무용지물 되는 거 아닌가요?" 취재진의 질문에 기획재정부는 특혜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종교인만 수정신고를 안내하도록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건 모든 직종, 모든 납세자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종교인이 아닌 일반 납세자가 세금을 실수로 누락하거나 고의적으로 탈루하더라도, 국세청이 먼저 납세자에게 연락해서 세금 탈루의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수정신고를 안내하고 있다는 게 기재부의 해명이었습니다. 사실이라면 일반 납세자들이 고의적으로 세금을 탈루할 경우에도 납세자 본인이 큰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국세청이 실제로 이렇게 잘 해줄까요? 

● 국세청 "수정신고 안내 안 할 때도 많아" 

정답은, 수정신고 안내는 해줄 때도 있고, 안 해줄 때도 있다는 겁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는데, 국세청 사무 처리 규정을 보면 소득세 등의 업무를 처리할 때 납세자에게 세금 덜 내셨네요, 수정신고라는 게 있으니까 세무서에 가서 마저 내세요, 라고 수정신고를 '안내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종교인에게는 '안내해야 한다'로 된 것입니다. 단어는 조금 다르지만, 실무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임의 규정과 의무 규정의 차이인 것이죠. 이걸 근거로 기재부 담당자는 취재진에게 다른 직종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수정신고 안내는 다 해주는 거니까 종교인 특혜가 아니라고 해명을 했던 것입니다. 

국세청 답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정신고 안내는 해줄 때도 있지만, 안내 안 해주고 세무조사 들어갈 때도 많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가령 특정 납세자의 악질적인 탈세에 대해 제보가 들어왔는데, 세무서에서 친절하게 제보 근거를 제시하고 수정신고를 안내한다면 말이 안 되죠. 세무조사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수사기관이 혐의를 입증할 근거들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자수 절차를 안내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다면 그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수정신고'라는 것이 일종의 자수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세청 출신인 박영범 세무사도,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종교인에게만 수정신고 안내를 의무화 한 것은 특혜 조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영범 세무사는 탈세 사건의 경중에 따라 경미한 사안은 수정신고를 안내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탈세거나 제보를 받은 사안은 수정신고를 안내하지 않고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박훈 교수는 수정신고를 무조건 안내하도록 하면 세무조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 종교인 세무조사 족쇄 채운 개정안…입 닫은 국세청 

종교인에게만 수정신고 안내를 의무화 한 것은 사실 국세청 실무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입니다. 종교인이 내는 세금은 의심하지 말고 받기만 하고, 의심이 들어도 세무조사는 아예 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봉쇄를 해놓은 셈입니다.

지금까지 보도된 바로는 비과세 되는 '종교활동비' 장부에 대해서만 세무조사가 금지된 걸로 많이들 알고 있었고, 종교인 세무조사는 가능한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겁니다. 소득세법 170조는 종교인 소득에 대해 세무조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해 놨는데, 그 하위법인 시행령이 세무조사를 사실상 의미 없게 만들어 놓은 상황입니다. 시행령이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 것입니다.

정부가 만든 시행령이 국회에서 만든 법의 취지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위법 소지가 있습니다. 국세청도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만드는 작업에 의견을 냈습니다. 국세청이 자기 발목을 잡는 이런 개정안에 의견을 낸 적 있느냐, 반대 의견을 내지는 않았느냐, 이 문구가 기재부가 갖고 온 원안이었느냐, 이런 질문들에 국세청 관계자는 기관 간의 일이므로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김진표 "목사님들 세무조사 없도록…" 
종교인 과세
개정안 222조 이 특혜 조항도 다른 특혜 조항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 개신교에 사전에 전달됐습니다. 기재부는 지난달 17일 고형권 1차관의 지시로 시행령 개정안의 골격을 개신교에 약속하는 식의 문서로 전달한 바 있는데, 해당 문서에 이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개신교 측은 이 내용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입법예고 사흘 전 11월 27일 '종교인 과세 대책 보고회'에서 김진표 의원이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라도 탈세 제보가 들어오는 경우에도 국세청에서 교회의 목사님에게 먼저 우편으로 보내서 이런 제보가 들어왔는데 한번 확인해보시고 자기 시정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시정을 하면 그것으로써 끝나고 세무조사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현실이 될 상황인데, 세무조사 없이 모두가 세금을 완납하는 이상적인 풍경입니다. 사실 개신교는 일부 신도가 교회나 목사에 반감을 품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국세청에 탈세를 제보하는 걸 무척 두려워했는데, 기재부가 그 방어 장치를 시행령 개정안에 시스템화 해준 셈입니다.

보수 개신교에서 '목사님들 우려가 99.9% 해결됐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고, 가장 강력히 반발했던 개신교가 지금 괜히 조용한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는 국민들의 이목이 쏠리지 않고, 여론이 들끓지 않고, 이번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하길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개정안은 종교계에 더 이상 좋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종교계에 특혜 선물…여론 살피는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개신교라는 가장 강력한 이해 관계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신교의 입장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기재부가 대체 어떤 내용을 입법예고 할 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기재부는 보수 개신교를 포함한 종교계 의견만 주로 수렴한 뒤에 특혜를 가득 담은 개정안을 종교계에 선물했고, 11월 30일 입법예고 뒤 공개된 내용을 몇몇 언론이 특혜라고 지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SBS도 개신교처럼 기재부의 개정안 내용을 입법예고 전 입수했다면 지금과 같은 보도를 더 일찍 시작했을 것입니다. 

기재부는 이미 국회가 만든 소득세법에 종교인이 다른 직종과 '차별화' 되어 있기 때문에 시행령이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기재부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단어 '차별화'를 사용했지만, 그것은 곧 '특혜'를 뜻합니다. 이런 선물 꾸러미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뒤, 기재부도 보수 개신교처럼 조용히 여론 동향만 살피고 있을 뿐입니다.

시끄럽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으면? 원안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사람들은 2018년 종교인 과세가 역사적인 첫 걸음을 뗐다고 생각하며, 기재부는 종교인 과세를 첫 시행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축할 것입니다. 보수 개신교계는 이미 '과세 유예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축한 바 있습니다.

종교인만 세금을 안 내는 특혜를 해소하자고 종교인 과세를 하는 것인데, 그 과세는 더 심한 특혜로 점철돼 누더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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