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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판도라 상자' 연 트럼프…중동은 어찌되나?

이혜미 기자 param@sbs.co.kr

작성 2017.12.08 15:57 수정 2017.12.08 22:54 조회 재생수5,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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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판도라 상자 연 트럼프…중동은 어찌되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탄발언'에 중동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발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한마디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할 때가 됐다. (It is time to officially recognize Jerusalem as the capital of Israel.)"

예상대로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당장 팔레스타인을 앞세운 아랍권이 들고 일어났고, 영국·일본과 같은 미국의 우방들까지 미국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현재의 예루살렘이 유지돼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편이 돼 전 세계와 맞서 싸우는 형국입니다.

● 왜 국제 사회는 인정하지 않나

국제 사회가 단결해 이처럼 반대하고 우려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오래 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법을 제정해 예루살렘을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수도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국제사회는 1980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478조를 채택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을 규탄하고 예루살렘법이 국제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로도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예루살렘 수도'를 선언했지만, 국제 사회는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 준수의 측면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과거 많은 미국의 지도자들은 유대인 표를 의식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문제를 전향적으로 생각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지만, 실제 공약을 이행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국제 사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각국은 지금껏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자국의 대사관을 두고 운영해 왔습니다.트럼프 미국 대통령● 금기를 깬 트럼프, 이유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사회가 50년 넘게 유지해온 이 원칙을 깼습니다. 트럼프가 '금기'였던 원칙을 깬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한데, 일단 공통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역대 어떤 정권보다 트럼프 행정부에 유대인의 파워가 강하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맏딸 이방카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은 알려졌다시피 유대인입니다. 이방카도 결혼 후 유대교로 개종한 상태입니다.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제이슨 그린블랫 백악관 국제협상 특별대표도 유대교인입니다. 또다른 측근인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위한 모금 단체를 직접 이끌기도 했던 강경파 유대인입니다.쿠슈너, 그린블랫, 프리드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BBC 캡처)부동산 재벌이자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의 주요 사업 기반이 유대 자본이라는 점도 눈 여겨볼 만합니다. 트럼프가 자신의 사업 기반의 절대적인 파트너인 유대인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경하게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선 기간 '러시아 스캔들'로 곤혹을 겪고 있는 트럼프가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가 자신을 정조준하자 내부 국면 전환용으로 예루살렘 카드를 던졌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 혼돈에 빠진 '중동의 화약고'

종교와 종파 간 갈등이 첨예해 대립과 갈등이 되풀이 되고 있는 아랍권에서 이 문제는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됐습니다. 예루살렘이 인접한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는 대규모 반 이스라엘·반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과 대립해온 팔레스타인은 현지 시각으로 금요일까지 사흘 간을 '분노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반 이스라엘 투쟁을 뜻하는 '인티파다'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만큼은 수니파 시아파라는 종파 간 구분은 무의미하고, 모든 이슬람 세계가 통일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1987년 '1차 인티파다', 2000년 '2차 인티파다'에 이은 '3차 인티파다'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이슬람 트럼프 시위문화인류학자인 한양대학교 이희수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트럼프가 지금까지 해결도 안 되는 말장난을 하면서 60년 간 끌어왔던 팔레스타인 문제를 근원부터 뒤흔들어서 새판을 짜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새판을 짤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자를 한번 열어본거죠."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했지만 실제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트럼프가 프리드먼 주 이스라엘 대사에게 대사관 이전 시점 결정까지 위임했다는 미국 언론의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기는 했지만,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게 되면 전세계 테러조직의 1순위 타깃이 될 것이고, 이는 미국의 안보에도 치명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대사관 이전까지 최대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평화로운 예루살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예수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과거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는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세 종교의 공동 성지로서 특정종교나 정치집단에 예속되지 않고 모든 종교가 자유롭게 섬기는 인류의 공동 성지가 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이 빗발치는 국제 사회의 반발에 어떻게 대응하고, 추가적으로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됩니다.

**자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