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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찾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②

박대영 기자 cyumin@sbs.co.kr

작성 2017.12.08 11:44 조회 재생수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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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무엇인가, 그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가?● 길이란 무엇인가, 그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가?

우리는 종종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회의와 부정에 따른 결과이다. 더러는 안 가본 길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론, 내가 걸어가야 하는 실존(實存) 내지 현실(現實)의 길과, 막연하게 그래야 한다는 ‘남(他人)의 길’, 즉 ‘모름지기 이런 길이 좋은 길’이라는 세상이 정해 놓은 길 사이에서 갈팡질팡 두리번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주 <여강길> 36그런 이유로 막연하게 남의 길을 동경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걸어온 길을 폄훼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 자신은 길 위에 있음에도 길을 알지 못하고, 또 그 길을 깨닫지 못하여 허송세월(그렇게 느껴진다.)을 한 적도 많았고, 그러니 쌓이는 건 회한뿐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중이다.

막연한 욕심과 동경이 불러온 참화다. 땅 위의 길에서든 인생길에서든 마찬가지였다.여주 <여강길> 37그렇다면, 어느 길을 가려 걸어야 그 길이 아름다울까?

아름다운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운 길이란 도대체 어떤 길이란 말인가? 물으면, 허허~ 그저 웃지요, 소이부답(笑而不答)의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른 채 아름다운 길만 찾았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길을 알기 위한 노력보다는 맹목적인 동경만이 횡행했던 것이다. 내가 그랬다. 길 위에서 길을 찾고, 주어진 길을 외면하면서 자다가 남의 다리 긁듯 그렇게 엉뚱하면서도 막연하였던 것이다.
여주 <여강길> 38흔히 길은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길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결국 길은 마음의 크기와 안목 안에서 길다운 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각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의 어느 대피소 벽에 쓰여 있다는, ’순례자여, 당신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곧 길이다. 당신의 발걸음, 그것이 카미노(순례길)다.‘라는 말처럼 우리 스스로가 또 하나의 길임을 깨달아야 할 필요는 충분해 보인다.
여주 <여강길> 39우리들 각자는 길 위의 고행자이면서, 개척자였음을...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길 위의 주인이었으며, 그 길 위에서 행하는 고군분투마저도 또 다른 우리 자신이자 길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또 쉽게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자꾸만 되돌아보게 된다.
여주 <여강길> 40길은 실재(實在)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특히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걸어온 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길 위에서 겪은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경험이 바로 자기 자신이며, 또 자신의 길임을 인정하여야 하는 책무 역시 자신에게로만 귀속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길은 우리의 마음속에, 또 우리의 삶 속에 있으며, 또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 자체, 그 과정이었던 것이다. 누구의 길인들, 또 어느 들판의 길인들, 특별하면 얼마나 특별할 것인가. 내가 서 있는 내 길에게 만족과 사랑이라는 배려를 조금은 더 건넬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같은 이유로, 공상이나 망상이 아닌 현실 속의 길을 걸어야 함을 깨닫는다. 그 걷기의 시작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길 위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여강길> 위에 있다.
큰 강은 흐르되 흐르지 않는 장중함이 있다● 큰 강은 흐르되 흐르지 않는 장중함이 있다

여강(驪江)이라는 이름은 강이 거무스름해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실로 멀리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먹빛이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해 정선·평창·영월·제천·단양의 거친 산야를 달리던 강은 이곳 여주에 이르러 한강의 본류다운 폭과 규모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강은 강원도, 충청도, 그리고 경기도에 이르는 삼도(三道)의 지천(支川)을 품었으니, 그 빛깔마저도 깊고 무거워졌으리라.
여주 <여강길> 42큰 강은 흐르되 흐르지 않는 장중함이 있다.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제 갈 길을 가는 멋과 여유 역시 큰 강이 가지는 품격이다. 그런 이유로 강은 차갑고 무겁다. 그리고 또 깊다. 깊으니 강의 빛깔은 먹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검은 강은 북한강과 만나게 될 두물머리를 향해 무겁게 나아가고 있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창조의 순간을 향해 수만 년 전에도 그랬듯, 오늘도 묵묵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주 <여강길> 43● 밭이랑들 사이로 고추가 붉다
 
산길을 내려서자, 다시 강둑길로 이어진다.

강은 기우는 햇살이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 고즈넉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고요가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멈춰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호수가 되어버린 양 강도, 세상도 그저 적요(寂寥)할 뿐이다.

강둑길의 모퉁이에서 만난 한가한 강태공의 여유가 부럽다.
여주 <여강길> 44그렇게 걷다가 만난 고추밭.

갈색이 지천인 늦가을 날에 빛살을 제대로 머금은 붉음이 반갑고 또 아름답다. 못난 놈이라 추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그래서 밭주인의 외면이 못내 서러울 듯도 한데, 빛깔만큼은 생기발랄, 그 자체다. 추수가 끝난 빈 들을 지키는 나름의 서러움이나 외로움보다는 체념에서 우러난 달관과 관조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싶다.
여주 <여강길> 45여주 <여강길> 46누가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살아있는 존재들이 가져야 할 필수 자질이 아니던가. 절망보다는 희망이 정답인 것이다. 제 살아온 목적인 김장의 양념이 되진 못하였지만, 저 홀로 빛나다 땅으로 돌아가는 일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또 이렇게 지나는 행인의 눈에 띄어 사진으로나마 남았으니 그 또한 보람이 아니겠는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언제나 정답이다.
여주 <여강길> 47● 우만리 나루터와 느티나무

저 멀리 느티나무가 유아독존, 독야홍홍(獨也紅紅)... 강가의 평지를 장악하고 있다.

긴 세월의 온갖 풍상에도 꿋꿋이 이겨낸 자만이 가진다는 기품이 오롯하다. 그리고 늠름하다. 하필이면 바람 많은 강가에 자리를 잡아 3백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물과 바람에 시달린 그 애환이 오죽 파란만장했으랴. 그럼에도 오늘의 강건함을 간직한 그 기개와 강단에 새삼 감탄사가 인다. 그렇게 느티나무는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제공하였고, 그리고 그들의 이정표가 되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장승이 느티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쉼을 쉬고 있다. 이곳이 우만리 나루터다.
여주 <여강길> 48우만리 나루터는 여주읍 우만리와 강천면 가야리를 연결했던 나루터다. 느티나무 뒤로 보이는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아마도 이 나루는 여주장과 장호원장을 오가는 사람들, 친지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 땔감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리라. 오고 가는 길목에서 나루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결점이 되었고, 힘 좋은 뱃사공은 노를 저어 강의 이편과 저편을 이어주는 물길을 매일같이 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우만리 나루터는 1972년 홍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이렇게 수백 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느티나무만 남아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여주 <여강길> 49자료에 의하면, 홍수로 나루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이곳 우만리 나루에는 20명이 탈 수 있는 나룻배와 최대 10명까지 승선할 수 있는 거룻배가 각각 1척씩 있었다고 한다. 이 배는 소장수들의 소까지 실어 날랐다고 하니, 나룻배의 흔들림에 소들은 얼마나 놀랐을꼬. 저 강 건너에서 강을 건넌 소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소의 코뚜레를 손에 쥐고 갈 길을 재촉하던 소장수의 모습도 보이는 듯하고, 멀어져 가는 소장수와 소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짓는 뱃사공의 땀이 밴 미소도, 잘 가라는 인사말도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 당시 뱃삯은 얼마였을까.

우만리 나루의 마지막 사공은 나룻배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들에게서 매번 뱃삯을 받은 게 아니라, 년 단위로 1년에 겉보리 1말과 벼 1말을 거두었다고 한다. 어차피 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야 가까운 마을의 주민들인지라, 추수철이 끝나면 가마니를 지고 다니면서 뱃삯을 받았다고 하니, 그 수고스러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여주 <여강길> 50● 서산에 해는 지려하고 갈 길은 아직도 멀다

길이 멀다.

해는 머지않아 서산으로 넘어갈 것만 같고, 걸음은 저절로 바빠진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한데, 늦가을의 짧은 해는 바쁜 내 마음과는 사뭇 다르게 저 역시 바쁘다며 얼굴을 붉힌다. 그래~ 해는 해대로, 나는 나대로, 제 갈 길을 서두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뒤돌아본 우만리 나루터는 느티나무와 남한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여주 <여강길> 51길은 다시 산을 오른다. 산으로 이어진 길은 다시 낙엽의 사태를 맞아 제 스스로 길인지조차 잊은 듯하다. 걸음을 서둘러야 하는지라, 두어 시간 전에 걸었던 바로 그 길이건만 길 위에서의 감흥은 아까와 사뭇 다르다. 익숙함이 주는 심드렁함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해가 지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더 옮겨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재촉하게 된다.
여주 <여강길> 50-1그래도 샛노란 단풍든 풍경에 발걸음이 멈춰지고,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강천섬도 반갑다. 아무리 바쁘고 갈 길이 멀어도 지금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강렬한 욕망도 더불어 인다. 어차피 목적지의 그 길이나 지금의 이 길이나 다르면 얼마나 다를 것인가. 굳이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가보는 것 말고 더 무엇을 할 것인가.
여주 <여강길> 52길은 햇살이 드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선명하게 구별되어지기 시작한다. 어쩌다 숲을 뚫고 길 위로 내려앉은 빛살 한웅큼은 그대로 꽂이 된다. 그리고 낮아진 해는 나무의 옆구리를 비추는지라 노을의 색을 닮은 그 빛살의 퍼짐이 화려하고 또 섬세하다.
여주 <여강길> 52-1길가의 강아지풀의 여린 가지와 잎사귀에 매달린 빛들은 어느새 황금색으로 물들고 만다. 강아지풀은 촘촘한 그물 마냥 빛살을 가두고, 그렇게 빛살을 길어 올려 제 살 속 마디마디마다에 쟁여놓으니 종내는 스스로 빛이 되고, 보는 이는 마냥 눈이 부시다.
여주 <여강길> 53여주 <여강길> 53-1
● 여주 <여강길> 가는 길
 
자가용
- 강천보 주차장 이용
 
시외(고속)버스
- 서울고속터미널(06:30~22:00),
동서울터미널(06:20~22:30, 대체로 매 시간 30분 단위로 배차) 

▶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