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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무사 사진첩, 37년 만에 공개 ③ : '5·18은 폭도가 꾸민 내란' 군사재판 사진 공개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12.07 14:41 수정 2017.12.07 16:37 조회 재생수77,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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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기무사 사진첩, 37년 만에 공개 ③ :  5·18은 폭도가 꾸민 내란 군사재판 사진 공개
SBS 기획취재부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기무사 사진첩을 입수했습니다. 사진첩은 모두 14권으로 1,659장의 사진이 담겼습니다. 취재진은 이 가운데 6권, 688장을 확보했습니다.

사진첩에는 5·18을 조작하려는 군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담겼습니다.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도가 사전에 계획하고 모의한 내란이라는 것이지요. 계엄군은 선(善), 시민군은 악(惡)으로 기록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사진들만 골라서 만든 걸로 추정됩니다. 앞선 취재파일에서 밝혔듯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는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을 가져가고, 평상복 차림으로 위장한 군인을 투입해 시민군의 난폭한 모습을 채증하도록 했습니다. 일단 그렇게 모든 자료를 모은 뒤 입맛에 맞는 것만 추려낸 게 이 사진첩인 것이지요.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기무사가 기록한 군사재판 모습을 37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사진첩에는 모두 52장의 사진이 담겼는데 사진 속 재판부나 피고인 모두의 동의를 구할 수 없어 부득이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재판정 사진은 당시 기자들도 겨우 몇 장만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무사가 보관한 이 52장의 컬러 사진들은 재판부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군 관계자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기무사 사진첩, 37년 만에 공개왼쪽 가슴에 1번 번호표를 달고 있는 이 남성은 정동년 전 광주 남구청장입니다. 정 씨는 사진 속 1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내란을 일으킨 대학생 수괴 혐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80년 5월 광주를 조사한 전남합동수사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커다란 ‘내란 체계도’를 그렸습니다. 5.18은 김 전 대통령과 재야 수괴 홍남순 변호사, 대학생 수괴 정동년 씨 등이 사전에 모의해 일으킨 내란이라는 것이지요. 사형 선고를 받은 정 씨는 2년 뒤인 82년 12월 말에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기무사 사진첩, 37년 만에 공개군사재판 1심은 광주 상무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전교사 군사법정에서 진행됐습니다. 교실 한 칸보다 약간 넓은 공간에는 피고인 20~30명이 비좁게 앉았고 총으로 무장한 헌병들이 이들 사이에서 경계를 섰습니다. 정동년 씨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런 사진들은 모두 처음 봤다”며 “당시에는 변호사 조차도 무서워서 변론을 못 할 정도였다”고 당시 재판 분위기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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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과 구타…허위자백 강요

합동수사단이 정동년 씨를 대학생 수괴로 꾸밀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80년 5월 17일 밤 정동년 씨를 연행한 군인들은 곤봉과 채찍으로 고문과 구타를 가했습니다. 정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5백만 원을 받아 내란을 모의한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서였지요. 허위자백을 강요한 합수단은 80년 7월 정 씨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전남대 학생운동의 목표는 대규모 폭력 사태 유발로 현 정부를 퇴진시키고 김대중을 추대해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 적고 ‘정 씨가 김대중으로부터 5백만원을 받아 시위를 주동했다’고 적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적도, 돈 받은 적도 없는 정 씨는 영창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진 재판과정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돈을 받았다는 그 시각에 정동년 씨가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 씨는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88년 광주 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보안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 씨는 “80년 군사재판 당시 조작을 위해 허위자백을 강요하며 잔인한 고문, 구타 등 폭거를 했다”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습니다.

■ 다섯 달 만에 이뤄진 3심…전두환 ‘특별감형’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 검거된 사람은 모두 2,522명입니다. 이 중 404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았습니다. 중형이 예측되는 피고인들에게만 변호사가 선임됐는데 접견조차 제대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재판 시작 불과 한 달여 만에 정동년 씨 등 5명에게 사형, 7명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돼습니다. 다섯 달 뒤인 81년 3월 31일에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습니다.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된 것입니다.

하지만 형 확정 후 사흘 만에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 씨는 “민족적 비극인 광주사태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화합과 참여로 조국 건설에 총매진 해야겠다”며 특별 감형, 특별 사면을 실시합니다.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무기징역은 20년 징역으로 낮춰준 것이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이듬해인 8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특별사면 조치로 12명 전원을 형 집행정지로 석방합니다. 이들은 풀려났지만 5·18은 내란이고 폭동이었단 조작과 왜곡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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