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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남녀 평생 부동석' 사우디…무너지는 '터부'

이대욱 기자 idwook@sbs.co.kr

작성 2017.12.05 10:07 수정 2017.12.11 08:32 조회 재생수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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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는 이슬람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국가다. 공공장소에서 남녀 합석은 엄격히 금지됐고 당연히 여성이 스포츠 경기나 공연을 관람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 3월 사우디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와 이라크 국가대표팀의 축구 경기장 모습이다.
[월드리포트] '남녀 평생 부동석' 사우디…무너지는 '터부'1[월드리포트] '남녀 평생 부동석' 사우디…무너지는 '터부'2경기장에 모인 수만 명의 관중은 죄다 남성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링크된 동영상에서 여성 관중을 찾아보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lqhMR4TMnnQ
[월드리포트] '남녀 평생 부동석' 사우디…무너지는 '터부'3이런 사우디에서 며칠 전 그리스 출신의 크로스오버 음악가 ‘야니’의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은 사우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여성 관객의 입장이 허용된 것도 모자라 남녀 관객이 뒤섞여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월드리포트] '남녀 평생 부동석' 사우디…무너지는 '터부'4요가를 가르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사우디 소녀 라피아는 살해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지역 사회의 보수 이슬람주의자들이 ‘요가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운동’이라며 그녀를 협박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 사우디 정부는 요가를 스포츠 활동으로 공식 승인해 버렸다.

‘여성운전 금지’를 포함해 사우디의 ‘터부’가 최근 몇 달 사이에 거침없이 무너지고 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절대 권력을 장악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개혁 드라이브 속도는 예상보다 매우 빠르다. 사우디에서 여성의 지위 변화는 온건한 이슬람으로 회귀하겠다는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행보를 상징한다. 온건 이슬람 국가로 변혁하겠다는 의지는 결국 국가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개혁엔 반동이 따른다. 게다가 사우디는 정치와 종교 권력이 손을 잡고 탄생한 국가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오아시스 정착촌 지도자였던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보수주의 이슬람의 뿌리 ‘이븐 압둘 와합’ 사이의 정치-종교 동맹은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설의 근간이 됐다. 사우드 왕가의 정치적 행위는 종교지도자(울라마)들의 법적 해석(파트와)을 통해 인정됐다.

종교 권력의 동의가 왕권을 탄탄하게 만드는 자양분이었던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부패와의 전쟁’에 대해 이슬람 성직자들은 빈 살만의 손을 들어 줬다. 사우디 최상위 종교기관인 ‘최고 울라마 위원회’는 “부패와의 전쟁은 이슬람법에 의해 명령됐고, 국가이익에 따라 필요한 것이다. 부패와 싸우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고 울라마 위원회’ 성직자들은 오랜 동안 왕가의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다. 상당수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빈 살만의 행보에 불만을 품은 채 침묵하고 있다. 이들이 살만의 권력 독점에 위기를 느끼는 왕가 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빈 살만 왕세자가 11명의 사촌 형제들을 부패 혐의로 체포해 힘을 빼 놓았지만, 사우디에서 왕자로 불리는 이들은 천 명이 넘는다. 아직 때를 기다리는 다수의 불만세력은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수 있다.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정책의 성패는 국민들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 전폭적인 지지가 계속된다면 불만 세력들은 미처 기회를 노릴 틈을 갖지 못할 수 있다. 빈 살만 왕세자에게 다행인 점은 사우디 인구의 70%는 30세 이하라는 것이다.

사우디 지식인층 상당수는 외국에서 자유의 문화를 만끽한 젊은이들이다. 그들 내부엔 변화를 요구하는 DNA가 충만하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은 빈 살만 왕세자의 강력한 우군이다. 엉킨 실타래처럼 이래저래 복잡한 중동 정세에서 빈 살만의 개혁이 좌초해 사우디마저 혼란에 빠지는 건 그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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