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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육' 아닌 '노동 착취' - 위험 떠안은 '고3 노동자'

정성진 기자 captain@sbs.co.kr

작성 2017.12.05 08:36 수정 2017.12.05 08:50 조회 재생수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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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교육 아닌 노동 착취 - 위험 떠안은 고3 노동자
제주의 한 특성화고 3학년생인 이민호 군은 지난달 9일 현장실습을 하던 한 생수공장에서 작업 중 기계에 목 부위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군은 사고 10일 만인 지난 달 19일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군의 죽음은 ‘교육’이 아닌 ‘노동 착취’에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이 군 죽음의 책임자들은 그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고, 오히려 이 군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고3 학생, 19살 미성년자, 아직 꽃을 피우지도 못한 이민호 군에게 말입니다.

● 정직원이 해야 될 업무까지 떠맡았다
고교 실습생, 이민호 군, 사고이민호 군이 현장실습을 나간 건 지난 7월부터였습니다. 이 군에게 주어진 역할은 지게차로 포장된 생수병을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군은 특성화고에서 원예과를 전공했지만, 학교에서 지게차 자격증을 땄고 지게차 관련 일을 하는 생수공장에 현장실습을 나온 것입니다. 이 군의 아버지는 “해당 업체가 근무 환경도 괜찮고, 지게차 업무라 괜찮을 것 같다고 직접 권유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실습을 시작한 지 불과 2~3주 만에 이 군에게 더 많은 업무가 주어질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 군과 같이 일하던 한 직원은 이 군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기계 다루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기계 작동은 어떻게 하는지, 고장이 났을 때는 어디를 손봐야 하는지 등을 일주일 정도 짬짬이 배운 겁니다. 주말이 지나고 공장에 출근했더니 해당 직원은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장은 이 군에게 해당 직원이 그만뒀으니,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이 군이 해당 업무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19살 현장실습생이 자신이 맡은 지게차 업무에 더해 기계를 다루는 업무까지 ‘혼자’ 책임지게 된 겁니다.

매일 아침 8시 반쯤부터 저녁 7시, 8시, 늦으면 밤 9시가 넘어서까지 일해야 했습니다. 현장실습생은 하루 7시간, 회사와 협의를 통해 하루에 추가로 1시간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주 40시간 이상은 근무를 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민호 군은 매일 10시간 이상, 많게는 12시간씩 일했습니다. 현장실습생이 매일 기계 가동일지를 직접 작성해 공장 직원에게 보고해야 했습니다.

이 군에겐 주말도 없었습니다. 이 군의 어머니는 “토요일에도 일하는 땐 주말에도 집에 오질 않았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기숙사에서 주말을 보냈다”고 얘기했습니다. 현장실습생에겐 휴일 근무도 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군에게 초과 근무, 야간 근무, 휴일 근무는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 작업 중 갈비뼈 다쳤는데…"공장 올스톱 됐다. 나와 달라"

이민호 군이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며, 위험에 노출됐다는 신호는 사고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기계 근처에서 넘어져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 액정이 깨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사고 한 달 전인 지난 10월에는 기계에 옆구리가 부딪치면서 갈비뼈를 다쳐 응급실을 가야했습니다.
 
회사는 아픈 이 군에게 위로와 안전 대책을 수립하기는커녕 오히려 업무를 강요했습니다. 갈비뼈가 다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순간에도 회사에서 끊임없이 이 군을 찾았다고 이 군의 아버지는 얘기했습니다. 이 군이 맡은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흘째 회사에선 급하게 이 군을 찾았습니다. “공장이 올스톱 됐다”면서 당장 나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 이 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외부에 계셨고, 이 군 혼자 집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군은 혼자 있어 회사를 갈 교통편도 없다고 설명했지만, 회사에선 차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군은 ‘책임감’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군이 회사로 가게 됐다는 연락에 이 군의 아버지는 회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민호가 몸이 좋지 않으니 사람을 붙여 달라” 회사는 이 군에게 함께 일하던 실습생과 같이 일하도록 조치했지만, 일주일도 안 돼 다시 이 군은 혼자가 됐습니다.
 
● 잦은 기계 고장에도 조치 미흡…'안전장치', '안전 관리자'도 없었다
고교 실습생, 이민호 군, 사고이민호 군이 회사 직원들과 메신저로 나눈 대화 내용엔 항상 ‘야근’과 ‘기계 고장’이 있습니다. ‘오늘도 기계 고장으로 야근이 필요하다’는 상사의 얘기, ‘기계가 자주 멈춘다’는 이 군의 얘기. 하지만 이 군의 아버지는 회사에선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기계 고장으로 위험이 뒤따를 수 있지만 안전장치도, 관리자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기계 근처에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도, 출입을 막을 울타리도 없었습니다. 이 군의 죽음 이후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이 나오고 나서야 출입금지 팻말도, 울타리도 설치됐습니다. 이 군의 빈소를 찾은 공장 관계자들과 이 군 아버지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회사가 ‘안전 관리자’라고 지정한 직원은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직원이었습니다.
 
● 사고 당일에도 우왕좌왕…골든타임 놓쳤다
 
이민호 군이 사고를 당한 지난 달 9일. 그날도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적재된 생수병들을 들어 올린 리프트는 다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CCTV 화면을 보면, 생산된 생수병들이 계속 밀려오자 이 군이 당황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밀려오는 생수병들을 멈춰 놓고 고장 난 기계를 만져보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결국 이 군은 기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 군이 아직 기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때였습니다.
 
이 군이 기계에 끼인 순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군 주위에는 함께 일하는 직원도, 실습생인 이 군을 관리, 감독해야 할 직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분쯤 지나고 쌓인 생수병들이 빠지지 않자 그제야 이 군이 기계에 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군은 15분 만에 눌린 기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군 주위에 함께 일하는 직원만 있었더라도, 해당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직원만 있었더라도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애초에 고3 현장실습생에게 맡겨선 안 될 일이기도 했습니다.
 
● '학생 탓' 하기에 급급
 
이민호 군 참사 뒤, 회사에선 이 군의 유족 측에게 산업재해 신청서를 전달했습니다. 신청서 중 재해원인 및 발생상황에 회사 측이 작성해 넣은 내용은 이렇습니다. ‘적재업무 수행중 갑자기 운전조작반의 정지스위치를 작동하지 않고 설비내부로 이동하여 목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함’ 이 군이 사고를 당한 책임을 이 군에게 덮어씌운 겁니다.
 
CCTV 속 화면에서 고장 난 기계를 고치기 위해 뛰어다니는 이 군의 모습을 보면 이 군이 뭔가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이 군이 정지스위치를 작동했는지 안했는지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경위가 어찌됐든 회사는 ‘이 군의 책임’만을 강조한 겁니다. ‘안전 울타리가 없었다’, ‘기계가 고장 나 기계를 고치기 위해’, ‘기계가 오작동하여’ 등 회사 측 책임에 대한 문구는 단 한자도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차가운 영안실에 둔 채 회사와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호가 갈비뼈를 다쳤을 때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대한민국정부, 제주 고교생 이민호군이민호 군 아버지는 SBS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슬퍼해야 할, 가장 가슴 아플, 회사와 학교 모든 관계자들에게 ‘왜 우리 아들을 죽였냐’며 가장 화내야 할 사람이 가장 큰 책임감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SBS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이 회사와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하면서 지난달 19일 목숨을 잃은 지 2주 만인 지난 2일 유족 측과 회사 측이 가까스로 합의에 성공했습니다. 이민호 군의 장례식은 오는 6일 이 군의 모교에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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