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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 눈의 들보는 외면하는 공정위

박민하 기자 mhpark@sbs.co.kr

작성 2017.12.03 15:07 수정 2017.12.03 15:28 조회 재생수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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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제 눈의 들보는 외면하는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변협에 피심인 대리인(변호사)에 대한 징계 개시신청 의뢰’라는 자료를 냈다. 자료가 설명하는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2015년 12월. 시멘트 회사들의 담합행위와 관련해서 공정위는 성신양회에 과징금 436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 2016년 3월. 이 과징금 부과 건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의결됐다.
- 2016년 4월. 성신양회를 대리하는 A 변호사는 직전 3개년(2013~2015년) 가중 평균 당기순이익이 적자임을 주장하며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 2016년 6월. 공정위는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과징금을 원래 금액의 절반인 218억 원으로 줄여줬다. 이를 이의신청 재결이라고 한다.
- 2016년 6월 이후. 공정위는 성신양회의 2015년 재무제표에 처음에 부과하기로 한 과징금(436억 원)이 이미 반영돼 있음을 발견했다. (공정위는 앞으로 내야 할 과징금을 미리 반영한 2015년 성신양회의 재무제표가 적자임을 근거로 과징금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던 셈이다.)
- 2017년 2월. 공정위는 이의신청 재결(과징금 감경)을 직권으로 취소했다.
- 2017년 4월. 줄여줬던 과징금을 다시 부과했다.
- 2017년 4월 이후. 성신양회 변호인은 재결을 취소한 게 무효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 2017년 10월. 서울고법은 재결취소가 위법하지 않다고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 2017년 12월. 공정위는 성신양회 측 변호사 A가 공정위를 기만했다고 보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A에 대한 징계조치를 의뢰했다.


이런 사건 개요는 지난 국정감사 때 대부분 알려진 것이다. 공정위가 A 변호사에 대해 변협에 징계를 요청한 건 당연하다. 과징금을 줄여주는 규정의 취지는 해당 회사가 과징금을 낼 능력이 있는지를 감안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담합 사건으로 인해 부과될 과징금은 빼고 성신양회의 재무제표, 즉 과징금 부담 능력을 평가하는 게 맞다. 변호사 A가 이런 규정의 취지와 사실관계를 몰랐을 리 없다. 비록 A가 공정위에 제출한 재무제표, 즉 내야 할 과징금을 미리 반영한 재무제표가 회계 기준에 따랐기 때문에 허위 자료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A가 공정위를 기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더구나 A는 공정위에서 근무한 적도 있는 국내 최대 로펌의 변호사다.

공정위 발표 자료는 이상의 내용만 담고 있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주로 논란이 된 건 A 변호사가 허위 자료를 냈는지(하지만 회계 기준에 따른 재무제표여서 허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 담당 사무관이 먼저 과징금 감경 방법을 안내했는지(담당 사무관은 이 사건이 불거진 후 휴직을 했는데 휴직 사유가 ‘개인적’인 것이며, 이 사건 때문은 아니라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등이었다. 하지만 더 큰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과징금을 깎아주기로 의결했을 때(2016년 6월)는 이미 성신양회의 2015년 사업보고서가 공시된 이후였다. 누구나 성신양회의 사업보고서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원래 부과하기로 한 과징금이 2015년 재무제표에 반영돼 있다는 사업보고서 내용을 공정위의 그 누구도 확인해 보지 않고 200억 원이 넘게 과징금을 줄여줬다는 말인가?”

브리핑을 한 신영선 부위원장의 설명은 잠시 겉돌았다. 설명은 해명으로 변했고, 해명은 결국 실책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졌다. 해명과 인정의 요지는 ‘내야 할 과징금이 2015년 재무제표에 이미 반영돼 있다는 사실을 체크하지 못하고, 과징금을 깎아 준 것은 실수다.’라는 것. 누구나 인터넷만 열면 볼 수 있는 사업보고서조차 확인하지 않고,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깎아 주는 게 그동안 공정위의 업무처리 방식이었던 것이다.

신 부위원장은 부연 설명 중에 “책임 소재가 (과징금 감경) 심사보고서를 올린 심판담당관에게 있는지, 아니면 그 심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과징금 감경) 의결을 한 위원회에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고 전했다. “외부적으로는 A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신청하면서, 공정위 내부적으로는 업무 처리 과정에서의 실책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징금의 부과와 감경, 그리고 재부과는 물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 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김상조 위원장은 ‘(과징금 감경 의결을 한) 위원회가 책임질 게 있다면 져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신 부위원장은 전했다. 하지만 수백억 원이 오락가락한 이 실책에 대해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 7월 초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위가 지난 10년 동안 크고 작은 실수도 있었고, 판단의 중요한 오류도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 문제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공정위의 과거 잘못’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과할 지는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성신양회 사건이 누구의 잘못인지 따져보겠다는 공정위 내부의 논란이나, 일개 변호사한테 농락당할 정도로 공정위 실무진과 위원들이 허술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기보다 A 변호사에 대한 징계신청을 앞세우는 발표 행태를 보면, 언젠가 나올 ‘공정위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얕은 수에 당했다면 성을 내기에 앞서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