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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진화적 개발' 첫 시험대…전차 '완전 국산화' 갈림길

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7.11.27 08:02 수정 2017.11.27 13:45 조회 재생수9,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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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진화적 개발 첫 시험대…전차 완전 국산화 갈림길
지난 10월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보기 드물게도 한목소리로 국산 무기의 진화적 개발을 외쳤습니다. 진화적 개발은 자체 기술로 무기를 만든다는 해외 모든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양산 차수 별로 생산량을 조금씩 늘리면서 순차적으로 결함을 잡아가는 식입니다. 유독 우리나라만 정해놓은 목표에 완벽하게 도달해야 전력화를 하는 완성형 개발을 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건 것입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진화적 개발을 들고나온 이유는 명쾌합니다. 방사청 국정감사 때 나온 말들을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300명 태우는 여객기에 승객 3~4명 안 왔다고 그 사람들 올 때까지 기다릴 거냐", "안 온 승객들은 대기로 돌리고 일단 비행기 띄워야 한다", "완성형 개발하느라 지난 10년 세월을 방산비리로 허비했는데 진화적 개발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도 방산비리로 세월 보내게 될 것이다", "토마호크, 아파치도 최소 성능만 맞추면 초도 배치한다", "미국뿐 아니라 심지어 북한도 최소 성능 60%만 나오면 배치한 뒤 결함 잡으면서 무기 완성한다".

완성형 개발의 프레임에 갇힌 우리나라에서는 개발 과정이든, 전략화 이후든 소소한 결함이라도 발생하면 감사원, 국회, 언론이 방산비리라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과잉반응이고 피아(彼我) 구분 못 한 채 국산 무기의 씨앗을 짓밟는 짓이었습니다.  

전제국 방사청장은 국회의원들의 진화적 개발 방식 적용 요구에 "적극 검토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이제 곧 '진화적 개발이냐', '완성형 개발이냐' 첫 시험대가 열립니다. 지난 20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론을 못 내린 국산 전차 K-2 흑표의 국산 변속기 채택 여부를 놓고 모레(29일) 국방장관, 방사청장, 국방과학연구소장, 국방기술품질원장 등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다시 만납니다.

● 세계 최고 독일제 변속기 vs 첫 국산 1,500마력 변속기

K-2 전차 1차 양산분 100대에는 독일 MTU사의 엔진과 독일 RENK사의 변속기가 장착됐습니다. 엔진과 변속기 등의 복합체를 '전차의 심장' 파워팩이라고 부릅니다. 세계 최고의 엔진과 변속기이지만 독일제 심장을 장착했으니 K-2 1차 양산분은 국산이라 부르기도 멋쩍고 수출한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입니다.

2차 양산부터는 국산 심장을 달 계획이었습니다. 두산 인프라코어가 엔진을, S&T중공업이 변속기를 맡았습니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1,500마력 엔진의 개발과 양산 평가를 통과해서 K-2 장착 준비를 마쳤는데 S&T중공업은 1,500마력 변속기의 개발 평가에서는 합격했지만 양산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군 앞에는 2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K-2 2차 양산분의 엔진은 국산으로 이미 정해졌습니다. 국산 엔진에 독일제 변속기를 묶는 이른바 한독(韓獨) 하이브리드 파워팩을 장착하느냐, 국산 변속기를 진화적 개발 방식을 적용해 채택한 뒤 명실공히 국산 파워팩을 장착하느냐입니다. 좁혀서 보면 미군 장갑차량에도 쓰는 세계 최고의 RENK 변속기와 사상 처음으로 국산 1,500마력을 만들어 본 S&T중공업의 변속기의 경쟁입니다. 골리앗 RENK와 다윗 S&T중공업의 싸움입니다.

● 보기 불편한 국산과 독일 변속기의 평가 기준

독일 RENK 변속기는 2014년 어떤 평가도 없이 도입됐습니다. 시험평가를 거쳐야 했는데도 안 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K-2 1차 양산분 100대에서 중대 결함이 속출했습니다. 몇백 km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무려 16대에서 쇳조각, 쇳가루 등이 쏟아졌습니다. 결함률이 16%로 상당히 높은데 아직까지도 결함 원인을 못 찾고 있습니다. 심각한 고장을 일으킨 몇 대는 우리나라에서 고칠 수 없어 제조사가 있는 독일로 보내졌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 등은 독일 변속기 고장을 은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독일제 변속기를 제거한 K-2가 언제 움직일 수 있을지 육군도 방사청도 모릅니다. 여권의 한 의원은 "독일제 변속기는 '성능에 이상 없다'는 진술서 한 장으로 도입했는데 결함이 쏟아지고 있다"며 "반면 국산 변속기는 가혹한 평가를 통과해야 하니 전혀 형평성에 안 맞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차 국산화국산 변속기는 분명히 가혹하지만 개발 시험평가는 통과했습니다. 평가의 핵심은 9,600km를 320사이클로 나눠 주행하면서 내구도 결함 즉 중대 결함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9,600km를 얌전히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급출발, 급가속, 최고속도 주행, 급정거, 급선회 등 가혹한 주행법만 골라서 쉴 새 없이 가동합니다. 개발 평가에 통과했을 때 업체만이 아니라 국방부, 방사청도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1,100마력 변속기밖에 만들지 못하던 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인 1,500마력 변속기를 만들게 됐다"며 기뻐했습니다.

개발 평가를 통과했으니 양산 평가도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복병이 등장했습니다. 양산 평가의 기준이 그러잖아도 가혹했던 개발 평가 기준보다 몇 단계 더 강해진 것입니다. 개발 평가의 기준은 "9,600km를 '내구도' 결함 없이 주행해야 한다"였는데 양산 평가의 기준은 "9,600km를 결함 없이 주행해야 한다"로 바뀌었습니다.

'내구도'라는 한 단어가 빠졌을 뿐이지만 그 차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개발 평가 때는 창정비 수준의 내구도 결함 즉 중대 결함이 발생했을 때에만 불합격으로 평가되지만 양산 평가에서는 오일과 필터 교체를 제외한 결함은 소소해도 모두 불합격 도장을 받는 식입니다. 엔진, 전차 차제에도 없는 초강력 규정이 변속기에만 적용된 것입니다. 국산 변속기는 지금까지 6차례 양산 평가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불합격했습니다. 한번은 결승선까지 2,490km 남긴 7,110km에 도달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습니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합격이 불합격이 되고, 불합격이 합격이 되는 격입니다. 방사청 관계자는 "개발 평가 기준보다 강화된 양산 평가 기준을 업체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업체 측은 "정부 기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기준 변경을 업체 대표 한 명이 거부할 수는 없었다"고 항변합니다. 

● 독일제 vs 국산 변속기 정면 승부해보자!

며칠 전 국방부 핵심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는 "독일 RENK 변속기와 국산 S&T중공업 변속기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어떨까", "이기는 쪽을 K-2에 장착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지만 S&T중공업이 "모든 비용을 다 대겠다"며 실제로 제안했던 방법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평가 받은 적 없고 야전에서 16% 중대 결함이 발생한 독일제 변속기와 가혹한 개발 평가는 통과했지만 더 가혹해진 양산 평가의 산을 넘지 못한 국산 변속기. 만약 같은 기준으로 한독(韓獨) 변속기 대결을 하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란 평가가 국내 방산업계뿐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무기 수입상은 "전력화된 독일제 변속기의 성능과 그동안 평가 과정에서 나온 국산의 성능을 비교해 보면 어떤 변속기가 나은지 단정하기 어렵다"며 "진화적 개발의 관점에서 보면 독일제 변속기보다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처음으로 개발해 본 국산 1,500마력 변속기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야당의 한 의원은 "국산, 독일제 모두 결함이 있다고 하면 국산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며 "양산 차수를 늘리면서 결함을 수정해 보다 나은 국산 변속기로 키우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어떤 변속기를 선택해 K-2에 장착할지는 모레 저녁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