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더저널리스트] 부모님의 폐로 숨쉬는 딸…하지만 수술은 '불법'이었다

※ SBS 뉴스가 '더 저널리스트(THE JOURNALIST)' 시리즈로 시청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번 순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폐를 하나씩 이식받는 대수술을 통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스무 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사연을 취재한 정책사회부 남주현 기자입니다. <편집자 주>
 
■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병명을 낯설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병인가요?
 
화진 씨는 중환자실에서 만 20살이 됐어요. 대학 입학만 해놓고 다니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2014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숨이 차고 기력이 떨어지고 그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화진 씨 같은 경우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그런 폐 고혈압인데 보통 20~30대 여성들한테 많이 나타나고 예후가 좋지 않아서 폐 이식 말고는 방법이 없는 병입니다. 문제는 이 폐 이식이라는 게 응급도가 높은 환자들 중심으로 순서대로 이식을 받게 돼있어요. 예를 들면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에 가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는 환자에게 먼저 수혜가 가기 때문에 화진 씨 같은 이런 특발성 고혈압 환자들은 거의 이식을 기다리다가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 폐 이식만이 살 길이군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법으로는 수술이 불법이라고요?
 
뇌사자 장기이식을 받기까지 폐 이식 같은 경우는 평균적으로 한 4년을 기다려야 돼요. 그래서 아산병원 같은 경우에 폐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한 절반 정도는 기다리다가 사망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화진 씨 같은 경우는 이미 심정지가 한 번 왔고 이게 서서히 나빠지면서 언제 또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애가 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방법을 찾다 찾다가 국민신문고에 올렸는데 이식 수술이 불법이라는 답을 받게 된 거죠.
 
일본에 다테 교수라고 일본 교토의대 교수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생체 폐 이식을 많이 하는 권위자가 있어요. 그래서 화진 씨 부모님이 "원정 이식 수술이라도 받겠다"고 해서 비행기 표까지 예약을 해놓으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랬는데 마침 아산병원도 생체 폐 이식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다테 교수와 계속 접촉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산 병원은 다테 교수로부터 "그쪽 병원 환자가 지금 우리 병원으로 수술을 받으러 오려고 한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고 아산병원에서 "그러면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해보자"고 해서 다테 교수가 와서 수술을 참관을 했다고 해요.
 
■ 다행히 수술이 잘 됐습니다. 부모님의 폐로 살아난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화진 씨 같은 경우는 21일에 수술을 하고 26일인가에 눈을 떴는데 그 날이 마침 생일이었대요. 그래서 눈을 뜨고 날짜를 보고 '아, 내가 수술이 잘 끝났구나' 생각을 했다고 해요. 20번째 생일을 중환자실에서 맞긴 했지만 두 번째 삶을 부모님께 선물 받은 셈이죠. 이후에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작은 케이크도 가져다가 파티도 하고 그랬는데 부모님이 일본으로 가려다가 이제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결심하게 된 상황을 듣고는 막 울더라고요. 펑펑 우는 게 아니라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나는 그런 거죠.
 
화진 씨가 처음에는 수술을 안 받겠다고 그랬대요. 너무 죄송하잖아요.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절개를 해서 폐를 떼어 내는 게 큰 수술인건 확실하고 그리고 제가 아마 그 입장이어도 죄송했을 것 같아요. 화진 씨가 되게 착한 친구 같던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 아팠던 거죠. 병원을 많이 다니면서 그것만으로도 사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또 나를 위해서 선뜻 폐를 내주시겠다고 하니까 부담스럽고 죄송했던 것 같아요.
 
■ 폐 이식을 해줄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부모님이 선뜻 나선 거군요.
 
화진 씨 같은 경우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고 하더라고요. 폐 이식을 하려면 두 명의 기증자가 필요합니다. 근데 한쪽씩 이식해서 그게 마침 어머니와 아버지의 폐가 잘 맞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죠.
 
폐 고혈압이라는 게 심장에서 폐로 가는 동맥이 있는데 거기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서 좁아집니다. 폐 기능도 떨어지지만 심장에 굉장한 무리를 주거든요. 화진 씨도 약물치료를 계속 해왔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폐 이식 외에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는 질병이에요. 화진 씨 같은 경우는 아버지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 그리고 어머니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받았어요. 이게 그림으로 보셔야 아는데 사이즈나 여러 가지 잘 맞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다 그러더라고요.
 
■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떼어 내는 수술인 건데 얼핏 듣기에는 좀 무섭습니다.
 
생체 이식이 우리나라에서 합법화가 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그런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생체 이식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떼어 내서 다른 사람한테 이식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기증자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굉장히 위험을 담보하고 목숨을 걸고 하는 수술이에요. 내 신장을 가족에게 떼어 준다고 하더라도 그건 굉장한 위험을 담보하고 하는 거잖아요. 나중에 뭐 한쪽 남은 신장이 안 좋아질 수도 있는데 그런 거를 담보로 하고 현재의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래서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게 뇌사자 장기이식이 활성화가 되서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인데 그게 잘 안되니까 이런 생체 폐 이식이라는 고육지책이 나온 거지요. 또 화진 씨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이 주신 거잖아요. 부모 자식이라는 특수 관계가 있지만 이게 가족 간의 이식이 조직이 맞지 않아서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주기 어려운 상황도 있는데 이걸 너무 가족들에게 해결하라고 몰아붙이는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고 어떤 분들은 말씀하시더라고요. 사회가 해결을 해주지 못하니까 가족들이 하는 거죠. 우리는 이제 미담으로 보도를 했긴 했지만 그게 '굉장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는 상황입니다.
 
■ 의료진 이야기를 해보죠. 현행법상 불법인데 수술을 감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수술방 네 개가 동원돼서 의료진은 50명 정도가 투입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면 한 10시간정도 걸리는 대수술이었죠. 실제로 수술 영상을 보면 떼어 낸 폐까지 보여요.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수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기징역까지도 감수하고 의사면허 걸고 했다"고 말한 최세훈 교수님이 부모님의 폐 적출을 담당하신 분이에요. 의료진은 50명이나 되고 집도의는 박승일 교수님이 계시지만 어쨌든 법에서 허락하지 않은 장기를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떼 낸 당사자는 최 교수님인 거죠. 2008년 이후부터 계속 교토 의대 다테 교수님하고 교류를 하면서 폐 이식 수술 준비를 해왔고 실제로 수술하기 전에 굉장히 많은 준비를 했어요. 병원 내에 윤리위원회는 물론이고 복지부와도 충분한 교류를 했고 흉부외과 학회, 이식 학회 이런 쪽에 환자 상태를 충분히 설명을 하고 이렇게 수술을 빨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걸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술을 하고 보도가 되고 그러면서 법 개정을 이끌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거죠. 사실 모든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걸 위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이제 법적 검토에서부터 엄청난 과정을 거친 거죠.
 
■ 놀라운 건 이른바 '불법 수술'을 감행했던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서요?
 
과거의 예를 보면 제가 취재파일에도 썼지만 1988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간이식 수술이 이루어졌을 때 서울대병원에서 했는데 그때는 뇌사 개념이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도입이 안 됐던 때라고 합니다. 이식 수술하고 절제를 하는 순간 그 환자는 사실상 사망을 하는 거기 때문에 살인죄가 적용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 후에 법이 바뀌었고 2012년에 소아 장기를 이식할 때는 위를 비롯해서 7개 장기를 동시에 이식했는데 그때도 위와 몇 개 장기는 이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법에서 허락하지 않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것도 이제 수술 이후에 바뀌었고요. 그리고 올해 2월에 대구에서 뇌사자의 팔을 이식한 수술이 있었죠. 그분이 몇 달 전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구단에서 시구도 하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 분에 대한 수술 이후에 뇌사자의 손, 팔을 이식하는 수구 이식도 합법화하는 쪽으로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에요.
 
■ 이번 '생체 폐 이식' 수술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런 일이 굉장히 많이 반복돼 왔다고 하더라고요. 복지부에 '왜 이런 건가? 왜 좀 미리미리 바꿔서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의사들도 위험하지 않도록 하면 좋은데 왜 그럴까?'라고 물었더니 '글쎄 뭐 법이 의학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근데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거는 조금 다르긴 해요. 이게 생체 이식이기 때문에 굉장히 더 조심스럽고 여러 가지 따져봐야 할 것들과 윤리적인 문제들이 많긴 합니다. 어쨌든 이것도 복지부에서 이미 방향을 잡았고 이제 개정 작업을 진행을 할 거예요. 그럼 반년 후 내년 상반기에는 아마 합법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진 씨의 부모님은 이번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끝났으니까 빨리 합법화가 돼서 다른 환자들 특히 화진 씨 같은 젊은 환자들이 혜택을 봤으면 좋겠다고 그런 말을 많이 강조하시더라고요. 사실 이렇게 젊은 여성 환자가 선뜻 언론 취재에 응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부모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살짝 마스크 쓴 모습으로 좀 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셨고요.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또 기쁜 일이면 그랬을까요. 다른 환자들도 화진 씨 같이 수술을 받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깔려있지 않았다면 저희가 이렇게 취재해서 알려드릴 수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 남주현 기자
더저널 남주현 편
지난 2003년 입사한 남주현 기자는 사건팀과 문화부, 스포츠부에서 다양한 취재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2015년부터 정책사회부 의료팀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기획 : 정윤식 / 구성 : 안준석, 장아람 / 촬영 : 주범, 이용한 / 디자인 : 김은정, 정혜연 / 편집 : 김보희,한수아 / 내용정리 : 방해리)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