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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과의사 이국종의 '칼의 노래'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7.11.23 15:57 수정 2017.11.29 13:44 조회 재생수144,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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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외과의사 이국종의 칼의 노래
▶[SBS 보도 기사링크]"환자 인권은 환자 살리는 것" 작심 발언한 이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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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는 귀순 병사 상태에 대해 2차 브리핑을 했다. 그는 "선생님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귀순 병사의 상태에 관해 알고 싶어서 오셨겠지만 오늘은 다른 할 말이 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스스로를 "칼을 쓰는 사람이라 말이 말을 낳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태도는 그가 의식하던 하지 않았던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과 닮아있었다. 실제로 이 교수는 몇몇 인터뷰에서 <칼의 노래>를 감명 깊게 읽었고, 몇몇 구절을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의사이기도 하지만 해군의 일원이라고도 했다. 그의 모습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군인의 정서와 비슷해 보였다. 칼을 들고 생과 사의 기로에서 싸우는 자신에게 부질없어 보이는 말들이 둘러싼 현실이 통탄스럽다는 투였다. 그를 둘러싼 말은 물론 음해의 말, 비난의 말이었다.

'칼 쓰는 사람' 이국종은 이날 많은 말을 쏟아냈다. 칼만으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말들을 감당할 수 없다며 자신도 말로 맞섰다. 브리핑은 오전 11시에 시작해 낮 2시 10분쯤 끝이 났다. 길어지는 브리핑에 많은 영상기자와 취재기자들은 돌아갔고, 마지막 남은 기자들의 질문이 소진될 때까지 이국종 교수는 자리에 남아 답을 했다. 이 교수는 에둘러 말하거나, 답을 피하지 않았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말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다. 북한 병사의 상태를 지나치게 누설했다는 지적을 받은 상태였지만, 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국종 교수● 똥과 피가 뒹구는 현실

정의당 김종대 국회의원은 귀순 병사의 "기생충과 내장의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다 공개"한 건 인격 테러라고 지적했다. 김종대 의원은 이후에 이국종 교수를 지칭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당사자는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꼈다. 병원장에게 몇 번을 호출 당했다고 했고 중증외상센터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생충과 똥은 의사로서 자신이 통상적으로 진단하고 설명하는 범주에 있다고 해명했다. 꼬여있는 장을 엉덩이로 들어온 총알이 몇 번이나 관통한 상황에서, 기생충의 존재는 장을 터지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상태가 악화돼 장이 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되물었다. 그는 똥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했다. 대장이 터지는 경우 똥이 장 밖으로 새어 나와 몸 안에 붙는다. 박테리아들은 몸속 따뜻한 온도 안에서 피에 있는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석해균 선장의 경우도 수 시간 만에 박테리아가 번식해 고름으로 몸이 부풀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북한 병사의 귀순과 몸속의 '기생충과 분변'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증거라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또 반대쪽에서는 그런 모습이 환자의 정보를 누설하면서까지 이용해 북한 사회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며 지적하는 상황이었다.

오가는 말들 사이에서 이 교수는 수술하느라 기사를 읽을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북한 귀순 병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중증외상센터에는 150명의 똑같이 중요한 환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피를 뒤집어쓰고 수술하는 현실을 말했다. 헬기로 긴급 이송을 하고 수술을 하면서 다리를 다치는 게 다반사인데 감염된 환자의 피를 뒤집어쓴다고 했다. 똥과의 싸움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 얼마나 처절한지 설명했다. 똥과 피가 뒹구는 현실에 지쳐있다는 투였지만, 열정적으로 비난에 반박하고 자신을 해명했다.

이국종 교수
"여기 화장실 가서 변을 안 보시는 분 있습니까. 저는 피하고 정말 똥물이 얼굴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끼얹어 들어오는 상황에서 매일매일 삽니다. 외과는 대단한 철학을 하는 문과형 인간이 아닙니다. 외과의사는 칼로 남의 몸을 해체하고 사느냐 죽느냐만 존재하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이 교수는 죽음에 대해 자주 말했다. 자신은 헬기 비행을 나갈 때 '죽는 건 두렵지 않다. 다만 불구만 되지 마라' 이런 마음으로 나간다고 했다. 어차피 한번은 죽는 것인데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다.

이 부분에서 이국종 교수의 단어 사용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삶의 미련이 없다는 태도였고, 과도하게 절망적이거나 비장한 느낌도 받았다. 이렇게 말하는 이는 죽음과 삶에 대해 과장되고 쉽게 말하는 경우거나, 항상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있어서 그 말들이 너무 자연스러운 경우가 아닐까. 이국종 교수가 처해있는 상황으로 미뤄볼 때 후자라고 느껴졌다.

이국종 교수
"저희가 생각하는 환자의 인권은 환자가 죽음의 선상에 서 있을 때 물러나지 않는 겁니다. 물러나지 마라고 합니다 제가. 저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잘릴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이 교수는 브리핑 내내 거의 표정이 변하지 않아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 매서운 눈은 농담을 하는 순간에도 웃음을 짓지 않았다. 고된 육체노동 탓인지 신경을 많이 쓰는 때문인지 군살 하나 없이 마른 몸은 성격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살리느냐 마느냐의 전쟁터에 서 있는 이 교수의 비장함은 과장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주대학병원 이국종 교수● 저에게는 300명의 직원들이 남아있습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의료인의 인권도 생각해달라며 간곡히 부탁했다. 중증외상센터 직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비참하게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 300명의 직원들, 특히 자신과 헬기를 타고 나가는 '최정예 30명'의 직원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희생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국종 교수
"비행을 하다가 저희 간호사가 유산을 한 적도 있고, 저희 수석코디네이터 의사는 300여 시간 저하고 같이 비행을 하다가 쓰러진 이후에 다시는 비행을 하지 못 합니다. 이제 자꾸 걷다가 쓰러집니다. 얼마 전에도 손가락이 부러진 간호사가 사직을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손가락이 부러지고 유산을 하고 그럴 때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저도 어깨가 부러졌었고 그런데 저희 헬기 타고 출동할 때 그런 거에 대해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씁니다."


북한 병사에 대해 치료비 청구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돈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고 답했다. 돈을 생각하면 하루도 일을 못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헬기를 타고 나가는 일은 의료보험 수가가 잡히지 않아, 오히려 의료보험 적자로 이 교수의 월급이 깎이는 현실이다. 돈을 생각하면 환자가 '죽어가는 꼬라지'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며, 병원 원무팀이 오면 자신은 도망 다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돈 문제 때문에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견제가 많지만 당장의 현실에 신경 쓰지 않고 환자 치료만 본다고 말했다. 중증외상센터는 직원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지만 이 상태로는 스스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외상센터가 없어질 때까지, 마지막까지 한 명 더 살리려고 수술하는 것 그 외에는 없다고 답했다.

● 내부의 적, 외부의 적

스스로 '지잡대 시골의사'로 지칭한 이 교수는 자신이 서울의 메이저 대학 병원이었으면 브리핑을 열어 해명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류 대학이 아니어서 자신이 의료계에서 심한 견제와 비난을 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서울대나 연세대 병원이었으면 칼로 수술을 해서 환자를 살리면 그만이지 의사가 나와 말로 설명하는 일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증거로 지난해 국감기간에 한 의사가 국회의원 보좌관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를 공개했다. 문자에는 자신을 "지원이 형님하고는 김대중 대통령과 홍업이형 때부터 패밀리로 지냈다"고 소개하면서 "이국종 교수님처럼 쇼맨쉽이 강하신 분의 말씀만 듣지 마시라"고 쓰여 있었다. 또 한 문자에는 "외상센터는 이국종 교수가 중증외상환자도 아닌 석선장을 데리고 와 수술하는 멋진 쇼를 잘해서 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이 통과되어 전국에 13개가 설립될 수 있었다."고 나와 있었다.

외부의 적 외에도 병원 내부의 정치적 압력에서 쉽지 않은 상황처럼 보였다. 이 교수가 센터장인 중증외상센터는 돈벌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적자가 나는 기관이다. 병원 내부에서도 달가워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인격 테러' 지적 이후 병원장에게 불려갔다며 '직장인'으로서의 어려움을 솔직히 말했다.

브리핑 과정에서도 내부의 문제가 엿보였다. 이국종 교수가 오랜 시간 브리핑을 하자 홍보팀에서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끝내달라고 하거나, 북한 병사 관련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몇 차례 제지하는 경우가 있었다. 몇 번 제지를 당하자 이국종 교수는 터져 나오듯 홍보팀에 소리를 쳤다. "또 제 이름을 병원에서 삭제하실 거냐. 제가 병원에서 받은 연판장을 다 까버릴까"라는 알듯 모를 듯한 발언을 이 교수는 홍보팀에 했다. 이 교수는 밖에서도 안에서도 많은 압력에 시달리는 듯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조정에서의 정치가 어떻듯 왜구와의 전투만을 준비하는 수군통제사처럼 이 교수는 "수술에만 집중하려 한다"고 이내 담담히 말했다.

● 빨갱이 혹은 친미주의자

중증외상센터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탓일까.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압력을 받는 이 교수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도 각각 다르게 비판받는다고 말한다.

북한 병사를 병원으로 데리고 온 헬기가 미군 소속이라는 게 드러나자, 중증외상센터가 미군 항공의무후송팀인 'Dustoff'팀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교수는 진보 성향의 인물에게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이 깔린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기억하느냐"며 왜 미군하고 일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졸지에 자신이 '친미주의자 이자 적폐'가 되었다고 한다.

최근까지 이 교수는 '빨갱이'라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헬기를 몰고 진도 해역까지 갔던 이 교수는 한 강연에서 국가의 구조시스템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797회 :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친미주의자와 빨갱이라는 비판에도 이 교수는 미군과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군 Dustoff팀의 블랙호크 헬기가 주한미군을 일 년에 2천여 명 중증외상센터에 실어 나른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의 기본을 미국에서 배웠다. 유학 시절, UC샌디에이고 대학에서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인 의대 교수가 이국종 교수의 스승이다. 30분 내에 환자를 이송해 수술대에 눕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미군과 함께 일하지 않았더라면 배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자신이 헬기를 탈 때 입는 항공자켓에 붙어있는 Dustoff팀 패치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자신에게는 환자가 북한 병사 뿐 아니라 중국 동포, 필리핀인 등 수많은 나라에서 한국으로와 일하다 다친 노동자인지, 주한미군 장병인지는 상관없다는 이국종 교수. 어느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진료비를 걱정한다거나 출동하지 않거나 따지며 살 바에는 외과의사를 관두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에게 환자의 국적이나 이념은 중요치 않다. Dustoff팀의 정신처럼 "전장의 아군을 향한 주저하지 않는 헌신적 봉사(Dedicated Unhesitating Service To Our Fighting Forces)"만 남았다.
이국종 교수● 영웅심, 사명감, 밥벌이의 지겨움

이국종 교수는 세간에서 말하듯 쇼맨십이 강한 영웅주의자일까. 브리핑의 첫 부분에서 그는 자신은 말들을 감당할 수 없다며, 말보다 칼을 강조했다. 하지만 3시간여의 브리핑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말로 자신과 중증외상센터를 대변하려했다. 입을 좀처럼 열지 않으려는 여느 의사들과는 꽤나 다른 모습인 건 분명하다. 스스로 정치에 아둔하다는 그는 다른 의사들이 견제할 정도로 정치권에 큰 움직임을 만들어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몸과 칼로 수술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그를 가만히 수술만 하도록 놓아두지 않는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이국종 교수에게서 분명 이순신의 모습과 태도가 엿보였지만, 위인전에 나오는 왜구를 물리치고 추앙받는 '민족의 영웅' 충무공의 모습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살지 못해 죽는 사람들을 보며, 죽지 못해 사는 <칼의 노래>의 인간 이순신에 가까웠다. 사명감으로 힘든 업무를 버텨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비웃는 듯 "일이라서 하는 거"라고 답했다. 그에게 외상센터의 일은 생명을 살려내는 숭고하고 고상한 시간이라기보다는 피를 끼얹고, 똥과 싸워내는 지긋지긋한 밥벌이라는 뉘앙스였다.

이국종
"저희가 생각하는 건 거창하게 거대담론으로 환자의 인권, 국가, 조국의 명예 이런 게 아닙니다."


눈이 멀고 어깨를 다쳐가며 36시간 내내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정말 그저 밥벌이기 때문인지, 영웅심이나 소명의식에서 나오는 건지는 그에게 중요치 않아 보였다. 누군가는 추상적인 비유를 들며 글과 말로 이국종 교수를 설명해내려 애쓰는 이 순간에도 이국종 교수는 칼을 잡고 수술대에서 죽어가는 환자와 대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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