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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B손보, 경주 지진 직후 '자동차 지진 특약' 없앴다

회사 측 "가입자 적어 보험료 재책정 중"…가입자 "경주 지진 후 가입자 늘자 꼼수 중단"

[취재파일] KB손보, 경주 지진 직후 '자동차 지진 특약' 없앴다
직장인 한 모 씨는 15일 아침 아내에게 차를 맡겼습니다. 남편 대신 차를 몰고 나선 아내는 포항 시내 한 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댔습니다. 학교 건물 바로 옆 주차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 29분 규모 5.4의 지진이 엄습했습니다. 학교 외벽에서 구조물이 떨어졌고, 바로 한 씨의 차량 지붕에 떨어졌습니다.
포항 지진으로 파손된 한 모 씨의 승용차. 외벽 구조물이 지붕을 뚫고 들어가 약 700만 원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이 구입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는 새 차 지붕을 뚫고 차량 안쪽으로 박혔습니다. 사람이라도 타고 있었더라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만한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한 씨는 보험사에 자차 보험 보상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KB 손해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는 "지진 특약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씨는 결국 자비로 차량을 견인해 수리를 맡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견적이 700만 원도 넘게 나왔습니다.
포항 지진으로 파손된 한 모 씨의 승용차.
그런데 한 씨는 보험사 상담원 통화 과정에서 들은 '지진특약' 얘기에 더욱 속이 상했습니다. 한 씨는 보험사 통화 과정에서 KB손보가 지난해 9월 21일 해당 지진 특약 상품을 판매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작년 9월 21일이면 경주 지진(2016.9.12)이 일어난 직후입니다.

취재 결과 KB손보는 자동차보험에 '지진소요위험 담보'라는 지진특약을 운영해오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어느 회사도 보장해주지 않던 지진 보장이었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KB 손보 관계자는 "지진 특약은 보험료가 2천 원 수준으로 위험도에 비해 낮게 책정돼 지난해 잠정 중단했고, 현재 적정 보험료와 재보험 등을 고려해 가격 재책정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진=KB손해보험 홈페이지)

최근 5년 간 총 수입보험료가 약 1천만 원. 이 정도 보험료로는 차 한 대만 전손 처리돼도 5년 총수입이 다 날아가는 셈이어서 부득이하게 판매를 중단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지진 특약으로 들어오는 보험료 수익은 턱없이 작은데, 한번 지진이 나면 가입자들에게 내줘야 할 보험금 액수가 커 타산이 맞지 않아서였던 것입니다.

보험사도 민간 영역이고,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얼마든 경영 판단에 따라 상품을 없앨 수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진 특약을 없앤 시점이 석연치 않습니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이후 화재보험 지진 특약을 포함해 지진 보험 가입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실제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수요자가 막 늘어날 무렵, 회사는 해당 상품을 없애버렸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보험사들이 화재보험 지진 특약 판매를 중단했다가 금융당국의 질타를 받은 뒤 판매를 재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40대 가까운 차량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 차량들은 보험을 통해선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은 그저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없는 살림에 차량 수리비나 구매비를 짜내야 할 형편입니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도 천재지변이라는 이유로 1원 한 푼 보상받을 수 없는 보험 가입자들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하는 것은 '경영판단'이라는 외피를 쓰고 '돈이 되는 장사'에만 집착하는 보험사들의 이런 모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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