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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나는 말하고 있다 ① :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말, 수어(手語)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당신은, "안녕하세요"를 몇 개의 다른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가?

질문을 받자마자 "헬로(hello)"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이어 "니하오(你好)", "곤니찌와(こんにちは)", "봉쥬르(bonjour)", " 구텐탁(Guten Tag)" 정도가 떠올랐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언어를 알고 있다고 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두 주먹을 가슴에서 아래로 내린다.'

혀 대신 손을 움직여 표현하는 언어, 흔히 수화라고 하는 '수어(手語)'의 "안녕하세요"다. "수화도 언어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수화를 청각장애인, 즉 농인(聾人)들만의 소통 수단으로 여기는 탓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청인(聽人)만의 착각이자, 편견이다.

'수어'는 한국에서 법을 통해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 받았다. 영어도, 중국어도 받지 못한 지위다. 한국에 살고 있는 청인들만 몰랐을 뿐이다. 무지와 착각이 차별로 고착화되면서, 수어는 여전히 언어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라고 법으로 명시한 국어와 동급인 한국의 고유언어인 한국수어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연속으로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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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인가, 수어인가? 한국의 법률상 공용어는 2개

수어를 둘러싼 오해는 청인의 가치가 반영된 단어 하나에서 출발한다. '수화'라는 표현이다. 수어(手語)와 수화(手話)는 고작 한 글자 차이지만, 분명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화의 '화'는 '말씀 언(言)'과 '혀 설(舌)'로 이뤄진 글자다. 혀를 움직여 말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수화는 결국 '손을 움직여 말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말하기'만을 강조한 용어다. 국어에 '말하기'만 있는가? 쓰기, 읽기도 있지 않은가. 수어도 마찬가지다. '말하기'라고 볼 수 있는 수화 뿐 아니라 쓰기도 있고, 읽기도 있다. 이렇게 완결성을 갖춘 언어인데도, 청인들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수화는 수어의 일부이고, 농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총체로선 '수어'라는 표현이 올바르다고 하겠다. 때문에 정부에서도 한국수화언어법을 시행하면서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밝혔다. "한국수어는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라고 선언한 것이다. 또,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사전도 '수화사전'이 아닌 '한국수어사전'으로 표기돼 있다. 한마디로 한국 수어는 국어와 더불어 법으로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명실상부 '언어'인 것이다.

● 수어는 외국에서도 통한다?

"수어를 배우면 해외에서도 통하죠?"

수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는 질문이다. 수어가 단순히 어떤 사물을 지칭하거나, 어떤 형태를 본 따 손으로 표현하는데 그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아니오"다.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수어는 각각 다르다.

종종 수어를 만국공용어로 알고 있거나 해외에서 물 건너온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잠깐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오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 이전에도 농인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끼리 통하는 언어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즉, 수어는 각 나라마다 사정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존재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해 한국어와 중국어가 다르듯 수어도 각 나라마다 다르다.

물론 수어에 대해선 국어, 영어처럼 다수가 쓰는 음성 언어와 같은 수준의 체계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이 그렇다. 1760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농학교가 만들어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수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수어 교육의 영향으로 나라는 다르지만, 유사한 수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안석준 수어통역사는 "프랑스 수어 교육방식이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프랑스-캐나다-미국이 비슷한 수어를 사용하고, 영국-호주도 비슷한 수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사회 문화적 교류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수어는 일제강점기 때 농학교가 설립되면서 일본수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석준 수어통역사는 "한국과 타이완은 일제식민지를 겪으며 일본수어와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며 "수어를 사용하는 집단, 환경에 따라 수어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각 나라 수어는 각 나라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물로 변화를 거듭한다는 뜻이다.

세계 언어 정보를 취합하는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2017년 11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 언어는 7,099개로 파악된다. 이 중 확인된 수어는 142개다. 음성 언어에 비해 수어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구상엔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수어가 무려 100여 개 이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부작침] 대륙별 수어 현황
● "자막으로 충분하지 않나?"라는 오해

뉴스 등을 보면, 종종 화면 하단 조그만 원에 등장하는 수어통역사를 볼 수 있다. 음성으로 뉴스가 흘러나오면, 수어통역사가 이를 수어로 전달해준다. 이를 두고 "잘 보이지도 않는 수어통역 대신, 자막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도 이런 맥락에서 자막수신기 보급 사업을 벌였고, 최근 나온 신형 텔레비전에선 자막 버튼만 누르면 지상파 프로그램의 경우 자막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어는 이제 필요 없게 된 걸까. 이 역시 지극히 청인의 입장, 수어를 음성 언어의 대체 수단으로 본 탓에 생긴 오해다.

국어와 수어는 관용적 표현은 물론 문법도 차이가 나는 서로 다른 체계의 언어다. 수어 고유의 언어체계로 세상과 소통하는 농인들이 청인의 언어 체계로 된 국어자막을 즉시 이해하는 건 어렵다는 말이다. 안석준 수어통역사는 "한국에서 영어를 10년간 공부한 학생들이 뉴욕타임즈, CNN를 즉각적으로 읽고 듣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농인에게 한글 자막을 보여주는 건, 한국인에게 영어 자막 또는 중국어 자막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농인에게 정작 필요한 건 수어 통역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지상파 방송의 경우 모든 프로그램에서 자막 방송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수어방송 비율은 지난 2012년 5.5%에서 지난해 6%로 소폭 상승에 그쳤다.
[마부작침] 지상파 방송 중 자막 수어 비율

● 한글을 수어 단어로 바꾸기만 하면 OK?

국어와 마찬가지로 수어에도 단어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어 문장에서 단어만 수어 단어로 바꾸면 수어 문장이 될 수 있을까. 대부분 청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역시 수어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수어와 국어가 다른 언어체계로, 수어 고유의 문법이 존재하는 걸 간과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다.

이런 오해로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송 하단의 수어 통역을 하는데, 정작 농인들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가 부재하던 시절, 수어통역사가 한국어 문장이 나오면, 이를 그대로 수어 단어로만 바꾸는데 그쳤고, 정작 농인들은 통역을 보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안석준 수어통역사는 "수어와 국어가 다른 언어라는 걸 이해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수어와 국어의 어순은 물론, 표현법도 다른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안석준 통역사는 "예를 들어 '전직 국정원장 A 씨가 검찰에 소환됐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수어에선 '검찰이 A 씨를 불렀다. A 씨는 전직 국정원장이다'라는 순으로 전달해야 농인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수어에 대한 몰이해가 극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1991년 교육부는 수화교과서를 제작했고, 국어의 특성을 반영해 조사, 어미, 존대를 나타내는 선어미말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어순이 다르고, 조사와 어미가 없는 수어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농인 교과서를 청인 입장만을 반영해 만든 것으로, 결국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채 폐기됐다. 오랜 기간 수어를 연구한 이영재 다솜학교 교사는 "해당 교과서는 수어를 고유한 규칙을 가진 언어가 아니라 국어의 보조 수단으로 여긴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수어 대신 구화? 원어민 말소리 안 듣고 불어 할 줄 아는 사람 있나요?

농인 가운데 음성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말하는 구화(口話)이다. 상대방의 입모양을 파악해 뜻을 이해하고 말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구화만 배우고 익힌다면, 수어 없이도 청인들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여길 수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청인들에게 소외받지 않기 위해선 구화가 더 유용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청인 중심의 판단이자, 농인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이영재 교사는 "프랑스 원어민의 말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 프랑스어를 소리 내 말 할 수 있겠느냐"며 "농인은 말소리를 듣고 만들어 내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수어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도 교포가 없는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면 한국말을 잊어버리는데, 주변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에게 구화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수어 대신 구화를 강조한 사례도 있다. 전화기를 발명한 미국의 알렉산더 벨은 어머니와 아내가 난청인이라는 가정환경 탓에 농인 교육에 힘썼다. 다만 방향성이 잘못됐다고 한다. 수어가 구화 습득에 방해가 된다며 수화를 배격하고 사용 금지시켰다. 심지어 농인 간의 결혼도 반대했다고 한다. 이영재 교사는 "농인에게 구화를 교육시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구화 위주 교육은 역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언어 '수어'…"수어도 언어다"

수어를 둘러싼 착각과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무지는 무시가 됐고, 무시는 편견이 됐다. 음성 언어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농인들은 제대로 된 학습도, 문화 향유도, 정치적 의사 표현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이방인'으로 취급 받아온 것이다.

농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선 수어 대신 구화를 가르치려 든다. 수어를 하면 '말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불이익을 받게 될까 걱정해서다. 국립국어원의 보고서(2013년)에 따르면, 농인들 중 취학 전 구화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농인은 36%, 반면 수어를 배운 농인은 17%에 그쳤다. 부모의 마음이야 탓할 수 없지만, 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음성언어를 가르치는 사이, 아이는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되며 악순환이 시작된다.
[마부작침] 취학 전 수화와 구화 습득 비율
이영재 교사는 "부모가 말소리를 강요하는 동안 농인은 다양한 학습을 할 수 없어 인지발달에 문제가 생긴다"며 "수어를 매개로 소통했다면 농아동도 외부 세계를 학습해 나갈 수 있고, 일반 아동에 뒤지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석준 수어통역사는 "수어는 한국어, 중국어, 영어와 같은 하나의 언어"라며 "수어를 구사하는 건, 하나의 언어를 깨우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어 대신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한다고, 그 사람을 차별하거나 뒤떨어진다고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어는 언어 중 가장 솔직한 언어로 꼽힌다. 눈과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표정도 전달 수단이다. 장진석 수어통역사는 "손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표정으로 의문문, 감탄문, 긍정문, 부정문을 표현 한다"며 "수어는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언어로,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언어"라고 말했다.
 

긍정적 표현을 할 땐 눈동자가 커지고 얼굴이 앞으로 나오거나, 부정 표현일 땐 고개가 다소 뒤로 젖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손으로 말하는 수어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는데, 이 역시 청인의 착각이다. 국어에서 억양과 발음 세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수어를 둘러싼 착각, 오해, 편견을 소개했지만, 마지막은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수어로 모든 말을 전달할 수 있나요?”

혀 대신 손으로 하는 언어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임승택 한국농아인협회 이사는 "수어가 국어에 비해 법률, 의학, 예술, 스포츠 등 영역에서 단어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보충해나가면 된다"며 "농인들의 전문 영역 진출이 제한적인데, 농인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그 만큼 표현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수어가 가진 매력도 강조했다. 임 이사는 "한국수어는 손으로 내 마음을 전달했을 때 서로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수어 중  가장 멋있다"며 "이런 매력적인 수어로 당신과 내가 충분히 교류할 수 있고, 함께 감동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지구의 언어·문화·생물다양성 보고서>에서 수어를 이렇게 설명했다.

"언어학자들이 아직 대부분의 수어를 연구하지는 못했지만, 수어가 추상적이고 복잡한 완전한 언어라는 점은 분명하다. 어휘가 완전히 개발된 수어는 구술 언어로 토론하는 어떤 것이라도, 즉 일상생활에서부터 인권 협약, 국제연합의 구조나 핵물리학에 이르기까지, 토론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안혜민 분석가 (hyeminan@sbs.co.kr)
디자인/개발: 임송이
인턴 : 홍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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