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유승민은 세(勢)를 모아 당(黨)을 만들 수 있을까

최고운 기자 gowoon@sbs.co.kr

작성 2017.11.15 12:52 조회 재생수3,756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유승민은 세(勢)를 모아 당(黨)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유승민 의원을 2015년 4월 진도 팽목항에서 처음 만났다. 정당팀에 발령받은 지 5개월 만이었다. 원내대표 선거 과정, 공식 회의 등에서야 당연히 봤지만 개인적으로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다. 서울에서 한나절은 족히 걸리는 팽목항까지 가겠다고 나섰던 건 신임 원내대표와 안면을 터서 앞으로 취재를 수월히 해보고자 함은 아니었다. 물론 당시 유승민 의원은 ’원내 사령탑‘인데다가, 일주일 전 살아있는 권력 앞에 교섭단체 연설문으로 도전장을 낸 인물이었다. 국회를 벗어났으니 제대로 인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팽목항에 가보겠다고 한 건 마음의 짐 때문이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게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아마 국민 대다수가 아이들이 주검으로 떠오르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래도 기자(記者)라는 명함을 내밀어 먹고 산다는 사람이 현장에도 가보지 못하고, 이후에도 대책을 꼬집는 기사 한 줄 쓰지 못한 게 내내 무겁게 와 닿았다.

세월호 사고 때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아침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탔던 배가 뒤집혀서 출장을 가게 됐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젖먹이를 차에 태우고 급히 회사로 가서 출장 짐을 건네고 돌아왔다. 뉴스 속보를 보는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시간만 되면 끈질긴 생명력으로 젖을 빨고는 품에서 잠이 드는 내 아이와, 생떼 같은 자식을 잃고 혼절하는 부모가 눈앞에서 교차하는 현실에 몸서리를 쳤다.

세월호 현장에서 취재했던 동료들을 보는 것도 미안해하던 차에 신임 원내대표가 위령제 참석차 간다고 하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진심을 담은 묵념이라도 하면 마음이 나아질까 싶어 갔던 그 곳에서 유승민 의원이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세월호법 시행령을 폐기하라며 유승민 의원 일행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참석자들과 나를 포함한 기자들이 뒤엉켰다. 밀리고, 밟히면서 발등이 까진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런 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성격이라 덤덤하게 있었는데 유승민 의원이 “괜찮냐.”고 물어왔다. “대표님도 비슷하신데요 뭐.” 그게 인사라면 인사였다.

당시, 유승민 의원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이러했다. 좋은 평가부터 언급하자면 두뇌가 비상하다, 소신 있다, 쓴 소리를 마다치 않는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너그럽다. 안 좋은 평가를 언급하자면 ‘옛 주군(박근혜)’의 등에 칼을 꽂았다, 자기 정치가 당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 고집이 세다, 이미지와 달리 거칠다, 그래서 남자 박근혜.

저런 평가 중에 어떤 면이 원내대표 축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건지 나는 헷갈렸다. 쫓겨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도 뭐가 옳고 그른지 잘 판단할 수 없었다. “여당 원내대표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는 거 아니냐.”라는 비판을 들으면 ’여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몸종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덕에 차기 대선 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들을 때는 “결국 유승민 의원도 자기 정치였군.”하는 생각에 씁쓸해하곤 했다.

남들의 목소리가 아닌 나 스스로 유승민 의원을 평가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군대에서 다친 군인에 대한 예우 문제를 취재하다가 수류탄 사고로 다친 훈련병의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게 됐다. 치료 기간과 비용 문제,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등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정치인 이름 두 명을 들었다. 병원에 찾아와 치료비에 보태라며 각각 1백만 원과 50만 원을 주고 간 국회의원이 둘 있다고 했다.

사고가 나면 국방위원회를 열어서 국방부 장관에게 호통 치는 의원 말고 문병을 간 의원도 있구나 싶었다. 그게 유승민 의원과 윤후덕 의원이었다. ‘대구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그랬나?’ 의심이 들어서 이후에 군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을 때마다 확인을 한 번씩 해봤다. 기사 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지없었다. 유승민 의원은 늘 소문내지 않고 문병을 다녀오곤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후에야 적어도 ‘앞에서만 요란하게 말로 떠드는 정치인은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소신이 있는 정치인 같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유승민 의원을 바른정당 대선 주자로 다시 만났다. 그 때 나는 선거방송팀의 그래픽 담당자였다. 젊은 시청자층을 타깃으로 삼는 만큼 후보들을 최대한 활용해 빵빵 터지는 선거방송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후보들의 포즈에 재미요소를 넣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고 실행에 옮겨야 했다. 대선 후보들도 선거방송을 위한 사전 촬영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왔지만, 설마 그런 포즈를 시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애교 포즈로도 모자라 즉석에서 맘보 댄스를 추게 했더니 유승민 의원이 웃으며 나를 향해 주먹을 들었다가 내렸다. 양세형의 숏터뷰 출연 승낙을 받느라 캠프 전체가 설득을 했을 만큼 유승민 의원은 ‘예능’에 젬병이라는데 너무 했나 싶었다. 수행으로 함께 촬영장에 왔던 유의동 의원에게 연락해 심기를 살폈다. ‘옛 동지를 만나서 즐겁게 촬영하고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선이 끝난 후 정당팀으로 다시 발령을 받게 됐다. 유승민 의원을 찾아갔다. 복귀 인사 겸, 대선 방송 촬영에 대한 한소리를 뒤늦게라도 들을 겸 자청한 면담이었다. 자연스레 국민의당과의 연대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대화라 내용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유승민 의원에게는 국민의당과 함께 하기 위한 분명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 보였다. 바른정당은 반기문을 위해 만든 그릇이었으니 이제는 한국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을 하는 일부 의원들에 대해서는 설득하는 데까지 해보지만 결국 함께할 수 없다고 마음을 먹은 듯했다.

탈당 날짜가 정해졌느니 마니 할 무렵 유승민 의원이 정론관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쉬는 날이었지만, 회견문을 소리 내어 읽어봤다. 문장 두 개가 눈에 들어왔는데 ‘아이고야!’ 싶었다. ‘개혁보수의 뜻과 가치’가 통합의 유일한 원칙이라고 적은 문장, 그리고 이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정당을 같이 할 수는 없다는 문장이었다. ‘곧 죽어도 이 원칙이 맞아야 함께 할 수 있으니 언론인 여러분 너무 앞서 나가지 마세요!’로 들렸다.

그리고 그 원칙을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유승민 의원과 ‘보수 통합’을 명분으로 내걸었던 탈당파들은 갈라섰다. 국회 헌정 기념관에서 작은 규모로 치러진 당원대표자 회의에서 56.6%를 득표해 당 대표가 되었다. 당 대표 수락연설문에는 ‘개혁보수의 뜻과 가치’라는 말이 역시나 등장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유승민 의원에게서 결기가 느껴졌다.

새로 대표가 된 유승민 의원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만났다. 단지 만나기만 했을 뿐인데, 두 당이 처한 상황이 워낙 ‘궁하다 보니’ 갖은 해석이 나온다. 정책연대는 당연하고 선거연대, 더 나아가 당 대 당 통합까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당과는 발 디딘 땅이 다르니 결국 자유한국당과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많다.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과정을 예측하는 건 그동안 유승민 의원의 행보로 미뤄보면 비교적 쉬운 일인 듯하다. 교섭단체가 무너지는 상황을 맞으면서까지도 지키려 했던 게 ‘개혁보수의 뜻과 가치’ 아니었던가. 자유한국당과 같이 하려면 ‘개혁보수’가 선결 조건이 된다. 국민의당과 함께 가려면 안보정책처럼 이견이 있는 부분이 정리하는 등 뜻과 가치를 맞춰봐야 한다. 국민의당의 복잡한 집안 사정을 정리하는 것도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유승민 의원을 두고 ‘축소의 정치’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정치는 곧 세(勢)라고, 독야청청해 봤자 외롭게 죽을 뿐이라고, 무리를 짓기 때문에 정당에 무리 당(黨)자를 쓰는 거라고들 한다.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 탈락하자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게 자기 정치의 단적인 사례라는 주장도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생존했지만, 자신을 따르던 이들은 모두 전사했다는 것이다. ‘보스’가 되지 못한 고매한 지도자는 세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에서 유승민 의원을 두고 들리는 얘기 중 하나다.

유승민 의원이라고 모를까. 그러나 이제 유승민 의원에게 ‘개혁보수의 뜻과 가치’를 지키는 일은 비난을 알고 모르고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참패해서 진정한 보수 통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바른정당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죽든 살든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유승민 의원은 당 대표 수락 연설 마지막에 “모든 책임은 대표인 제가 지겠다.”라고 했다. 빛을 발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그 뜻과 가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유승민 의원의 정치 생명도 거기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