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리포트+] "사장님 댁 김장 도와라"…'직장 갑질' 도 넘었다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7.11.14 16:13 수정 2017.11.14 16:26 조회 재생수13,107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사장님 댁 김장 도와라"…직장 갑질 도 넘었다
*그래픽
"회사에서 이틀 동안 사장님과 그 친인척들 김장을 한답니다. 근무시간이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가요? 다음 주 목, 금요일에 김장 예정이라고 하기에 전 못 한다고 휴가 신청했는데 휴가도 받아주지 않더군요. 더 웃긴 건 임원들은 토요일에 친척들에게 배달도 한다고 합니다." (음료제조업체 직원) //지난 1일 공식 출범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한 직장인이 털어놓은 사례입니다. 사회적 강자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약자에게 부리는 횡포인 '갑질'이 직장에도 만연한 겁니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알바노조 등 비정규직 노동 단체의 활동가와 노무사, 변호사, 노동전문가 등 241명으로 구성된 직장갑질119가 출범한 뒤 10일 만에 591건의 직장 내 갑질 관련 상담이 접수됐습니다. 직장갑질119의 오픈 채팅방과 이메일에는 갑질을 당한 직장인들의 고민과 고발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직장 내 갑질의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 "초과수당? 그런 게 어딨어!"…'공짜 야근' 시달리는 직장인들

직장갑질119가 지난 10일까지 접수된 직장인들의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임금을 떼였다'는 사례가 112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상사 또는 동료로부터 '괴롭힘·따돌림을 당했다'는 상담이 108건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야근을 강요하거나 휴일에 업무를 시키는 등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출산·육아 휴직을 통제했다'는 고충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직장 내에서 '성희롱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례도 18건이나 접수됐습니다.
주요상담사례디자인 에이전시에 근무한다고 밝힌 한 직장인은 직장갑질119 오픈 채팅방에 "직원 전체가 포괄임금제라는 명목으로 야근수당도 받지 못하고 새벽근무에 철야까지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포괄임금제는 임금에 연장·야간 등 초과근로수당이 포함된 근로계약 형태입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임금산정방식으로 일각에서는 '공짜 야근'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또 다른 직장인은 "매일 야근을 자정까지 하고 일요일 저녁 11시에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아 욕설을 들었다"며 "퇴근할 때는 운전할 힘도 없어서,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대리기사를 불러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유혹하는 표정 지어라"…간호사들에 '선정적인 장기자랑' 강요

도를 넘은 직장 갑질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은 '일송가족의 날'이라는 재단 행사에 병원 간호사들을 강압적으로 동원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장기자랑 때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하고 춤을 추도록 했다는 주장이 직장갑질119를 통해 제기됐습니다. 키와 몸무게 등 몸매를 기준으로 장기자랑에 참가하는 간호사를 선발하고, 업무시간 뒤와 휴일에도 장기자랑 춤 연습을 하게 했다는 겁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동안 정시 퇴근을 할 수 없었는데 병원 측이 심지어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성심병원 측은 진위를 파악하고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사람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입니다. 대전에서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간호학과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과 다른 모습에 매우 씁쓸했다"며 "간호인이 좀 더 존중받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픽
대한간호협회 성명서
<간호사 장기자랑 논란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촉구한다!>
최근 간호사들에게 병원행사 장기자랑에서 선정적인 옷차림을 강요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국 38만 간호사와 함께 경악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 지금까지 가져왔던 모든 간호사의 소명 의식과 자긍심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중대한 사건임을 분명히 밝힌다. //직장갑질119 오진호 운영위원은 SBS와의 통화에서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이 재단 행사에 선정적인 옷을 입고 춤을 췄다는 내용이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접수된 제보는 더 있다"며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임신한 간호사에게 나이트 근무를 강요하고 비품을 사비로 구매하게 하는 등 밝혀져야 할 갑질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 "갑질 피해 주변에 알려라"…피해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직장 갑질의 경우 사건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은 정도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은 피해자가 저항하기 힘들다는 구조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다는 이유로 징계나 해고를 당하는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갑질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하려는 상사의 태도가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고, 피해자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직장갑질119 정현철 운영위원은 "자신의 근로계약서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취업 규칙을 읽는 것만으로도 노동 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직장인 메뉴얼*그래픽
[오진호 /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지난해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친 것에는 대통령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과 더불어 내 삶과 일터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갑질에 고통받고 있을 겁니다. 과거에는 많은 직장인의 목소리를 담을 창구가 없어 갑질을 당하고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가 다니는 직장과 일터를 바꾸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기획·구성: 정윤식,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