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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수료 절반 삭감…계약해지 두려워 '쉬쉬'

[취재파일] 수수료 절반 삭감…계약해지 두려워 '쉬쉬'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제작 주체에 따라 국정과 검인정으로 나뉩니다.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 규정에 따른 구분입니다. 국정은 교육부가 저작권을 갖고, 발행사에게 출판을 의뢰해 만드는 단 1종류의 교과서입니다. 초등학교 1~2학년이 배우는 국어,수학,과학,사회 과목이 여기에 속합니다. 검인정은 출판사인 발행사가 저자와 협의해 책을 만들어 교육부의 심사를 받은 뒤 발행하는 교과서를 말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 배우는 음악,미술,실과,체육, 그리고 영어가 포함됩니다. 중·고등학생이 배우는 모든 과목도 검인정교과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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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학교로 배달해 학생들 손에 들어가게 하는 일은 교과서 공급소가 맡고 있습니다.이들은 검인정 협회나 국정발행사들과 계약을 맺고, 일선 학교까지 교과서 공급을 하고 있습니다. 교과서 공급소의 소득은 배달 수수료가 전부입니다. 책을 학교에 배달하면서 노동의 대가를 수수료로 받는 것입니다. 교육부 산하 사단법인인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는 2012년까지 초등교과서의 경우 책 가격에 13분의 1인 7.14%를, 중등 교과서는 정가의 16분의 1인 5.88%를 공급소장들에게 수수료로 지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2천13년부터 돌연 수수료를 절반가량 삭감해 교과서 정가의 3.8%로 낮췄습니다. 검인정협회의 올 매출액은 3천 29억원입니다.  공급 수수료율 3.8%를 적용하면 수수료 총액이 115억에 이릅니다. 기존의 수수료율을 적용할 경우 초등의 경우 14억 원, 중등의 경우 54억 원의 수수료가 삭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인정협회와 계약을 맺고 있는 130개 공급소들에게 돌아갈 몫이 그만큼 줄어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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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인정협회는 수수료 삭감 근거로 지난 2009년 개정된 교과용 도서규정을 들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교과서 가격자율화를 도입하면서 교과용 도서규정을 개정해 공급수수료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에 공급소들과 계약을 하면서 쌍방이 자율로 정하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대통령령에서 삭제된 공급수수료 조항은 교육부가 2014년 고시한 '검인정도서 가격조정명령을 위한 항목별 세부사항'에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교육부는 가격자율화 첫해인 2013년 교과서 가격이 126%가량 폭등하자 감사원의 권고로 검인정도서 가격조정명령제를 도입하면서 가격조정 산정 기준으로 예전의 공급수수료 조항을 포함시켰습니다. 공급수수료율은 재료비, 개발비 및 개발비 이자를 제외한 인쇄,제조비,일반관리비, 그 밖의 경비, 출판사 이윤, 저작자 인쇄 및 도서개발 지원금을 합한 금액의 16분의 1로 하되, 초등학교 교과용 도서의 경우에는 13분의 1로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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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사가 지나치게 비싼 교과서 가격을 책정할 때 교육부가 가격조정명령 고시에 있는 산정기준을 토대로 가격을 낮춰 정하는 것입니다. 2014년과 15년 두 차례에 걸쳐 가격조정명령제에 따라 교과서 가격이 결정됐습니다. 검인정협회는 이 당시에도 공급수수료율을 산정기준에 있는 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공급소들은 교과서 배달 방식이나 업무가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물가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이 는 상황인데 수수료를 절반이나 깎는 게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검인정협회와 그동안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왔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이의 제기도 못 하고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또 수수료율을 쌍방이 자율로 정했다고 하지만 검인정협회의 일방적 통보였고, 협의나 협상 없이 제시됐다고 주장합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부당하다 하더라도 계약을 포기해 공급소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어떻게 갑의 제안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공급소를 그만둔 한 소장이 지난 2015년 검인정협회를 상대로 수수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공급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공급수수료 규정이 있는 교육부 고시는 교육부 장관이 출판사에 대해 가격 조정 명령을 하는 경우 조정 금액 산정을 위한 기준일 뿐 공급수수료에 관한 법령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공급소장들은 소송에서 졌지만 법원 결정을 받아들 일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공급수수료 규정이 가격자율화 뒤 삭제됐다고 하지만 교육부가 고시에 다시 명시해 놨고, 국정교과서 발행사들의 경우 예전 수수료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초등학생 대상의 일부 국정 교과서 발행과 가격은 교육부가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공급수수료는 깎지 않고 정상 지급하면서 가격자율화 명분을 내세워 검인정협회의 수수료 삭감을 방관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교육부는 두 차례 가격조정명령제를 통해 출판사가 제시한 교과서 가격을 깎을 때도 산정기준에 있는 공급수수료 조항을 무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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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교육부와 검인정협회의 설명과 주장은 똑같습니다. 교과서 가격 자율화가 됐으니 계약 당사자 간에 알아서 정할 일이라고 합니다. 갑을관계에서 을의 입장에 있는 공급소들의 피해가 5년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꿈쩍도 안합니다. 검인정협회는 1982년 설립됐고, 발행사 83개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이사장은 교육부 출신 고위 공무원이 맡고 있습니다. 연간 검인정 도서 4천만 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검인정협회는 공급 수수료를 삭감할 만큼 다른 비용이 증가했는지, 삭감액을 그동안 어디에 썼는지 등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교과서는 전액 국가 예산으로 만들어집니다. 국민의 혈세가 잘 쓰여 지고 있는지,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 누군가는 부당한 이익을 누리지는 않는지, 또 그 과정에서 손해를 봐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필 의무 또한 정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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