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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랜차이즈라는 이름의 '약속'

[취재파일] 프랜차이즈라는 이름의 '약속'
경기도에서 개인 슈퍼를 운영하던 A씨. 일 매출 1백만 원을 꼬박꼬박 찍으며 알뜰하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형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 계약을 권유하는 영업사원들이 방문했습니다. 전국 규모로 흩어져 있는 프랜차이즈의 이름을 입으면 원래 운영하던 슈퍼 매출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일일 매출이 120~150만 원은 될 것이라며 근처 다른 가맹점의 매출 정보를 보여줍니다.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 A씨, 가맹 계약을 체결합니다. 간판 비용이며 인테리어 비용도 즉시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대로 꾸준히 매출만 유지된다면 득 보는 계약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매출이 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 슈퍼를 운영할 때의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뚝 떨어진 채 제자리입니다. 가맹점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이 적나보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가도 자리가 안 잡혔습니다.

65대 35. 매출에 꼬박꼬박 따라붙는 가맹본부 수수료도 내야 하는데, 수중에 있는 돈이 똑 떨어져 2천만 원 고액 대출에도 손을 벌렸습니다. 근근이 버텼지만 결국 A씨는 1년 반 만에 편의점 문을 닫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슈퍼를 계속 하는 건데.” 이제 낮에는 자재 운송 트럭을 몰아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A씨의 말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홈플러스 편의점 가맹 본부에 과징금 최고액인 5억 원을 부과했습니다. 전국 206명의 가맹 희망자에게 실제보다 부풀린 예상 매출액을 제공했다는 이유에섭니다.

가맹사업법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아닌 가맹본부나 직전 사업연도 말 기준으로 가맹점을 1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가맹본부는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가맹 희망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매출액을 얻을 수 있는지를 산정한 내역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맹 희망자들은 이 금액을 잣대로 편의점 출점을 하게 될 경우의 손익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홈플러스 가맹점
이때 예상 매출액은 점포를 낼 곳과 같은 광역자치단체 안에서 가장 가까운 다섯 개 가맹점을 골라내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최고, 최저 매출 지점을 제외한 나머지 세 지점 매출이 향후 출점 지역의 예상 매출을 가늠할 척도가 됩니다. 매출을 산정하는 기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6개월 이상 운영한 점포면 모두 예상 매출액을 산정할 때 참고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운영한 지 1년이 넘어 안정기에 들어선 지점만 추려 예상 매출액을 산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규 출점 지역과 같은 광역자치단체 범위가 아닌 다른 지점들이 매출액 산정에 포함됐습니다.

홈플러스는 전국에 삼백 여 개의 가맹점을 둔 편의점 프랜차이즈 후발 주자라 어쩔 수 없이 거리 기준을 벗어났다고 해명했지만, 공정위 조사관은 홈플러스가 자의적으로 규정에 있는 ‘6개월’이 아닌 ‘1년’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법과 규정에 명시한 ‘예상 매출액’ 산정 가이드라인을 입맛대로 적용해 본인들에게 유리한 자료를 가맹 희망자들에게 부풀려 제시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부풀린 금액은 점포당 한 해 매출 8천 4백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대가 배신으로 다가온 점주들은 폐업 후에도 위약금을 물어내야 할 처지에 처했습니다. 가맹 계약에 포함된 ‘최소 5년간 운영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입니다. 편의점 간판을 걸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인테리어 등 각종 부대비용이 점주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결국 피해를 본 점주들 수 십여 명이 모여 홈플러스 가맹 본사를 대상으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에 돌입하자 직전까지 합리적이고, 간편해 보였던 각종 조항들이 점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홈플러스는 점포를 열 때 가맹 희망자들에게 따로 담보를 잡힐 필요 없이, 보증보험을 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소송 전을 시작하면서 가맹 파기에 따른 위약금을 본부가 보증보험 측에 청구했고 그 결과 점주들의 신용 등급이 추락했습니다. 매출 안 좋아 대출까지 받았는데 보증보험까지 신용도를 문제 삼으니, 신용불량자 되기 십상입니다.

예상 매출액에 속아 출점하고, 5년을 넘기지 못해 위약금까지 물게 생겼는데 이젠 신용불량자가 되어 새로 휴대폰 개통조차 하지 못하는 점주들은 분통이 터집니다. 가게를 뺀 건 반년이 넘었지만, 인테리어 용품들을 본사에서 회수해가지 않아 보관비용을 계속 치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모든 폐점한 점주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위약금을 청구하는 건 아니고, 위약금을 받을 수 없는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하는 일종의 ‘강제집행’이라고 밝혔지만 아무리 합법의 틀 안에 있는 계약 조항이라도 궁지에 몰린 점주들에게 가맹본부의 이러한 방침은 ‘압력’으로 비치기 마련입니다.

‘프랜차이즈’는 이름을 걸고 소비자들에게 ‘신용’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이를 위해 가맹본사는 전국 각 지점에 균일한 품질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요구합니다. 시즌마다 찾아오는 할인 행사, 수시로 바뀌는 진열대 마케팅, 신제품 홍보까지.

그러나 프랜차이즈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건 ‘신용’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에는 가맹점주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맹본부가 프랜차이즈 이름을 처음 만들었다면, 이 이름과 명성을 조탁해 가는 것은 결국 본사가 제시한 청사진을 믿고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손을 잡은 ‘가맹점주 파트너’입니다. 파트너 없이 프랜차이즈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한 법조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며 피해를 본 점주들이 충분히 보상을 받고 가능하면 홈플러스 대표를 형사 처벌하는 것도 가능한 사안이라면서, 당사자들이 법적 도움을 받아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달라는 당부였습니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장사 잘 될 것처럼' 부풀려 가맹 모집…홈플러스 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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