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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6개의 점,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리포트+] 6개의 점,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훈맹정음'을 아시나요? 오늘(4일)은 '점자(點字)의 날'입니다. 달력에 표시돼 있지는 않지만,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입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91번째 '점자의 날'을 맞아 점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훈맹정음을 창안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봤습니다.

■ 6개의 점으로 된 문자, '점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점자(點字)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입니다.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고안된 문자인데 세로 3점 X 가로 2점으로 총 6개의 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6개의 점 각각에는 고유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점 칸에 점의 수와 위치에 따라 63개의 형태가 만들어지는데요. 각 형태에 글자를 배정해 문자 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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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는 1824년 파리맹학교에 재학 중이던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전쟁터에서 어두운 밤에 군사용 작전 명령문을 읽을 수 있는 야간문자를 변형해 창안했는데 처음에는 문자로서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점차 유용성이 입증됐고 파리맹학교는 30년 만에 점자를 시각장애인의 문자로 공인했습니다. 이후 각 나라에서도 자국의 언어를 활용한 점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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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브라유 (Louis Braille)
1824년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만듦
1837년 점자를 더욱 수정·보완
1854년 파리맹학교에서 점자를 시각장애인 문자로 공인 //
■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훈맹정음 만든 송암 박두성 선생

우리나라에서 점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98년부터입니다. 당시 미국인 선교사였던 로제타 홀(R. S. Hall)이 뉴욕 점자를 활용한 4점 한글 점자를 가르쳤지만 영어와 한국어의 문자 조합 방식이 달라 국내에 정착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용되는 6점 한글 점자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훈맹정음(訓盲正音)으로 불리는 지금의 한글 점자를 창안한 사람은 송암(松庵) 박두성 선생입니다. 사범대학교를 졸업해 교사가 된 박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이동휘 선생으로부터 암자의 소나무처럼 절개를 굽히지 말라는 의미의 '송암'이라는 아호를 받았습니다.

그 뒤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인 학교인 조선총독부 제생원 내 맹아부에 발령된 박 선생은 청각 교육에 한정된 우리나라 맹교육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 학생들은 일본 점자로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져 조선어 과목을 없애려 하자 박 선생은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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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먼 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요? 시각 장애인들에게 한글 점자 체계인 훈맹정음을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눈이 어둡다고 마음까지 우울해선 안 된다"…점자에 한평생 바친 그

일본은 박 선생의 항의를 무시했지만 그는 한글 점자를 만들기 위해 1920년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제자인 이종덕, 전태환 등 8명으로 구성된 점자연구위원회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밤낮으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불을 끄고 수백 차례 종이를 만져가며 점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26년 11월 4일 7년간의 연구 끝에 한글 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한 훈맹정음이 발표됐습니다.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박 선생은 다양한 책을 점자로 번역해 점자책을 만들어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학교를 벗어나 점자 교육에도 직접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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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눈은 비록 어두우나 마음까지 우울해서는 안 된다. 몸은 비록 모자라도 명랑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안 배우면 마음조차 암흑이 될 테니 배워야 하느니라."//
박 선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점자 번역을 멈추지 않았고 1963년 8월 25일 숨을 거두기 전까지 훈맹정음 보급에 힘썼습니다.

■ "점자의 의미요? 일상에 의미가 따로 있나요?"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의사소통 방법이자 일상이지만 점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공공시설에 점자가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고 의약품이나 생활필수품 대부분의 점자 표기는 의무사항이 아닌 권장사항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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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정금]
"점자는 저희에게 그냥 일상이에요. 비장애인들에게 언어가 삶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요즘엔 스크린리더나 음성 기술이 발달했지만 이전에는 점자 없이 아무것도 읽고 소통할 수 없었으니까요." //
시각장애인 최정금 씨는 지하철을 이용하던 중 출구의 점자 표기가 잘못돼 고생했던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최 씨는 "영화관 같은 곳에는 점자 안내가 전혀 없다"며 "영화가 끝나면 계단을 이용해 나올 때가 있는데 층 표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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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정금]
"점자는 쓰기와 읽기 기준이 다르고 점자를 조합해 읽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글을 읽는 것보다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부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6개의 점. 누군가에겐 그저 몇 개의 점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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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선생]
"눈이 사람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영혼입니다." //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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