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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원전 시민참여단 471명, 무엇이 그들 마음을 움직였나

[취재파일] 원전 시민참여단 471명, 무엇이 그들 마음을 움직였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정부에 원전 공사 '재개'를 권고했습니다. 재개 의견이 59.5%, 중단 의견이 40.5%였습니다. 조사를 거듭할수록 건설 재개 의견이 힘을 얻었다고 공론화위는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는 공론화위의 권고를 존중한다고 했고,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도 시민참여단 판단을 존중한다며 권고 내용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재개 의견이 예상보다 많았던 만큼, 일단 공론화위 권고안으로 차분하게 정리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 사회의 값진 경험입니다. 과연 무엇이 시민참여단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취재파일] 원전 시민참여단 471명, 무엇이 그들 마음을 움직였나

● 신고리 찬성 측도, 반대 측도, '안전성'을 따졌다

흥미롭습니다. 위 그래프는 공론화위 보도자료에 나온 것입니다.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을 상대로 의견을 결정할 때 어떤 요인을 중요하게 따졌는지 물었습니다. (1) 안전성 측면, (2)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측면, (3) 전력공급의 경제성 측면, (4) 지역 및 국가 산업 측면, (5) 전기요금 측면, (6) 환경성 측면, 이렇게 6가지 항목을 줬습니다. 그런데 건설 재개 측은 '안전성'을 두 번째 중요한 항목으로 꼽았고, 중단 측은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서로 안전성을 중요하게 따졌는데, 의견이 엇갈린 것입니다.

건설 재개 측 전문가는 시민참여단을 상대로 한 동영상 PT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신고리 원전에서는 사고가 나도 대량의 방사능 누출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방사능이 누출되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도 주민 피난 구역은 5km를 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평가된다'는 표현을 썼는데, 평가를 한 것은 사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입니다. 한수원의 시뮬레이션 결과 사고가 나더라도, 격납 건물이 방사능 누출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건설 재개 측 논리였습니다. 또 일본 후쿠시마 사고 때도 진앙에서 더 가까운 오나가와 원전은 방벽이 더 높았던 덕분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민참여단은 이쪽 주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반면, 건설 중단 측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맞섰습니다. 그건 사고 확률이 0%라고 주장하는 셈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현행법에도 원전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반경 5km 이내 주민들은 미리 대피시킬 수 있고, 5km 밖의 사람들이라도 누출된 방사능의 강도에 따라 대피시킬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은 사고 확률 0%가 아니라, 사고가 날 일말의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건설 중단 측은, 한수원 시뮬레이션이 격납 건물 안에서 물을 뿌려주는 스프레이가 정상 작동한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인데, 너무 낙관적인 전제고, 최악의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습니다.

● "안정적 에너지"라는 설득이 먹혔다

'건설 재개'를 선택한 사람들은 원전이 안정적인 에너지라는 점에 마음이 쏠렸다고 답했습니다. 의견 결정의 최우선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약간 의외였습니다. 결국 해가 뜰 때만 발전이 가능한 태양광보다, 바람이 불 때만 가능한 풍력 발전보다, 원전의 안정적인 전기 공급에 마음이 끌렸다는 것인데, 사실 건설 재개 측은 신재생에너지의 그런 약점을 세게 공격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건설 재개 측은 신재생에너지의 점유율이 향후 20%까지 올라가는 것은 순리다, 라고 가정하고, 나머지 80%의 전기를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 "원전이냐 LNG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시민참여단 여러분이 할 일이다, 이런 프레임으로 마음을 공략했습니다. 

건설 중단 측은 사실 이 전기 공급의 안전성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원전 사고의 위험, 인체에 대한 유해성,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점 등을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공사 재개 측이 밝힌 것처럼, 유럽 국가들은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예비 발전설비가 우리보다 많은데, 그만큼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어도 전기 공급에는 문제가 없는 나라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공사 중단 측이 우리나라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확대되어도, 국가 전체적으로 전기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썼다면, 결과는 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 '돈 계산 복잡해'…주목받지 못한 '돈' 문제

건설 재개와 중단 양측은 '돈' 문제를 놓고 복잡한 논쟁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공사 재개 측은 국회 예산처 문건에서 '발전원가'를 들고 나왔고, 중단 측은 '2016 전력시장 통계'에서 '정산단가'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둘 다 현재 시점에서는 원전이 가장 값싼 전기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사 재개 측은, '정산단가'라는 게 발전사업자가 일정량의 전기를 생산할 때 받는 돈의 개념이기 때문에, 원가로 보기는 힘들다,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반면 공사 중단 측은, 원전과 다른 에너지의 정산단가 격차가 줄고 있고, 미국과 영국의 전망을 참고할 때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다른 에너지가 원전보다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로 유리한 출처와 데이터를 갖고 나와 논쟁을 벌였을 뿐, 양측 모두 인정하는 데이터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건설 재개 측은 앞서 설명 드린 대로, LNG를 맹공격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20%까지 올라오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나머지 80%에서 LNG에게 자리를 뺏길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LNG는 주로 민간 발전사들이다, 발전원가도 지금 원전이 훨씬 더 저렴하다, LNG 가격은 향후 오를 거라는 전망이 많다, 외국에서 LNG를 공급받을 때 지정학적인 변수도 커서 발전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다만, 원전이 가장 저렴한 전기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일부 과장된 계산도 눈에 띄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그래프입니다.
[취재파일] 원전 시민참여단 471명, 무엇이 그들 마음을 움직였나
건설 재개 측이 시민참여단을 위해 만든 동영상을 캡쳐한 것입니다. 원전이 줄어들면 전기요금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신고리 5·6호기의 발전량을 LNG로 대체하면 총 122조 원이 추가된다고 설명합니다. 원전은 62조 원이 드는데, LNG 발전은 184조 원이 든다는 것이죠. 차액이 122조 원입니다. 이 그래프의 출처는 '국회예산정책처'라고 되어 있는데, 관련 문건을 확인해보니 국회 예산처 자료에 사실은 이런 그래프가 없었습니다. 국회예산처라고 하면 원전 사업의 당사자가 아니고 나름 중립적인 기관에서 내놓은 데이터라고, 시민참여단이 오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LNG가 122조 원 비싸다는 계산은 어떻게 했을까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2015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 평가'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1kWh의 전기를 만드는데 원전은 49.58원이 들고, LNG는 147.41원이 든다고 되어 있습니다. 2015년도 기준입니다. 이 숫자가 향후 60년간 변함이 없다는 걸 전제로 60년간 LNG로 발전하면 122조 원이 더 든다고 계산한 겁니다. 60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0년대엔 우리나라에 원전 자체가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산의 전제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원가가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원자력과 LNG의 비용 차이가 가장 적은 2015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계산해 정보가 과장되지 않도록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양측은 이렇게 복잡한 원가 논란에 품을 들였지만, 시민참여단은 양측 모두 큰 무게를 두지 않았습니다. 의견을 결정하게 만든 요인 6개 가운데 '전력 공급의 경제성 측면'은 건설 재개 측이 3번째로, 중단 측은 5번째로 비중을 뒀을 뿐입니다. 양측의 서로 다른 계산, 복잡한 숫자들, 거기에 전기요금 상승 전망까지 제각각, 며칠을 공부해도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계산과 전망을 내놓은 것인지 시민참여단이 판단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당장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문제인 '전기요금 측면'은 그래서 예상과는 달리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양측은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에 '전기요금'을 모두 최하위에 뒀습니다.

● 재개 측은 '종합적 평가', 중단 측은 '안전과 환경'

양측은 의사 결정 방식이 전혀 달랐습니다. 건설 재개 측은 6가지 항목에 대한 '총점'을 매긴 것처럼 보입니다.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가장 중요시했고, '전기요금'을 중요도의 가장 하위에 뒀지만, 둘 사이의 편차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건설 중단 측은 '총점'이 아니라 특정 요소에 '가중치'를 둔 것처럼 보입니다. 원전의 '안전성'과 '환경성 측면' 평가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다른 항목들은 상대적으로 저평가했습니다. 전력공급의 경제성과 전기요금은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는데, 한 마디로 돈은 중요치 않다, 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취재파일] 원전 시민참여단 471명, 무엇이 그들 마음을 움직였나
또 한 가지 주목할 점, 공론화위 보도자료에 나온 위 그래프를 보시면, 부산과 울산 지역의 시민참여단 가운데 64.7%가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를 원했습니다. 반면, 광주와 전라, 제주 지역의 시민참여단 가운데 건설 재개는 45.1%였습니다. 설령 신고리 원전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지리적으로 더 가까워서 조금이라도 더 걱정해야 하는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 분들이 건설 재개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공사 중단했다가 지역 경제 다 죽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경상도의 건설 재개 의견은 60%를 훌쩍 넘었고, 전라도의 건설 재개 의견은 40%대에 머물렀다는 점, 20%p 차이가 납니다. 두 지역의 시민참여단이 똑같은 자료와 설명을 들었는데도 이렇게 큰 차이가 났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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