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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쿠르드족에게 '키르쿠크'는 독이 든 성배였나

[월드리포트] 쿠르드족에게 '키르쿠크'는 독이 든 성배였나
2014년 IS가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을 점령한 뒤 기세 좋게 키르쿠크를 향해 진격했다. 오랜 내전과 부패로 무력했던 이라크 정부군은 혼비백산 달아났다. 이라크 정부군을 대신해 키르쿠크를 지켜낸 이들은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군 페슈메르가였다. IS가 점령한 모술댐까지 탈환하고 키르쿠크를 3년 동안 방어했다.

IS 격퇴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자 이라크쿠르드자치정부는 지난달 25일 자치지역 3개 주뿐만 아니라 키르쿠크 등 쿠르드족 다수 거주지에서 쿠르드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했다. 93%의 절대 지지를 받으며 독립의 꿈을 꿨지만, 투표 20여 일 만에 이라크 정부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키르쿠크에서 페슈메르가를 몰아냈다. IS 격퇴전쟁 내내 손을 잡았던 쿠르드자치정부와 이라크 정부는 왜 키르쿠크를 두고 정면으로 등을 돌린 것일까.
[취재파일] 쿠르드족에게 ‘키르쿠크’는 독이 든 성배였나
● '검은 황금'의 땅, 키르쿠크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국 오스만 제국에 대한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쿠르드족은 세브르조약(1920년)을 통해 연합국으로부터 독립 국가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모술을 포함한 키르쿠크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독립을 약속했던 영국은 조약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고, 쿠르드 독립 국가의 꿈은 막대한 석유 매장량에 밀려 요원해졌다. 이라크는 세계 5위의 석유 보유국으로 약 1,5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처에 따르면 키르쿠크 지역에만 이라크 총 원유량의 20%에 달하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 '검은 황금'의 땅 키르쿠크에서 쿠르드족의 비극의 씨앗이 잉태한 것이다.

● 키르쿠크는 쿠르드족의 '예루살렘'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은 키르쿠크 지역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쿠르드족을 석유 매장 지역에서 어떻게든 몰아내고 싶었다. 1970년대부터 키르쿠크 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을 잔혹하게 탄압하며 마을 소개 작전을 벌였다. 1970~80년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지도에서 제거해 버린 쿠르드 마을은 전체 쿠르드 마을의 25%에 달한다고 한다. 동시에 이라크 이슬람 주민들을 대거 키르쿠크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때문에 쿠르드족에게 키르쿠크는 폭압과 압제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키르쿠크를 되찾는 건 그들에게 해방과 정의 실현의 의미인 것이다.

● 키르쿠크는 국가설립의 재정적 기반

쿠르드자치정부가 키르쿠크를 실효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이라크 정부는 키르쿠크에서 생산되는 원유에 대한 단독 수출을 금지했다. 이라크 국영석유회사를 통해서만 판매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쿠르드자치정부가 독자적 원유 수출을 계속하자 이라크 정부는 지방정부 예산을 대폭 삭감하기도 했지만 쿠르드자치정부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다. 키르쿠크의 원유 수출 수익은 쿠르드자치정부의 재정 자립도를 굳건히 할 수 있기에 충분했고, 쿠르드족은 키르쿠크가 향후 쿠르키스탄 국가 설립을 위한 든든한 돈줄이 될 것으로 믿었다.
키르쿠크를 향해 진격하는 이라크 정부군
때문에 쿠르드 독립을 결사반대하는 이라크와 이란, 터키 등 주변국에게도 키르쿠크는 쿠르드족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성지였다. 이라크 정부군이 키르쿠크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자 IS 격퇴 전에서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자치정부 양측을 적극 지원했던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며 발을 뺐다. 여기에 쿠르드자치정부 내 정치세력의 분열과 갈등이 겹치면서 쿠르드족은 키르쿠크를 허망하게 잃고 말았다. IS 격퇴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과정에 2천 명의 전사가 희생된 쿠르드족은 다시 고립무원의 처지에 서게 됐다. 키르쿠크라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신 쿠르드족의 미래는 등대가 고장 난 항구에 들어서는 불안한 선박처럼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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