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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탈원전' 포기했나…靑, '원전 제로' 공약은?

[취재파일] '탈원전' 포기했나…靑, '원전 제로' 공약은?
청와대가 그간 써온 ‘탈원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에너지 정책전환’이란 다소 어렵지만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탈원전이란 말이 마치 원전을 악(惡)으로 여기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文 대통령 "탈원전 시대 열겠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탈원전은 지난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용한 말입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미래에너지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탈원전을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또 “저의 탈핵, 탈원전 정책은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할 수 있는 탈핵 로드맵을 빠른 시일 내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이 선언은 완전 탈핵하겠다는 장기 정책 기조로 해석됐고 원전론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넉 달 가량 지난 지금, 청와대는 현 정부 정책은 에너지 정책전환일 뿐 탈원전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0%에 육박하는 원전 비중을 낮추고 대신 이를 신재생 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일종의 에너지 다변화 전략이라는 겁니다.

청와대는 적확한 용어로 조정했을 뿐 정부 정책에는 바뀐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탈원전 용어 사용 중단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에너지 정책은 바뀐 게 없습니다. 원전 비중을 낮추겠다는 전략에 따라 고리 1호기를 폐쇄한 데 이어 앞으로도 원전 수명 연장이나 신규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계획입니다.

● '탈원전', 쉬운 용어라 썼다?
원전, 탈원전
그럼 도대체 대통령이 ‘탈원전’이란 말은 왜 썼을까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개념화된 용어를 쓰다 보면 개념 속에 실질적인 내용이 담긴 부분도 있고 담기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용어들을 조금씩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일단 통용적으로 언론도 그렇고 쉬운 용어로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그렇게 쓴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딱 맞는 용어는 아닌데 알기 쉽게 하다 보니 그런 단어를 썼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현 정부 정책이 탈원전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지난 대선 공약집을 보겠습니다.

▶ 단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감축해서 원전 제로시대로 이행
  - 국내 원자력발전 진흥정책 폐지
  - 탈 핵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

‘원전 제로시대로 이행’ 즉, 탈원전, 원전의 완전 폐기입니다. 지난 7월 발표된 100대에서도 “탈원전 정책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위 두 가지 자료를 토대로 볼 때 대선 공약과 지금 청와대의 입장은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공약 파기인 셈입니다.

● 정책 목표, '원전 제로'인가 아닌가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탈원전이란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한 배경 설명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탈원전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어감이 갑작스럽게 원전을 다 폐기하고 바꾸겠다는 것으로 비친다. (현 정부 정책은) 원전은 줄이고 LNG포함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확장해서 에너지 비율을 바꾸는 것이다. 어쨌든 (임기 내에) 원전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임기 이후로도) 계속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 내에서 바뀌는 것도 사실상 거의 없는데 그걸 탈원전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원전 비율을 낮출 뿐 임기 내에 원전을 완전히 없애는 것도 아닌데 탈원전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니다. 청와대가 밝혔듯이 애초에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원전 폐쇄는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원전 제로 시대로 이행’을 약속했습니다. 설사 원전을 모두 폐쇄하지는 못한다 해도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닌 우리 나라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탈원전이 불가피하며 그런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입니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임기 내 원전제로라는 게 무슨 우리가 하고 싶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080년까지는 원전이 그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나. 그 상황이 그대로 가는 거지 원전제로가 어떻게 되겠나. 현재 있는 걸 다 없애란 말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위에 쓴 단락의 내용과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질문을 바꿔 “그럼 현 정부에서는 (탈원전을) 다 못하더라도 정책 기조는 그대로 가져간다는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답은 “그 다음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뭐 우리가 가져가나.”였습니다. 논리적인 답변이기는 하나 당초 밝혔던 탈원전 공약과는 배치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앞으로 60여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임기 내 완전 탈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문 대통령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 임기 이후의 일’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탈원전의 필요성과 그런 정책 기조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탈원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용어, 에너지 전환정책

● 靑, 불필요한 마찰 피하기 위한 고육책?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정리해봅니다. 앞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쨌든 (임기 내에) 원전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임기 이후로도) 계속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 내에서 바뀌는 것도 사실상 거의 없는데 그걸 탈원전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현재 원전 정책은 현 정부 다른 개혁 정책들과 달리 찬반 양론이 팽팽한 상황입니다. 수십 년 간 키워온 원전 산업을 뒤흔든다는 원전론자들의 저항도 필사적입니다. 솔직히 현 정부 입장에서도 원전 수출 확대나 원전 해체 기술 확보는 필요하다는 터여서 탈원전이 해외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탈원전 용어 사용을 피하고 현 정부 정책이 에너지 정책전환이라고 강조하는 이면에는 ‘어차피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똑같은데 굳이 탈원전이란 단어를 고집해 불필요한 논란을 빚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론이 맞다면 청와대는 결국 현 정부 임기 내 가능하지도 않은 탈원전 선언으로 불필요한 원전 찬반 논란만 불러일으킨 셈이 됩니다. ‘원전 제로 시대로 이행’이라는 정책 기조 포기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반대로 이런 것이 아니라면 탈원전 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몇 차례 계속된 질문에도 청와대는 현 정부 정책은 에너지 전환정책으로 탈원전은 아니라고만 밝혔습니다. 이런 전략적 모호성이 청와대 참모진 차원에서 소모적 원전 논란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기조로 볼 때 비록 60년 뒤에나 달성 가능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이란 새 정부 정책 기조는 바뀐 게 없어 보입니다. 원전 정책이 아니더라도 임기를 넘어서는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경우는 국방이나 경제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느 쪽일까요? 탈원전에 대한 청와대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 "'탈원전' 용어 앞으로 안 쓰겠다"…靑 선언의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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