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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전하다"던 살충제 달걀 검사…반쪽짜리였다

[취재파일] "안전하다"던 살충제 달걀 검사…반쪽짜리였다
사상 초유의 '살충제 달걀 파동'이 전국을 강타한 지도 벌써 두어 달이 흘렀습니다. 식당과 마트, 가정집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던 달걀 반찬도 차츰 제 자리로 돌아오는 듯하고 추석을 전후로 달걀 수요가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정부 관계부처가 총출동해 전수조사를 하고 위해성 평가를 거쳐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도, 수요 회복에 한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8월 2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합동 발표한 살충제 달걀 위해성 평가 결과가 바로 그 분수령이었습니다. 정부 결론은 '살충제 달걀 섭취는 피하되, 먹었다고 해서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최성락 식약처 차장은 살충제 성분 5종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살충제인 피프로닐에 오염된 달걀이라 하더라도 "평생 하루 2.6개씩 매일 먹어도 건강에는 유해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국제 기준대로 검사하고 발표했다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류영진 식약처장도 이후 여러 차례 국회에 출석해 "먹어도 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살충제 달걀 매일 먹어도 안전
그런데 발표 직후, 의료계와 학계에선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식약처 결론이 너무 섣부르다는 겁니다. 장기 섭취에 대한 연구결과가 없고 부작용 사례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하루 섭취량을 단정해 발표한 건 신중하지 못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검사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식약처의 검사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지적들은 당시 "이런 반론도 있다"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여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모두 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지만, 내용이 너무 전문적인 데다가 관련 뉴스가 그야말로 쏟아지던 시점이라 묻히기 십상이었던 겁니다. 또 학계나 의료계 전문가 집단이 정부 정보에 접근하고 의미 있는 답변을 받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최초로 '살충제 달걀' 문제를 지적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국회 보건복지위)과 SBS는 '검사방식이 잘못됐다'는 문제 제기에 주목했습니다. 식약처가 명목상으로는 국제 기준에 따라 검사했다면서, 정작 검사 과정에선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기준을 적용했다는 주장이었는데, 큰 어려움 없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피프로닐, 살충제 달걀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식약처가 언급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에 따르면, 피프로닐 잔류량은 피프로닐 원물질(A)과 피프로닐이 닭의 몸 속에 들어가 형성되는 '피프로닐 설폰', 즉 대사화합물(B)의 합으로 산출합니다. 원물질인 피프로닐 못지않게 2차 화합물인 피프로닐 설폰의 양과 유해성이 큰 데다가, 특히 달걀에서는 피프로닐보다는 피프로닐 설폰이 더 많이 검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약처는 잔류량 허용기준치는 국제 기준인 0.02ppm을 따르면서도 산출 방식은 달리했습니다. 피프로닐 원물질(A)과 피프로닐 설폰(B)을 합한 A+B값을 계산해야 하는데, 피프로닐 설폰은 쏙 빼고 피프로닐 원물질(A)로만 산출량을 계산한 겁니다.
피프로닐 산출방식 국제기준
피프로닐 산출방식 국내기준
이렇게 되면 당연히 피프로닐 잔류량은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도 서술했듯 피프로닐 설폰은 피프로닐만큼 유해할 뿐 아니라 특히 달걀에 많이 남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달걀에서 피프로닐이 아예 검출되지 않고 피프로닐 설폰만 검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만약 식약처 방식대로라면, 유해한 피프로닐 설폰이 달걀에 그대로 남아있는데도 피프로닐이 안 나오면 '안전하다'고 분류할 수 있는 겁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식약처 검사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미경 국립안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반쪽 기준보다도 못 미치는 검사"라며 "국제 기준대로 제대로 검사를 했다면 아주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경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식약처 공정시험법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단순히 검사 방식이 잘못된 것을 떠나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부서에서 이런 식의 오류(?)를 범한 것은 굉장히 큰 잘못이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 식약처의 궁색한 변명…축소 의도 있었나?

- 식약처 해명 1 : 일본 방식대로 했다?

왜 이런 '반쪽 검사'를 했는지 묻자 식약처는 "당시 피프로닐에 관해선 국내 기준이 없다 보니 일본에서 하는 방식을 차용했던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일본 역시 피프로닐 잔류량 검사에 있어서 피프로닐 설폰을 포함하지 않고 원물질만 측정하고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 해명은 변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과거 그런 검사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던 건 맞지만 우리나라에서 살충제 달걀 파동이 터진 당시에는 아니었던 겁니다. 일본은 지난 7월 말, 유럽에서 처음 살충제 달걀 파동이 터진 직후인 8월 초 검사 방식을 국제기준으로 강화하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행정예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국내산 달걀의 살충제 성분 검출 사실을 발표한 게 8월 14일 밤이니까, 이미 파동이 터지고 전수조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본은 검사 방식을 바꾼 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식약처가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젭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했으면 살충제 달걀의 위해성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몰랐다면 그만큼 무능하고 안일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식약처 해명 2: 대사화합물은 그렇게 유해하지 않다?

식약처는 또 공식답변에서 대사화합물, 즉 피프로닐 설폰의 독성이 피프로닐보다 유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허점이 드러나는 주장입니다. 독일 연방농식품부 산하 연구기관인 독일 연방위해평가원(BfR) 보고서에 따르면, 앞서 설명했듯 피프로닐 설폰이 피프로닐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유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달걀의 경우에는 피프로닐보다 피프로닐 설폰이 많이 검출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대사산물이 큰 의미가 없는 건 피프로닐이 아닌 다른 살충제 성분의 경우입니다.

이같은 의견은 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국내 수많은 학자들이 식약처 조사 결과에 반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식약처, 피프로닐, 피프로닐설폰
피프로닐 설폰, 피프로닐, 식약처
- 식약처, 유해성 축소하려 했나?

결국 모든 질문과 궁금증은 한 곳으로 수렴합니다. 식약처가 수장 부임 초기에 터진 위기 상황을 쉽게 넘어가 보려고 반쪽 검사를 시행했던 건지, 혹은 정말 몰라서 그랬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지금으로서 답은 "알 수 없다"에 가깝습니다. 식약처가 부인하는 상황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단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과 정황을 통해 진실을 유추해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일본 방식을 따라 했다는 해명은 사실이라면 무능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 됩니다. 다만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왜 일본 방식을 따라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 기준을 따르는 미국 등 여러 나라뿐 아니라 개별 기준을 적용하는 유럽연합(EU), 심지어 중국조차 피프로닐과 피프로닐 설폰을 더해서 산출하는 검사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유독 일본의 사례만 참고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사례는 참고하지 않았다는 논리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사화합물의 독성에 대한 판단 역시 마찬가집니다. 인터넷이나 학술지를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을 정부 기관인 식약처가 몰랐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학계와 언론, 국회 등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식약처는 지난달인 9월 슬그머니 검사 방식을 바꾸기로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9월 7일, 「계란 검사항목 확대를 통한 안전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 기준대로 검사 기준을 강화하기로 한 겁니다. SBS가 입수한 이후 진행 상황을 보면 지난 8월 21일 살충제 달걀 위해성 평가 결과 발표 일주일 뒤인 28일, 류영진 식약처장이 '피프로닐 대사산물 검사 시험법 검토 및 외국사례 분석을 직접 지시합니다. 이후 9월 4일 유럽연합을 포함한 재외국 사례 및 시험법을 처장에게 보고하고 안전 강화방안이 마련된 겁니다.

그러나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지난 8월 위해성 평가 발표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안전 강화방안 역시 언론에 공표하지 않고 조용히, 자체적으로 처리했습니다. 그저 "10월부터는 새로운 기준으로 검사한다"는 입장뿐이었습니다.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 '이 정도면 되겠지'…"행정편의주의의 폐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국회 보건복지위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일을 "전형적인 관료 행정 편의주의의 폐해"라고 평가했습니다. '빨리 수습부터 하고 보자'는 마인드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일을 서두르다 보니 졸속으로 궁색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지적입니다. "안전과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은 궁극적으론 국민들이 하는 건데 관료 중심적인 판단으로 국민들이 판단할 선택권 자체를 봉쇄해 버렸다"고도 비판했습니다. 기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서 현 정부부처의 실책을 파헤치는 데 주저함이 없지 않았다면서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사진=연합뉴스)
취재를 하면서 느낀 문제의식도 이와 비슷합니다. 수요가 회복세로 접어들었다지만, 여전히 국민 70%가 달걀 구매 꺼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정보가 지극히 제한된 시절이었다면 모를까, 요즘처럼 누구나 인터넷 검색 조금만 하면 고급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는 '일단 이 상황만 모면하고 보자'는 식의 근시안적인 행정은 반드시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게 돼 있습니다.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투명하고 정직하게 풀어나가야만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설사 다음번에 이런 일 또 터지더라도 욕 덜 먹고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식약처의 솔직한 해명과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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