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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의관 '마약류' 몰래 처방 의혹에도 '눈 감은' 경찰

[취재파일] 군의관 '마약류' 몰래 처방 의혹에도 '눈 감은' 경찰
병사들에게 위·대장 내시경을 밥 먹듯 시술한 군의관 A 씨의 취재 뒷얘기 들려드렸습니다. A 씨에게 전역 전날 ‘감봉 1개월’을 결정한 국군의무사령부의 황당한 징계 내용도 전해드렸죠. 이번에는 A 씨에게 제기된 여러 비위 의혹 중에 ‘마약류 몰래 처방’ 의혹을 다루려고 합니다. 이 의혹에 대해 A 씨는 결과적으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습니다.

● A 씨, 감기약 처방한다더니 마약류를 몰래 처방

때는 A 씨가 모 국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지난 2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방부와 해당 군 병원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이날 오전 동료 군의관 B 씨에게 자신의 감기약을 처방하겠다며 국방의료전산시스템에 접속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군에서는 ‘자가 처방 관련 진료 지침’ 상 본인의 병에 자신의 아이디로 약 처방을 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A 씨는, B 씨에게는 단순 감기약을 처방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코데인을 처방했습니다. 마약류로 분류된 이 약은 군 병원에서 특별 관리하는 약품입니다. 물론 코데인은 가래나 기침이 심할 때 처방 받기도 하는데, 최대치가 하루 4정, 일주일 간 28정으로 엄격히 제한돼 있습니다. 그러나 A 씨는 하루 9정, 일주일 치 63정을 B 씨 몰래 처방했습니다. 기준치보다 3배 가까이나 말이죠. 당장 해당 병원 약제과에 비상이 걸렸고, A 씨가 B 씨 몰래 코데인을 처방한 사실이 확인되자 처방 내역이 삭제 조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의무사령부에 제출된 B 씨의 진술서에 B 씨는 “전자 차트에 감기 병명으로 공인인증서 서명을 입력해주고 처방 내역은 A 씨가 혼자 공용 컴퓨터에서 직접 입력했기 때문에 코데인 처방에 대해 진술인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적었습니다.

의무사령부는 ‘과잉 진료’ 의혹과 함께 이 부분도 감찰 대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마약류 몰래 처방’ 의혹은 단순 징계 사안이 아니라 수사 의뢰할 사안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6월, A 씨가 전역한 지 두 달이 지난 뒤에야 ‘수사 의뢰’가 아닌 ‘진정’ 형식으로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의무사령부가 A 씨에 대한 징계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군이 마지못해 진정한 이 사건은 경찰에서도 희한하게 취급됐습니다.

● 경찰, 핵심 참고인에 ‘허위 조사’ 요구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달 ‘증거 불충분’으로 검찰에 A 씨 사건을 송치했습니다. 경찰의 ‘무혐의’ 결정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A 씨가 코데인을 ‘몰래 처방’한 게 아니라 동료 군의관에게 감기약 처방 사실을 알렸다. 둘째, 타인에게 팔거나 제공할 의사도 없었다. 셋째, ‘과다 처방’한 것도 아니다. 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B 씨가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분명히 ‘A 씨가 코데인을 처방하려는 줄 몰랐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1일 최대 4정으로 제한돼 있음에도 3배 가까이 초과 처방됐다는 해당 군 병원 약제장교의 진술도 받았음에도 ‘과다 처방’이 아니라고 판단한 부분에선 더더욱 그랬습니다.

문제는 경찰이 A 씨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핵심 참고인 B 씨에게 ‘회유’를 했다는 점입니다. SBS가 입수한 송파서 마약팀 수사관과 B 씨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경찰이 정말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 녹취록을 직접 공개하겠습니다.
 

수사관 : A 씨 사건 때문에 000 과장님(B 씨)과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못 봤습니다. 문제는, 사건은 송치했는데 사건을 이미 송치했고 문제가 되는 게 하나 부탁드릴 일이 있어가지고요.

저희 팀장님이 혹시 확인할까 봐 연락을 드린 거예요. 그날 000 과장님(B 씨)을 못 만나고 왔다고 얘기했는데, 저희가 딴 일이 있어서 중간에 우회하다 보니까 못 만나서, 핑계를 댔는데 "과장님이 바쁘셔서 그날 만나지 못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서 만약 혹시라도 팀장님이 전화를 하시면 그날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만나게 됐다'고만 해주시면 돼요.

B 씨: 저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요.


취재진은 해당 녹취의 존재를 숨기고, 경찰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문의했습니다. 경찰은 딱 잡아뗐습니다. 하여 녹취를 공개하자 말을 바꿨습니다. “B 씨에게서 이미 자세한 진술서를 받았기 때문에 더는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유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군 감찰이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전역한 군의관을 따로 진정한 사안에 대해 경찰은 A 씨의 주장만 믿고 무혐의 처분을 한 셈입니다. 그것도 핵심 참고인에게선 3장짜리 진술서만 받은 채 말이죠. 팀장의 질책이 무서워 참고인에게 “당신이 바빠서 못 만났다고 해달라”고 회유한 경찰에게서 우리 경찰의 수준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마약류 취급은 더욱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마약 관련 수사는 함정 수사도 용인될 정도입니다. 마약을 복용한 사람뿐만 아니라, 소지를 한 사람, 소지를 하려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과연, 의사가 아닌 일반 사람이 이렇게 코데인을 입수하려 했다면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을까요?

B 씨의 진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A 씨에게 “나도 모르게 마약류로 분류된 코데인을 왜 처방했느냐”고 따져 물으니 A 씨는 “이전에 근무하던 대학병원에서 자주 썼다. 이 약제가 많이 처방되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고 말을 했음> 경찰이 이 진술서를 제대로 읽기는 한 것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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