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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세청 '비밀 유지'와 '치부 공개'의 관계

[취재파일] 국세청 '비밀 유지'와 '치부 공개'의 관계
# 국세청 공무원 A씨는 카드깡 업자에게 위장가맹점 조기경보 발령 정보를 유출하고 정상가맹점 처리를 하면서 20회에 걸쳐서 총 2,350만 원의 금품을 수수했고, 결국 파면당했다.

# 국세청 공무원 B씨는 법인세 재무제표를 수정해주는 대가로 세무법인으로부터 2,000만 원의 금품을 수수했다가 파면당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국세청 공무원들의 비리 행위들입니다. 이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세청의 징계의결서 사본을 처음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2012년부터 2017년 6월 현재까지 금품수수·기강위반·업무소홀 등으로 징계받은 국세청 공무원이 무려 687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의 자료제출 방식을 질타했습니다. 징계의결서 대부분이 내용을 알 수 없게끔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의원실 보좌관은 그나마 가려져 있지 않는 부분을 바탕으로 국세청에 "묻고 묻고 또 물어서야" 전부도 아니고 일부 비리 내용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개인 납세자의 정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마음대로 엿봐서는 안 되는 과세자료

국세기본법 제81조의 13은 국세청 직원들의 비밀 유지에 관한 조항입니다. 법은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세법에서 정한 납세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제출한 자료나 국세의 부과·징수를 위하여 업무상 취득한 자료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개인정보와 소득, 재산, 의료비 내역, 신용카드 및 현금 사용액, 기부금 내역 등 세금과 관련된 막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금 부과에만 쓰겠다면서 받아놓은 과세자료가 유출되면 개인 납세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유명인들의 탈루 의혹들이 그런 예입니다. 법인들 또한 세무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경영 비밀이 유출돼 경영 활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세청 입장에서도 납세자와의 신뢰 관계가 무너져 제대로 세금을 걷을 수 없을 테고, 정치권에서는 세무조사 자료를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 국세청 전가의 보도 '국세기본법 81조 13'

이런 점 때문에 "국세기본법 81조 13에 따라 개별 납세자의 정보는 밝힐 수 없습니다"는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각종 자료요구에 대응하는 국세청의 단골 답변이 됐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징계 의결서 사례처럼 국세청 직원들의 비리 행위 등을 공개하는 데 있어 '비밀 유지'라는 명분이 앞세워지는 건 문제입니다. 국세청은 부동산 탈루 세무조사 등과 관련된 보도자료를 발표할 때에는 익명으로 처리해서 여러 탈루 유형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국회 의원실 보좌관은 "징계 의결서도 납세자 부분만 신원이 밝혀지거나 유추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가리거나, 유형으로 처리해 함께 자료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비밀 유지라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것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불법으로 법원 판결까지 받은 세무조사뿐 아니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서 찾을 수 있는 '공공기관 탈루 금액' 등도 국세청은 '개별 납세자의 비밀'이’라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회에서는 국세청의 비밀주의가 너무 과하다고 보고, 2000년대부터 수차례에 걸쳐 '비밀 유지 예외 사항'을 추가하려 했습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또는 국회 예산정책처장이 과세정보를 요청하는 경우'나 '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을 목적으로 국세청에 과세정보 제출을 요구했을 때' 등에는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말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논의를 했는데, 납세자 보호 부분 때문에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 형식적인 국세행정개혁TF 우려

이번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는 '국세행정개혁TF'에 대한 질의가 집중됐습니다. 이 TF의 목적 중 하나가 '과거 정치적 논란이 있었던 세무조사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TF가 과연 제대로 된 점검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비밀 유지' 조항 때문입니다. TF는 최근 회의에서 국세청 측에 관련 내부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국세청은 '개별 사건에 대한 비밀유지 원칙'을 이유로 외부위원의 내부 자료 접근은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국정감사에서 "TF에서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내부적으로 검토해서 제출 가능한지 판단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자료 없이 정치 세무조사 여부를 조사한다는 게 가능하겠느냐", "국세청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인데 협조적이겠느냐" 등 TF가 내놓을 결과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정치적 조사'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 안원구 전 대구국세청장은 "명백한 불법, 범죄에 연루된 사건이면 개별기업 정보의 비밀유지 의무조항의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또 국정감사 등에서 이들 자료를 의뢰할 경우 거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불법에 연루된 기업이 개별정보까지도 법이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세청은 어느 정권에서도 정치 세무조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게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또 직원이 2만여 명에 달하고 국민 생활과 직결되다 보니 비리 등 각종 사건·사고 또한 적지 않습니다. 납세자 정보는 악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돼야 합니다. 하지만, '비밀 유지'가 국세청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는 일 또한 없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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