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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권력은 재벌가(家)를 돕고 있었다

朴 청와대 "이재용은 세자…왕이 살아있는동안 자리 잡아줘야"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17.10.12 12:01 수정 2017.10.12 12:28 조회 재생수8,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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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권력은 재벌가(家)를 돕고 있었다
●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진 현대판 막장 사극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베테랑>에는 재벌 2세 유아인(조태오)을 ‘황태자’로 일컫는 장면이 나온다. 막강한 ‘돈의 힘’을 믿고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는 재벌 2세를 황가의 후계자에 비유하는 대목이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현실 속 대중문화와 언론 지면에는 이런 비유가 자주 등장한다. 금력이 곧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재벌 일가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조나 황가에 비유하는 것도 그럴듯하다 싶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그저 영화나 드라마, 잘해도 하나의 비유로서만 존재했으면 하는 게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한 바램이었다. “세상을 너무 모른다”며 비웃음을 살지라도, 엄연히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은 법과 원칙이 존재하는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문건을 보면 그런 일말의 기대조차 너무나 순진했다는 느낌이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에 몸담은 실무자들이 왕이니, 세자니, 하는 표현을 써가며 이들의 ‘왕위 승계’ 과정을 논의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왕과 세자’라는 표현이 하나의 비유에 불과할지라도, 말은 곧 인식의 거울이다. 더구나 청와대에서 국정을 논하는 이들의 언어였다. ‘현대판 막장 사극’이라는, 본 취재파일의 부제는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빌려왔다.
 
● “이재용은 세자…왕이 살아있을 때 자리 잡아줘야”
 
SBS는 지난 10일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 [단독] "이재용 세자, 자리 잡아줘야" 캐비닛 문건서 추가 확인)  자필 메모 형태의 해당 문건은 지난 2014년 7~8월 경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당시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던 이 모 검사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의 지시로 작성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지난 7월 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해 일부 내용을 공개한 것과 같은 문건이다. SBS 보도는 앞서 청와대 브리핑(7.14)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에서(7.25) 일부만 공개된 문건의 원본에 가까운 내용을 입수한 뒤 추가로 확인된 핵심 내용만을 추려냈다.
 
삼성의 현 상태와 현안, 당면 과제, 정부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과 같은 흐름으로 작성된 2장의 문건 첫 머리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 → 기회로 활용’ 이라고 적혀 있다. 하위 항목으로 ‘삼성이 우리 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승계 국면을 ‘경제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유도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경영권 승계가 당분간 삼성의 경영기조를 좌우하는 제1의 현안’이므로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경제에 더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하겠다고도 썼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발휘 가능’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요약하면 ‘정부가 영향력을 발휘해 삼성의 (정확히는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고 대가를 이끌어내겠다’는 정도로 해석된다. 여기까지는 앞서 청와대 브리핑과 재판을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 靑, 朴 정부 문건 300종 발견…"삼성 승계 지원 정황"
▶ 靑 전 행정관, 딱 잘라 "삼성 문건, 우병우 지시로 작성"

새로이 보도된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왕과 세자’ 부분이다. 문건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삼성을 둘러싼 현 상황을 진단하다가 갑자기 이 부회장의 승계를 강하게 지지하는 입장을 내비친다. ‘지금이 삼성의 golden time’이며,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자 자리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문건 전체를 통틀어 가장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이다.
이재용 세자, 이건희 왕, 자리 잡아줘야, 문건두 말할 것도 없이 ‘왕’은 이건희 회장, ‘세자’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해당 문장의 앞부분에서 두 부자(父子)를 계속해서 언급하기 때문이다. 문건은 우선 ‘경영권 승계는 이건희 주식을 상속받아 최대 주주 지위를 지키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음’이라고 전제한다. 이어 삼성의 규모가 이미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경영권 유지가 불가능하다면서 ‘그럼 뭐냐 「이재용이 이건희와 같이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로 안착할 수 있냐의 문제」’ 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재용의 경영 능력에 물음표를 던진다.
 
‘※이건희 삼성전자를 키운 장본인 -> 경영능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
현재 이재용은 검증된 바 없음’

 
이어지는 다음 문장도 매우 눈에 띈다.
 
‘※ 정의선 기아 -> 현대차, 기아차 “언제 돌아오냐”의 말이 나올 정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제법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현대차그룹으로 옮긴 정의선 부회장을 언급한 문장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에서 현대차로 옮긴 뒤, ”기아자동차로 언제 돌아오냐”는 기아차 내부 호평이 나올 정도로 인정을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복수의 경제지가 이런 기사를 쓰기도 했다) 재벌 3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 능력 혹은 경영권 승계 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보이는데, 삼성 관계자들이 알았다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대목이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등을 통해 공개된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러한 ‘진단과 평가’는 시나리오 형태의 구체적 방안으로까지 나아간다. 현재 삼성에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며 ‘→ 성공하면 이재용 첫 작품으로 부각, 실패하면 이건희의 유산으로 정리’라고 적었다. 이게 청와대의 관점인지, 삼성의 관점인지는 해석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두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목적에 방향을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재용 경영승계->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발휘 가능’ 이라는 제목 아래 달린 하위 항목에는 1) 지배구조를 흔들 수 있는 경제화 법안, 2) 국민연금 지분, 3) 재계 주요 partner로 인정해주는 모습, 4) 해외순방시 포함시켜주는 조치 등도 의미가 있다는 견해 ‘라고 적고 있다. 역시 청와대가 ’이재용 띄우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대목이다.
 
추가로 확인된 ‘실수비’ 회의록…밝혀진 연결고리

‘청와대 캐비닛 문건’ 외에 취재과정에서 단독으로 확인된 문건이 하나 더 있다. 2015년,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실수비 회의) 문건이다. 캐비닛 문건이 작성되고 바로 이듬해 기록된 이 회의록에는 앞서 소개한 캐비닛 문건의 내용이 구체적인 ‘지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자필 메모로 작성된 캐비닛 문건과 실제 청와대 의사결정 과정 사이의 일종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2015년자 7월 29일자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이라 적힌 문건에는,
 
○ 일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려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해외시각을 면밀히 점검하여 필요시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 (경제수석)
 
이렇게 쓰여있다. 문장 뒤에 괄호는 이병기 실장이 경제수석 (당시 안종범)에게 말했다는 뜻이다. 문건은 석달 뒤인 2015년 10월 18일 회의록으로 이어진다.
 
○ 내일(10.19) 국민연금공단 이사회가 열리는데 최광 이사장 문제가 잘 마무리되도록 하고, 특히 이사장의 돌출행동이 없도록 잘 관리해 줄 것 (고용복지수석 *당시 김현숙)
이병기 전 당시 비서실장, 김현숙 당시 고용복지수석 대화 CG위 언급된 최광 이사장은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줄곧 부정적 의견을 내던 인물이다. 최 이사장은 이 문제로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과 마찰을 빚었고, 홍 본부장에 대한 연임 불가 방침을 밝혔다가 되레 임기를 7개월이나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에도 최 이사장이 합병에 반대하다 ‘정권 눈 밖에 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이런 전력이 있으니 국민연금공단 이사회를 하루 앞두고 “돌출행동이 없도록 관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요약하면 당시 청와대는 삼성 경영권 승계와 직결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가장 큰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을 수석비서관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첫째는 외국인 투자자 문제, 둘째는 국민연금 문제다. 어디서 많이 본 대목이다.
 
다시 캐비닛 문건으로 돌아가 보자.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현 상황을 진단하는 대목에서, 문건은 ‘※외국인 투자자, 국민연금 → 경영성과 내지 못하면 경영권 유지 불가능’이라고 적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문제와 국민연금 문제가 이 부회장의 경영성과, 나아가 경영권 승계와 직결된다고 적고 있는 대목이다.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쓴 메모의 내용이 1년이 지나 청와대 최고위급 회의에서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특검은 지난 7월 25일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혐의 재판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실수비 회의록을 제외하고) '당시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당면 현안을 잘 알고 있었음을 분명히 하는 정황 증거' 라며 '국정농단의 가장 큰 문제점이 정경유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는 한달 뒤 열린 (8.25)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 공판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졌고 이 부회장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오늘(12일)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 첫 재판날이다. 
 
● “삼성과 일체화된 권력…조직적인 지원”
 
이번에 추가로 확인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의 내용과 2015년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록은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의 도움으로 취재했다. 이 의원은 보좌진과 함께 국가기록원에서 해당 문건을 직접 열람한 뒤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었고, 법적 검토를 거쳐 SBS 취재진에 넘겼다.
 
문건의 모든 내용을 검토한 이 의원은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국가의 모든 권능을 사용해 사기업의 편법적인 승계에 노골적으로 기획하고 개입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 대기업의 ‘족벌 경영’에 오랫동안 제기돼온 비판과 우려를 등시고 노골적인 종합 계획을 청와대가 수립했다는 점, 서민경제 부양을 위해 책임져야 할 국가가 조직적으로 경제 왜곡에 앞장섰다는 점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사진=연합뉴스)이 의원은 특히 문건에 쓰인 문장의 논리 전개에 주목했다. 예컨대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자 자리 잡아줘야”, 또 “(삼성 구조조정) 성공하면 이재용 첫 작품으로 부각, 실패하면 이건희의 유산으로 정리” 같은 문장은 객관적인 외부자의 시각에서 쓴 문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최소한 삼성과 스스로를 일체화시킬 수 있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잘 되면 정권 또는 내가 잘 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된 표현이라고 이 의원은 추론했다.
 
그가 주목한 지점이 하나 더 있다. 특이점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열람한 청와대 문건 가운데 국민연금과 관련된 조사 문건이 굉장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과 관련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청와대가 시기를 달리해서 끊임없이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특히 국민연금기금 의결권행사 관련해서 여러 가지 법리적 문제를 검토한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실제 지난 7월 청와대가 공개한 캐비닛 문건 가운데서도 민정수석실의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 문건이 발견됐다. 기자도 입수한 해당 문건에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법적 근거, 원칙, 강화 관련 찬반 입장, 관련 최근 이슈 등이 정리돼 있다. 당시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것을 감안하고 준비해왔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누구를 위한 나라였나?

이번에 드러난 일련의 내용들은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청와대 실세들이 저렇게 가식 없고 솔직한 표현까지 써가며 마치 ‘삼성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듯 똘똘 뭉친 모습도 그려진다. 조금은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가 찬다. 보도가 나간 뒤 세간의 반응도 대부분 비슷한 것들이었다.
SBS '이재용은 세자' 보도를 인용한 中 CCTV 캡처화면문건에는 ‘삼성의 현안은 곧 우리 경제의 고민거리’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당 부분 인정하고, 동의한다. 삼성은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삼성의 성공=이씨 일가의 성공적인 경영권 승계’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는 없다. 삼성 내부에서 실제 그런 결론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의 목표와 합치할 수는 더더욱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숱한 과오와 왜곡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헌법에 국민주권의 원리와 경제민주화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 나라다.
 
특정인의 경영권 승계가 삼성그룹과 국가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도 역시 공감을 얻기 힘든 부분이다. 이는 삼성 내부의 논리, 나아가 오너 일가의 논리에 불과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치솟은 삼성의 주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장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더구나 청와대 스스로 ‘경영능력 검증된 바 없음’이라고 결론 내린 바로 그 ‘세자’의 즉위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가당착에 다름이 아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개입이자 지원이었나? 문건 내용대로 정말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면, 논리가 맞지 않는다. ‘기회로 활용’이라는 표현을 순수하게만 독해할 수 없는 이유다.
 
문건을 둘러싼 주요 인물들은 이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문건의 내용은 과거의 일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지나간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설마, 하면서도 불과 몇년 전 분명히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이고, 그것은 언젠가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