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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빠가 보고 싶어요" 피살된 인터넷기사의 딸이 법정에 서기까지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7.09.30 10:38 수정 2017.10.02 17:24 조회 재생수17,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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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아빠가 보고 싶어요" 피살된 인터넷기사의 딸이 법정에 서기까지
그제(28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의 한 법정에 있던 사람들은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지난 6월 충청북도 충주의 한 원룸에서 55살 권 모 씨가 내지른 칼에 찔려 숨진 인터넷 기사 A씨의 딸이 법정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검찰이 권씨에 살인죄 혐의에 대해 재판부에 구형하는 결심공판이었다. 구형이 이뤄지기 전 A씨의 딸은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다.

●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판사님"

"아빠가 아침에 저를 학교에 태워주고 간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저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만 열심히 하셨습니다." 법정에 선 딸은 눈물을 흘렸다. "공부에 집중도 안 되고 힘도 없고 무기력하고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고 딸은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판사님"

딸이 진술을 마치자 법정은 울음바다가 됐다. 구형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석동현 검사(청주지검 충주지청), 재판을 맡은 정택수 부장판사(청주지법 충주지원) 모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추스른 석동현 검사는 권 모 씨가 계획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6일에 선고하겠다고 밝히고 공판을 끝냈다.

최근 강력 범죄의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의 법정에 나와 가해자에 대한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례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얼마 전 1심 결과가 선고된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공판 과정에선 살해된 초등학생의 어머니가 출석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자와 마주치는 건 그 자체로 심리적 충격을 주는 일이지만, 가해자가 엄한 처벌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 가족들은 검찰이 권하면 법정에 출석해 증언한다고 한다.


● 판사와 검사의 의무인 '피해자 진술권' 보장
법원형사소송법은 범죄 피해자 또는 유족의 법정 진술권을 판사가 의무적으로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를 포함한다)의 신청이 있을 때는 그 피해자 등을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95조의 2) 피해자 또는 그 가족이 원할 경우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할 의무를 판사에게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 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은 "국가는 범죄피해자가 해당 사건과 관련하여 수사담당자와 상담하거나 재판절차에 참여하여 진술하는 등 형사절차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제8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의 딸이 법정에 서게 된 것도 범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검사가 유족과 직접 상담하면서 설득한 결과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에서 사건이 송치된 뒤 주임검사가 A씨의 딸과 직접 면담했다. 검찰에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러 제도들이 있는데, 어떤 제도를 원하시는지 듣기 위해서였다. 권씨를 기소하기 직전에도 주임검사가 한번 더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권씨에 대한 엄한 처벌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법정에 나가실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A씨의 딸이 용기를 내서 나가겠단 뜻을 밝혀주었다."라고 말했다.

법정에 설 용기를 낸 A씨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검찰은 몇 가지 배려를 했다. 피해자지원센터 제도를 통해 장례비와 소정의 생활비를 지급했고,  딸의 학비도 일부 지원했다. 심리치료도 지원할 수 있지만 이는 가족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A씨 가족의 법정 증언 여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지원이다.)

또, 최근 충주지청에 부임한 공익법무관 1명을 A씨 가족 담당자로 지정해 가족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했다. 28일 결심공판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권 씨에 대한 재판이 3차례 열렸는데, 그때마다 모두 A씨의 가족이 방청했다. 공익법무관은 A씨의 가족들에게 재판에서 진행되는 상황의 법률적 의미를 설명하고, 가족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설명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다.


● 검찰 "가해자 권씨,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아"

검찰은 권씨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터넷기사 A씨를 칼로 찔러 살해한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있지만, 범죄 혐의의 핵심인 계획성은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권씨가 검찰 조사에서 1주일 전부터 인터넷 기사를 살해하겠다고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라 우발적인 범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법원에 요청한 위치추적전자장치(이른바 '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기각해달라고 권씨 측은 요청하고 있다. "본인은 반성한다고 법정에서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권씨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은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연쇄살인범이 아닌 살인죄 피고인에게 선고할 수 있는 사실상의 최고형이다.

권씨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 달 26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이뤄진다. 너무나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인터넷기사 A씨와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참담한 마음을 고백했던 그 딸을 위해서라도 정의에 부합하는 합당한 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