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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파리바게뜨 제빵기사가 에어컨 청소까지 하는 이유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논란이 놓치고 있는 '제빵기사의 노동권'

[취재파일] 파리바게뜨 제빵기사가 에어컨 청소까지 하는 이유
지난 6월 어느 날. 파리바게뜨 회장이 점포를 순회합니다. 어느 점포에 방문했더니, 진열된 케이크가 몇 개밖에 없었습니다. 회장은 그 점포의 제빵 기사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기사는 ‘제가 좀 더 빨리 출근해서 더 빨리 케이크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전국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겐 아래와 같은 공지가 내려집니다.

‘<생크림 생산시간 단축 캠페인> 최근 회장님 순회 점포 중 케이크 부족으로 전국점포 생크림 케이크 생산시간 조기 시행 지시가 있었습니다.’

제빵 기사들에 따르면, 기사들은 통상 오전 7시에 출근해 그날 판매할 빵을 만들고, 오후에 케이크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공지로 케이크 생산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누군가는 출근시간이 30분 이상 빨라졌고 누군가는 점심시간을 반납해야 했습니다. 오후 1시 반 전에 빵과, 케이크까지 모두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 제빵 기사는 이 같은 지침을 전달한 본사 담당자에게 항의합니다.

“본사에선 기사들이 점심을 먹고 못 먹고는 관심이 없는 건가요?”

돌아온 답은 이랬습니다.

“그런 거 같아요. 회사가 회장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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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부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지시 후 거센 논란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본사에,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 5천37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제빵기사들은 협력업체와 근로 계약을 맺고, 협력업체는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과 계약을 맺고 제빵기사들을 공급합니다. 이 계약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현행 가맹사업법의 범주를 넘어서는 업무 지휘를 했고, 채용 임금 승진 등 전반적인 노무 관리에 개입한 사실이 고용부 근로감독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용부는 파리바게뜨를 ‘사실상 사용자’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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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브랜드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비공식적으로’ 반발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당혹스럽다’는 입장만 발표했습니다.) 법적 검토도 하고 있습니다. 경총을 중심으로 재계도 거들고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1) 현행 가맹사업법이 허가한 ‘가맹본사의 품질 관리를 위한 지원’일 뿐이다
2) 제빵기사와 법적 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본사에 불법파견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3) 직접고용을 해도 파견법 위반에 해당하긴 마찬가지다


‘품질을 위한 가맹본부의 영업 지원은 허용한다’는 가맹사업법과 ‘제빵 업무는 인력 파견가능 대상업종이 아니다’는 파견법, 두 개의 법이 혼재돼있는 사안.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지금의 논란이 필요한 절차라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이 논란은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5천여 명의 제빵기사들, 그들의 노동권입니다.

●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시킬 수 없는 일들, 그게 우리의 몫이죠"

고용부가 파리바게뜨에 직접고용을 지시한 당일, 파리바게뜨의 한 협력업체 소속인 10년차 제빵기사 임종린 씨를 만났습니다. 파리바게뜨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제빵기사를 거쳐 지금은 ‘제빵 지원 기사 (담당 지역 내 가맹점을 돌며 제빵기사 인력을 대체하는 역할)’로 일하고 있습니다. 임 씨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장본인입니다. 지난 5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동료와 함께 제빵기사들에게 도움을 줄 곳을 찾다가 지하철역 옆에 붙어있던 정의당 ‘비정규직상담창구’ 현수막을 보고 연락을 했고, 이를 계기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문제제기가 시작됐습니다.

무엇을 참을 수 없었던 걸까.

“갑자기 1년 전 받은 수당을 다시 가져간다는 거예요. 공문 한 장도 없이. 항의했더니 ‘본사에서 하는 일이니 따져봤자 소용없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정말 이런 일을 당해도 되는 건지, 회사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결국 스스로 알아보러 나선 거죠.”

파리바게뜨 본사로부터 주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도 물었습니다.

“별 지시가 다 내려와요. 갑자기 매장 전경 사진이 필요하니 길 건너가서 사진을 찍어 보내라. 청소도 해요. 에어컨 닦아라, 매장 바닥 닦아라. 봄맞이 청소, 무슨 맞이 청소 등 수도 없어요. 이렇게 지시를 하면 그 지시를 이행한 증거를 사진을 찍어 보내야 해요. 지시 받고 사진 찍어 보내는 게, 매일 하는 가장 큰 업무죠.”
제빵기사 임종린 씨와의 인터뷰
의아했습니다. 매장엔 가맹점주도 있고, 가맹점주가 직접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도 있습니다. 제빵 업무 외에 다른 일까지 제빵기사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본사에서 가맹점 사장님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긴 좀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요. 나이 많은 사장님들한테  ‘사진 찍어 보내세요’ ‘오늘 출하한 홍보물 진열하세요’ 이렇게 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런 일들이 저희한테 와요.”

대표적인 ‘부담스러운 업무’ 중 하나는 '주문'이었습니다.

“저희 기사들이 제일 싫어했던 게 월말 주문(가맹점이 본사에 주문하는 제품 및 재료 물량)이에요. 사업팀(본사)이 달성해야 하는 금액이 있거든요. 그걸 달성 못하면 월말에 기사들이 주문을 넣어요. 저희가 주문 넣으면 사장님(가맹점주)이 싫어하세요. 사장님 돈으로 주문하는 거잖아요. 금액이 많이 나오니까 싫어하시는데 회사에서는 계속 ‘하나 더 넣어, 하나 더 넣어’ 이런 식으로 요구해요.”

임 씨의 말을 바탕으로 보면, 본사는 가맹점 주문량을 늘리기 위해 제빵기사들을 이용했습니다. 가맹점주에게 직접 ‘우리가 제공하는 재료를 더 주문하라’고 요구하기 어려우니 제빵기사들에게 이 업무를 대신 맡긴겁니다. 가맹점의 월말 주문을 대신한다고 해서 제빵기사들의 처우가 나아진 건 없었습니다. 본사의 지시를 받으며, 가맹점주가 사장인 공간에서 일하는 이른바 ‘을 중의 을’인 제빵기사들의 상황만 곤란해지는 구조인 셈입니다.

본사 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빵기사를 파견보내 저희가 이득을 볼 것이 없다. 우린 가맹점주가 직접 빵 안 만들고 본사에 주문해주시면 수익이 더 늘어난다. 제빵기사 파견은 본사와 가맹점의 상생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다.(SPC 관계자)”

가맹점과의 상생일지 아니면 본사의 방침에 따른 가맹점 관리일지도 판단해볼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서있는 제빵기사들의 노동권은 뒤로 밀리고 있단 점입니다.

고용부 근로감독으로 드러난 ‘사실’중엔, 제빵기사가 소속된 협력업체들이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근로시간을 임의로 조정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제빵기사가 일을 많이 하면 협력업체에 용역비를 주는 가맹점주나, 월급을 많이 줘야하는 협력업체나 모두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사는 몰랐을까요. 임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스에 출퇴근 시간을 찍으면, 이런 메시지가 떠요. ”연장근무 하셨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그렇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바로 전화가 오거든요. 사장님(가맹점주)한테 꼬치 꼬치 물어봐요. 진짜 저 기사가 연장근무를 했는지 안했는지. 그럼 사장님이 저희한테 뭐라고 하시죠. 왜 연장 근무했다고 했냐고.”

● 본사의 지시는 '갑질'인가 '품질관리'인가…또 다른 본질

이번 논란의 또 다른 축은 <제빵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파리바게뜨 본사의 지시는 ‘갑질’인가 ‘품질관리’인가>가 돼야 한다고 보입니다. 제빵기사들이 공개한 본사 측의 업무 지시는. 품질 좋은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제빵기사들이 해야하는 업무의 범위를 벗어나 보이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용부는 오늘(25일) 오전 긴급 차관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파리바게뜨는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에 대해 가맹사업법상 교육, 훈련 등의 범위를 넘어 채용, 승진, 평가 등의 일률적 기준을 마련해 소속 품질관리사를 통한 업무지시 등 인사, 노무 전반에 관한 지휘 명령을 한 것이 확인돼 불법파견 사용사업주로 판단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협력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더라도 가맹사업법의 교육, 훈련 등의 범위 안에서 품질관리를 위한 지도나 지원은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용부의 불법파견 결정이 ‘법도 모르는 잘못된 결정’이라는 취지의 일부 비판이 계속되자 가맹사업 전반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파리바게뜨의 사례에만 국한한 결정이라고 입장을 밝힌 겁니다.

이 모든 논란의 시작은 임 씨를 포함한 일부 제빵기사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제빵기사들이 노조까지 결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논란의 중심에서 이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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