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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선인이 라이트형제보다 300년 앞서 하늘을 날았다?

-16세기 조선의 비행체 비거(飛車)의 실체를 찾아서

[취재파일] 조선인이 라이트형제보다 300년 앞서 하늘을 날았다?
▲ 사진=전북 김제시 제공
 
지난 주말 전북 김제에서 열린 지평선 축제에 흥미로운 조형물이 등장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제 출신의 무관 정평구가 발명했다는 비행체, ‘비거(飛車)’입니다. 주최 측의 설명에 따르면 정평구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당시 ‘비거’라는 유인 비행체를 만들어 양민 구출, 공격 전술 등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라이트형제보다 300년 앞서 조선인이 최초로 하늘을 날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선 “조상님의 지혜에 감탄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지나친 애국심이 낳은 허황된 이야기”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기록에 등장하는 정평구의 '비거'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앞섰다는 유인 비행체 ‘비거’. 아주 근거 없는 설명은 아닙니다. ‘비거’에 대해 설명한 여러 역사적 기록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거’는 주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저작에서 등장합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의 여암전서 (旅菴全書)에 등장하는 ‘비거’에 대한 기록입니다.

‘임진 연간에 영남의 읍성이 왜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성의 우두머리에게 비거의 법을 가르쳐, 이것으로 30리 밖으로 날아가게 하였다.’...‘영남의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정평구는 평소의 재간을 이용하여 만든 비거를 타고 포위당한 성 안에 날아 들어가, 30리 성 밖까지 친지를 태우고 피난시켰다.’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의 저작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비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임진왜란 떄 정평구란 사람이 비거를 만들어 진주성에 갇힌 사람들을 성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 비거는 30리를 날았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조선 사람 정평구는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하기 300년 전,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비행체를 만들어 라이트 형제보다 46배 긴 12km를 비행한 것이 됩니다. 조금 믿기 힘든 내용인데, 이런 ‘비거’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기록을 또 하나의 증거로 내세웁니다. 왜사기(倭史記)에 등장하는 ‘비거’입니다.

‘전라도 사람 정평구가 비거를 사용해 (왜군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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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거'는 정말 '유인 비행체' 였을까?

이러한 기록 등을 근거로 일각에서는 정평구를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유인 비행기 발명가’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실제 시중에는 정평구를 ‘비행기 발명가’로 소개한 어린이용 위인전이 출간돼 팔리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거’가 정말 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였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비거’가 여러 기록에 등장해 존재 자체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사람을 태우고 장거리를 날아갈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 이유는 ‘비거’의 구체적인 구조가 전해지지 않고 있고, ‘비거’가 등장하는 기록이 대체로 전설과 민담이 혼재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립 과천 과학관에는 행글라이더와 비슷한 형상으로, 화약 추진체를 갖춘 ‘비거’ 모형이 전시돼 있지만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것이라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비거’ 논란과 관련해 인천 하늘고등학교 학생들과 인천대학교 연구팀이 새로운 설명을 내놨습니다. 바로 ‘비거’는 ‘유인 비행체’가 아닌, 사람 형상의 허수아비를 태운 뒤 방패연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교란용 비행체’라는 겁니다.

연구팀은 우선 진주성에서의 현장 실험을 통해 물리학적으로나 기상학적으로 ‘비거’가 사람을 태우고 날아오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주성의 수십 개 지점에서 상승풍의 풍력을 측정해 유체역학에 대입했을 때, ‘비거’와 같은 비행체가 사람을 태우고 스스로 이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거’가 사람 체중 무게를 싣고 활주로 없는 진주성에서 이륙하려면 현대 항공모함 전투기와 같은 추진 동력, 즉 사출 시스템을 탑재해야합니다. 하지만 당시 최첨단의 화약기술인 신기전 등을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해도 물리학적으로 사람을 싣고 이륙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 연구팀, "비거는 '사람 형상의 허수아비가 탄 교란용 비행체'"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 측 기록인 왜사기에도 “비거가 작전에 애를 먹였다”는 대목이 등장하는 만큼, ‘비거’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인천 하늘고등학교와 인천대 연구팀은 ‘비거’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고, 실험을 통해 ‘비거는 사람 형상의 허수아비를 태운 교란용 비행체’라는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실제 전사(戰史)에는 사람 모양의 인형을 날려 보내 전투에 활용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연합군이 실제 상륙지점인 노르망디 해안 서쪽 대신 해안 동쪽으로 낙하산을 태운 인형, ‘파라더미 (Decoy paradummy)’를 투하한 겁니다. 독일군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파라더미를 향해 사격을 가하느라 총알은 물론 작전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독일군이 파라더미의 실체를 알아챘을 때 이미 연합군은 노르망디 서쪽 해안에 성공적으로 상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The Longest-Day 中.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의 '파라더미'
연구팀은 이러한 사례에 착안해 ‘허수아비를 태운 교란용 비행체’ 형태의 ‘비거’를 제작했고, 이를 방패연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결과 유인 비행체 형태와는 달리 이런 형태의 ‘비거’는 실제 전시 상황에서의 비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파라더미'와 비슷한 형태의 '비거'를 진주성을 공격하는 왜군들 위로 날려보내 사격 분산을 유도하는 등의 효과를 거뒀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이 새롭게 제시한 설명입니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 비춰보면 ‘비거’를 무작정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앞선 유인 비행체’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보다는 진주성에서의 과학적 실험을 통해 도출한 가설, 즉 “비거는 ‘파라더미’와 유사한 형태의 ‘교란용 무인 비행체’라는 연구팀의 설명이 ‘비거’의 역사적 실체에 가깝다고 평가하는 게 좀 더 합리적일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비거’의 실체에 대한 ‘정답’은 아닐 수도 있기에 ‘비거’의 실체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연구의 길은 계속 열려있습니다. 역사의 기록 그대로 박제된 채 전승되기 보다는, 다양한 연구와 논의를 통해 끊임없이 재발견 되는 것. 그것이 조상의 지혜가 담긴 ‘비거’의 가치와 의미를 더 풍부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요?

2017 인천하늘고등학교 창의 융합 프로젝트 - 정평구의 비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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