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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뻥 뚫린 탈북자 정보…통일부는 몰랐다

[취재파일] 뻥 뚫린 탈북자 정보…통일부는 몰랐다
SBS는 지난주 통일부 공무원이 탈북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몰래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통일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통일부 6급 직원 이 모 씨는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약 5년 반 동안 탈북자 48명의 정보를 20차례에 걸쳐 빼냈습니다. 그리고 이 정보를 평소 알고 지내던 탈북 브로커인 배 모 씨에게 한 명당 약 30만 원꼴로 모두 1천 475만 원을 받고 팔아넘겼습니다. 검찰은 이 씨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고 통일부도 뒤늦게 이 씨를 직위 해제했습니다.

▶ [단독] 탈북자 1명당 30만 원…정보 팔아먹은 통일부 직원

취재원에게 처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탈북자 정보가 불법 유통된 것도 놀라운 사실인데, 그 주체가 탈북자들의 안전을 가장 신경 써야 할 통일부 공무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최근까지 남북교류업무를 담당했고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탈북자 교육 및 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근무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보니, 통일부 직원이 탈북자 정보를 빼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씨의 범행이 시작된 건 지난 2010년 6월, 탈북 브로커 배 씨를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평소 이 씨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배 씨는 이 자리에서 "탈북 브로커 비용을 떼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힘들다"며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금전적인 대가를 약속하면서 말이죠. 보통 북한 주민들이 북한을 탈출할 때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 제3국을 경유해 우리나라로 들어옵니다. 이 과정에서 탈북 브로커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비용을 받고 탈북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설사 이 비용을 브로커들의 주장처럼 '떼먹혔다'고 해도, 탈북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보안 사항입니다. 이 씨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탈북자들의 정보를 빼내 넘긴 겁니다. (추가 취재 결과 '떼먹혔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경우뿐 아니라 비용을 받아내고도 여러 이유로 웃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 탈북자 제보로 밝혀진 범행…'제3자' 유출 가능성도

이같은 범행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건 한 탈북자의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20대 여성인 이 탈북자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돈을 부치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놀란 탈북 여성이 "어떻게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알고 있느냐"고 반문하자 "하나원을 통하면 다 알 수 있다"고 말한 겁니다. 하나원 전 직원이었던 이 모 씨에게 얻어낸 정보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니었죠. 전화를 받은 탈북 여성은 겁을 먹고 탈북 정착금으로 받은 돈 350만 원을 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이 여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탈북자들도 복수의 브로커들로부터 비슷한 협박 전화를 받은 겁니다. 실제 집으로 찾아온 경우도 있었고, 문신을 보여주며 겁을 주기도 했답니다. 알고 보니 탈북 브로커 배 씨가, 통일부 직원 이 씨에게 넘겨받은 탈북자 정보를 또 다른 브로커에게 팔아넘긴 겁니다. 그 브로커는 또 다른 브로커들에게 정보를 팔아넘겼고요. 불법 유출된 탈북자 정보가 브로커들 사이에서 돌고 돈 셈입니다.

그렇다면 탈북 브로커들 사이에서만 이 정보가 돌았을까요? 탈북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거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브로커들이 엄격한 보안 의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적고, 돈을 주고 산 이상 '이 정보는 내가 돈 주고 산 내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거죠. 제3자 혹은 북한으로 탈북자 정보가 흘러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에 마저 하겠습니다)

● 탈북자 정보 '무방비'…통일부는 뭐했나
통일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검찰 수사 등으로 밝혀진 이 씨의 범행 경위를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이 씨는 범행 당시 탈북자 정보를 직접 관리하는 업무를 맡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부 내부전산시스템에 들어가 탈북자 정보를 빼냈습니다. 내부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문서등록대장을 죽 훑어보다가, 열람이 가능한 문서에 들어가 탈북자 정보를 확인했다는 겁니다. 즉, 탈북자 정보가 기재된 문서가 버젓이 아무나 볼 수 있도록 열려 있던 셈입니다. 비록 이 씨가 하나원에 근무했던 경력이 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손쉽게 해당 문서에 접근한 면도 있겠지만 그만큼 통일부 내부전산망에서 탈북자 정보가 허술하게 취급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실(국회 외교통일위)에 따르면, 통일부 전산 시스템에는 탈북자 정보 열람 권한이 있는 사람이 지정돼 있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탈북자 정보를 열람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즉 누가, 얼마나 많은 탈북자 정보를 열람하거나 유출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일부는 이 씨가 5년 반에 걸쳐 탈북자 정보를 유출했는데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2월, 탈북 브로커들을 수사하던 경찰이 통일부에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난 뒤에야 겨우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씨에 대한 개별 조사 말고는 자체 감사나 시스템 개선 같은 어떤 근본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통일부는 그제(19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유감 표명과 함께 "북한이탈주민 관련 정보의 외부유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탈북민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더욱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통일부의 허술한 보안의식, 또 처음 사건을 인지한 지난해 2월 이후 취해진 일련의 안일한 조치 등을 보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6급 공무원 한 사람만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 '제2의 임지현' 우려…"이건 살인미수" 댓글도

사족을 붙이자면,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얼마 전 떠들썩했던 '탈북 방송인 임지현' 씨가 떠올랐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뒤 국내 종합편성채널에서 왕성하게 방송 활동을 하던 탈북 여성 임지현 씨가 느닷없이 북한 조선중앙TV에 모습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국내 종편방송에 나와선 북한 체제를 비난하던 임 씨가, 갑자기 이름을 바꾸고 북한 TV에서 돌연 남한 사회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배경에 궁금증이 쏠렸죠. 당시 임 씨의 재입북 배경을 놓고 '중국으로 유인돼 납치됐다', '위장 탈북했다가 재입북했다'는 등의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 탈북 방송인, 돌연 北 선전 매체 등장…재입북 경위 조사
재입북한 탈북자 임지현
사실이 어찌됐건 염려스러운 지점은 하나입니다. '국내 탈북자들에 대한 정보가 제3자에게 노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 정보당국이 국내 탈북자 정보에 접근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되어왔습니다. 보도를 이어간 다른 여러 매체에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탈북자 정보가 얼마나 허술하게 유출되고 유통되는지는 이번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굳이 사족을 붙인 건 기사에 달린 한 댓글 때문입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이 댓글은 "이건 살인미수라고 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 이럴진대, 탈북자들이 받은 위협은 얼마나 컸을까요? 실제로 탈북자들은 "말 안 들으면 북한으로 다시 보내버릴 수 있다"는 협박을 듣고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용돈 좀 벌자고 탈북자 정보를 빼낸 통일부 공무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통일부. 그리고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탈북해 남한에 정착해서도 공포에 떨었을 탈북자들. 그 간극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기관과 공무원이 안일하면, 피해는 결국 힘없는 이들에게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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