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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천만 영화의 '불편한 진실' ② : 1년이면 30일은 '좌석 독과점'

▶ [마부작침] 천만 영화의 '불편한 진실' ①


6. 위에서 선배가 말씀하신 ‘군함도’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군함도’는 개봉 당일 2,027개의 스크린을 차지하며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갖고 있던 전국 스크린 수 1,991개의 기록을 뛰어넘었습니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던 관객들은 매우 화가 났거나 최소한 실망했겠죠. 당시에는 ‘덩케르크’의 관객들이 그랬을 겁니다. ‘군함도’가 개봉하기 전까지 ‘덩케르크’는 전국에서 하루 평균 7,157회 상영됐습니다. 하지만 6일 뒤 ‘군함도’가 개봉하자 그 주에는 평균 2,011회로 뚝 떨어졌습니다. 10,418회 상영된 ‘군함도’와는 5배 정도나 차이가 납니다.
[마부작침] 천만 영화의 비밀_군함도와 덩케르크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덩케르크’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은 개봉 6일이 지난 후에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관객이 몰리는 주말 연휴의 좌석점유율을 보면 개봉 1주차를 제외하고는 2주차부터 5주차까지 ‘덩케르크’의 좌석점유율은 ‘군함도’의 좌석점유율보다 항상 높았습니다. 개봉 3주차부터는 관객수도 역전합니다. 3주차 ‘덩케르크’의 관객수는 평일 평균 61,145명, 주말 평균 54,296명으로 군함도의 평일 60,543명, 주말 41,319명보다 많습니다. 새 영화가 들어오니까 (관객 선호와 관계없이) 인위적으로 앞 영화를 밀어냈다고도 볼 수 있죠.

7. 1년이면 30일은 ‘좌석 독과점’

이렇게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4년 전인 2013년에는 ‘일간 1위 영화’(당일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가 전체 좌석 중 60%이상을 차지하는 ‘좌석 독과점’이 발생한 날이 6일에 불과했습니다. 이 수치가 2015년에는 14일로 늘어나더니, 작년에는 30일로 급증했습니다. 1년이면 한 달은 특정 영화가 60% 이상의 좌석을 점유하는 겁니다. 올해도 8월 2일 기준 이 같은 ‘좌석 독과점’에 이른 날이 전체 217일 중 18일로(365일로 치면 30일) 작년과 사정이 비슷합니다. ‘잘 나가는’ 또는 (내가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기 때문에) ‘잘 나가야만 하는’ 영화의 좌석 독과점이 심해지면서 피해를 보는 쪽은 관객입니다. 여전히 ‘덩케르크’를 보고 싶은 관객이 많지만 손쉽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영화는 ‘군함도’로 제한된 것처럼 관객들의 선택권이 침해 받는 일이 잦아지는 거죠. 뭔가 천만 영화의 비밀에 조금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드시나요?
[마부작침] 급증하는 좌석 독과점
8. 천만 영화는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이 만든다?

우리는 또 지난 2005년부터 올해까지,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 영화들이 확보한 스크린 수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과거에는 흥행 영화가 차지했던 스크린수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연도별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분석해봤더니 2009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1,154개의 스크린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흥행영화라 할지라도 평균 541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흥행영화 중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영화의 비율이 증가합니다. 2012년에는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한 흥행영화의 60%(5편 중 3편)가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더니 2014년 63%(8편 중 5편), 2015년 92%(12편 중 11편), 2016년 90%(10편 중 9편), 그리고 올해는 500만 이상을 동원한 7편(택시운전사, 공조, 스파이더맨:홈 커밍, 군함도, 청년경찰, 더 킹, 미녀와 야수) 모두 1,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것이 흥행영화로 가기 위한 일종의 필수조건이 된 것입니다.
[마부작침] 흥행 영화와 스크린수
그렇다면 천만 영화들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총 19편의 영화가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2005년 이전의 전국 통계는 배급사의 협조가 있는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2004년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와, 2003년 개봉한 ‘실미도’는 제외하고 17편의 영화를 대상으로 분석해봤습니다. 이 중 1,000개 미만의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는 1/3 남짓한 6개에 불과합니다. 2013년 ‘7번 방의 선물’과 ‘변호인’ (두 편 다 ‘非대기업’ 배급사인 NEW에서 배급) 2 편만 빼면 2012년 이후에는 ‘천만 영화’는 10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500개 미만의 스크린으로 천만 영화에 등극한 영화는 2005년 개봉한 ‘왕의 남자’가 유일합니다.

9. ‘초반 싹쓸이’와 ‘치고 빠지기’가 대세?

우리는 이번에는 연도별 천만 영화 돌파에 걸린 시간의 추이도 분석해봤습니다. 2005년 ‘왕의 남자’는 66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후 2006~2014년까지 약 9년 동안에는 30일 대를 오르내리다가 2015년(‘베테랑’)에 천만 관객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30일 이내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부산행’)와 올해 (‘택시운전사’)는 19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천만 관객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설명 드렸습니다. 개봉 초기에 엄청난 수의 스크린 수를 동원하면서 ‘초반 싹쓸이’하는 전략 (전문용어로 ‘와이드 릴리즈’라고 부릅니다)을 쓰기 때문입니다.
[마부작침] 천만 영화의 비밀_점점 빨라지는 천만 영화 돌파
10. 뿐만 아니라 수직계열화한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투자, 제작하거나 배급한 영화는 자신들의 상영관에서 평균보다는 좀 더 틀어주는 ‘미풍양속’도 갖추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의 박스오피스 기준 상위 100위에 드는 영화를 모두 조사해봤더니, 해당 영화들의 전체 상영 횟수 중 42.7%는 CGV에서, 31.8%는 롯데시네마에서, 21.2%는 메가박스에서 같은 3대 멀티플렉스 체인에서 상영했습니다. 자체 배급한 이른바 ‘수직계열화’ 영화는 어떨까요? CGV는 같은 CJ계열사인 CJ E&M이 배급한 영화를 평균보다 0.3%p 높은 43.0%의 비율로 더 상영했고, 롯데시네마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를 38.4%(6.6%p 차이), 메가박스는 자체 배급한 영화를 26.5%(5.3%p 차이)의 비율로 상영했습니다. 다들 자체 배급 영화는 자신들의 상영관에서 좀 더 ‘배려’했다는 거죠.
[마부작침] 우리가 투자하고 배급한 영화는 더 많이 건다
11.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와이드릴리즈’와 ‘수직계열화’를 통해 우리는 좀 더 빈번하게 천만 영화를 만날 것입니다. 이런 천만 영화가 빈번해질수록 우리가 천만 영화가 아닌 영화를 보기는 더 힘들어지겠죠. 관객뿐 아닙니다. 영화관의 스크린은 한정되어 있고 이를 두고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기에, 피해를 보는 영화 제작자들도 늘어날 겁니다. (그렇게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에 유의미한 수의 독립 영화제작자는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적지 않은 영화들이 모두 비슷한 요소를 갖춘 ‘천만 영화’를 향해 질주한다면 관객의 피로도도 증가하겠죠. 비슷한 영화들이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그 영화의 빈자리를 어디서 본듯한 또 다른 영화가 차지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과연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3편에서 계속)      
 

▶ [마부작침] 천만 영화의 '불편한 진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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