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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에서 콘서트 떼창을 하면 안 되는 이유

[월드리포트] 일본에서 콘서트 떼창을 하면 안 되는 이유
지난해 도쿄 지국에 부임한 이후 주로 한일관계나 일본사회와 관련된 기사들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문화부에서 영화 및 콘텐츠를 2년 정도 담당한 적이 있어 일본 문화계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 다큐멘터리 감독도 만나고, 이런저런 문화 행사에도 참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문화예술계에서 일본의 위상이 상당히 높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콘서트와 전시가 일본에선 수시로 열립니다.

특히 일본 음악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세계적인 스타들이 앞다퉈 일본을 찾고 있습니다. 일본 라쿠텐증권의 '음악 산업' 보고서(2016년 12월 공개)에 따르면 일본의 음악 시장 규모는 지난 2015년 기준 6조 2천여억 원입니다. 국제음반산업협회 2017년판 보고서에선 미국에 이어 일본을 세계 2위 시장으로 꼽고 있습니다.(한국 8위) 그런데, 그 핵심은 바로 콘서트와 공연입니다. 아래 표를 살펴보면 음반과 영상(CD, 뮤직비디오 등) 매출은 크게 줄고 있지만, 콘서트와 공연 부분은 10년 사이 3배로 늘었습니다.
라쿠텐증권 '일본 음악산업 보고서'(2016년12월)
저도 지난 1월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미국 록밴드 '건 앤 로지즈'의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고교시절 굉장히 좋아했던 밴드였습니다. 공연장 주변에선 벌써 록의 상징인 가죽재킷을 입은 일본 팬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건 앤 로지스' 공연장 주변 일본 록 팬들
공연장에는 3만 명 이상의 팬이 모였고, 공연이 시작되면 광란의 현장이 될 것임은 분명해보였습니다.
사이타마 아레나 공연장 내부
늘 공연 시작이 늦다는 악명대로 건 앤 로지스는 예정보다 40분이나 늦은 7시 40분에 등장했습니다. 그 후 1시간 뒤인 8시 반에 찍은 사진이 아래입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이미 1시간이나 흘렀는데, 일본 록 팬들은 차분합니다.
차분한 일본 록 팬들-공연 시작 1시간 뒤
물론 열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시간째에 접어들면서 아래 사진의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손을 치켜올린 팬들이 다소 늘었죠. 그런데, 역시 떼창(관객들이 다 함께 공연가수의 노래를 큰 소리로 합창)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영어 가사를 따라 부르기엔 나이가 많은 올드팬들이었기 때문일까요?
공연 2시간쯤부터 열광한 일본 팬들
유튜브 등에서 다른 일본 콘서트 영상을 찾아봐도 역시 '떼창'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공연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큰 소리 합창 분위기는 아닙니다. 국내에선 "외국 밴드들이 한국 팬들의 떼창 문화를 잊지 못한다"는 기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그런데, 떼창이 없는 나라는 일본뿐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만큼 떼창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 일본의 유명 가수인 '야마시타 타츠로'가 라디오에서 한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야마시타 타츠로는 1970~80년대 큰 인기를 끈 일본의 대표 가수로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곡은 아직도 연말마다 일본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수십 년간 국내외에서 공연을 해온 야마시타에게 청취자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2015년 콘서트 중인 야마시타 타츠로
"저도 타츠로 씨의 공연에서 흥이 한창 오르면 저도 모르게 타츠로 상에 맞춰 합창을 하고 맙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당신 목소리 밖에 안 들려'라고 핀잔을 줍니다. 주변 분들에게 폐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러면 안 되는 걸까요?"

야마시타 타츠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안 됩니다. 가장 민폐가 되는 짓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노래를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요. 부인분이 상냥하네요. 제 주변에 그런 아저씨가 있으면 저는 안 된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일본 팬들보다 한국 팬들이 더 흥겨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일본 팬들이 다 얌전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야마시타의 발언은 꽤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도 공연 가수를 따라 부르는 것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팬들이 스스로 '민폐가 아닐까?'하고 조심하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차이를 우열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연 분위기는 일본보다 한국이 좋다. 외국 가수들도 한국을 더 좋아한다' 이런 식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한국 팬들 가운데서도 떼창을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진정 일본에 당당해지고 자신감을 가지려면 이제 한일 관계를 우열이 아닌 '차이'로 인식하고 서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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