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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헬기 사격 조사는 다 끝난 일"이라는 전두환 씨에게

[사실은] "헬기 사격 조사는 다 끝난 일"이라는 전두환 씨에게
지난 11일 공식 활동을 시작한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하는 두 가지 큰 대상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과 무장한 전투기가 광주로 출격 대기를 했다는 의혹입니다. 이 가운데 계엄군의 헬기 사격은 고 조비오 신부가 89년 방송에서 첫 증언을 한 뒤 5공 청문회에서 헬기 사격 목격담이 전국에 생중계 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고 피터슨 목사 등 헬기 사격 목격자 11명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광주 전일 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이 헬기 사격으로 인해 생긴 것이란 분석 보고서를 내면서 첫 '물증'도 등장했습니다.

●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한 전두환 씨

하지만 전두환 씨 등 신군부 관련자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난 20일 밤 집단 발포 등 비무장 시민에 대한 집단 발포 사실도 부인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부인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헬기 사격 목격자로 세상에 처음 등장한 고 조비오 신부와 피터슨 목사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모욕하면서 "헬기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는 반응까지 내놓았습니다. 이 말 때문에 사자명예훼손혐의로 고발당했고, 현재 광주지검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 과거 조사에서 5.18 헬기사격은 '근거 없다'고 끝난 일?

94~95년 12.12와 5.18 사건에 관한 첫 검찰 수사 때 헬기 사격 문제가 조사되긴 했습니다. 고 조비오 신부 등 11명의 목격자가 수사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별 성과는 없었습니다. 이유를 살펴보니 검찰이 헬기 사격 문제를 그리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연구해 온 김희송 전남대 5.18 연구소 교수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검찰이 수사했고, 그래서 헬기 사격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과 쏘지 않았다는 헬기부대 지휘관 진술만 받은 채 끝났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당시 검찰은 헬기 사격 목격자들이 말하는 상황에 관해 광주 현지 병원을 찾아가 조사하는 노력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검찰 수사기록을 살펴보니 조금이라도 헬기 사격이 아니란 단서가 나오면 적극 채택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주에서 총포상을 운영하고 있는 홍란 씨입니다. 홍 씨는 5.18 당시 8살 아들을 찾으러 집 밖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헬기가 하늘에 떠 있고 거기서 헬기 사격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헬기 사격으로 땅이 푹푹 파지는 걸 봤고, 놀란 홍 씨는 근처 친정집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친정집 근처에도 계엄군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친정집 마당으로 쓰러졌습니다. 계엄군이 뒤따라와 쓰러진 채 피 흘리는 홍 씨의 다리를 잡고 끌고 나가려 했는데, 주변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아이 엄마라고 사정했습니다. 8살 아들은 울면서 계엄군의 다리를 붙잡고 "엄마를 살려달라"고 해 홍 씨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홍 씨는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 담았는데, 검찰은 홍 씨가 헬기 사격 피해자가 아니란 이유로 홍 씨 진술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귀담아듣지만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 조비오 신부가 속한 광주대교구 천주교정의구현 사제 단에서 헬기사격 목격자들의 진술을 취합해서 검찰에 제출했는데 이때 홍 씨를 헬기 사격 피해자로 분류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검찰은 홍 씨가 진술서에서 지상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았다고 진술했다며 고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증언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는 데 활용했습니다. 홍 씨는 일관되게 헬기 사격은 목격했지만, 자신은 지상에서 쏜 총에 맞았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SBS 취재팀이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취재하면서 당시 검찰 수사팀 중 한 명의 판단을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헬기에서 사격은 한 것 같다. 그런데 헬기에 탄 군인이 소총으로 쏜 것인지, 기관총으로 쏜 건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검찰이 직접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쏘는 걸 실험해 보자고 제안도 했다지만, 실제 실험이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2007년,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5.18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보면 헬기 사격 부분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제가 당시 군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 취재를 해 보니 그때는 헬기 사격이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집단 발포나 민간인 학살, 지휘권 이원화 문제를 조사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80년 헬기 사격 문제는 과거에 제대로 조사되지 않거나 아예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 5.18 헬기 사격, 새로 드러난 사실은?

지난 4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석한 전일 빌딩 헬기 사격 탄흔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보여주는 첫 물증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은 5.18 당시 투입된 기동헬기 UH-1H에 거치된 기관총 M60으로 사격을 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전일 빌딩에서 발견된 탄흔 크기가 7.62mm와 5.56mm가 섞여 있었는데 M60이 7.62mm를 사용하고 있고, 탄흔의 모양이 한 점에서 방사형으로 발사할 때 생긴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소총으로 쐈다고 가정하면 여러 명이 헬기에 매달린 채 당시 계엄군이 사용한 M16 탄창을 공중에서 여러 차례 바꿔가면서 그것도 한 지점에 같이 모여 사격을 해야 나타날 수 있는 모양인데 현실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국과수 분석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헬기부대 지휘관의 검찰조사 내용과 군 기록을 보면 모두 기동헬기 UH-1H는 수송 목적이었기 때문에 무장한 채 작전을 하지 않았다고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BS 기획취재부는 한 달 가까이 5.18 당시 헬기 작전에 투입된 조종사와 지휘관들을 추적 취재했습니다. 그 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면서 37년 만에 헬기조종사들과 지휘관들의 새로운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광주민주화 운동 헬기 사격 진상 조사
우선 기동헬기 UH-1H를 5.18 당시 직접 몰았던 복수의 헬기 조종사들로부터 M60 기관총으로 무장을 한 채 작전에 투입됐고, 실탄도 장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동헬기는 무장하지 않았다는 신군부 측 논리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것도 그런 증언이 '헬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나온 겁니다. 헬기부대 지휘관도 무장 사실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다만, 조종사나 지휘관 모두 자신들은 헬기 사격을 한 적이 없다며 헬기 사격을 부인하긴 했습니다.

다른 의미 있는 증언은 전일 빌딩 헬기 사격이 있었던 날로 추정하고 있는 80년 5월 27일 작전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기동헬기를 총괄했던 백성묵 대대장을 접촉할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그날 받은 작전 지침을 들었습니다. 백 대대장은 "27일 새벽 진압 작전에 저공비행으로 날면서 무력시위를 하라"가 기동 헬기 부대가 받은 작전이라고 했습니다. 헬기 소리만으로도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런 정도의 말이라도 헬기 부대 지휘관 입에서 나온 것이 37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미 기동헬기가 21일에 광주에 도착했을 때부터 저공 비행 중 시민군이 쏜 총에 헬기가 맞았던 경험이 있고, 기동헬기도 무장을 했다는 조종사들의 증언이 있는데 과연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27일 마지막 진압 작전 때 저공 비행만 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이런 증언이 중요한 이유는 27일 전일 빌딩 헬기 사격을 설명할 수 있는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무너진 신군부의 '무장헬기 알리바이'

당시 헬기 조종사 취재를 통해 밝혀낸 새로운 사실 가운데는 헬기 사격을 부인해 온 신군부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린 증언도 있습니다. 전두환 씨 등 신군부 관련자들은 지금까지 80년 광주에 무장헬기가 투입된 것은 5월 22일이며 그래서 헬기 사격 목격자가 가장 많은 80년 5월 21일 헬기 사격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SBS가 만난 공격용 헬기 조종사는 이미 22일 전부터 무장을 한 채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5월 21일 공격용 헬기 500MD 5대가 광주에 투입된 기록도 찾아냈고, 그 기록에 적힌 '가스살포기'가 사실은 헬기에 부착하지 않은 것이라는 조종사의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참고로 이 기록을 제시했을 때 헬기부대 지휘관들은 기관총을 떼고 가스살포기를 달고 비행했으니 무장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 왔습니다.

SBS가 연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어떤 분들은 80년 광주의 헬기 사격 문제는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냐며 왜 지금 그걸 다시 조사하는지 궁금하다는 반응도 보였습니다. 안타깝게 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헬기 사격 진실'의 측면에선 지금까지 그리 진전되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헬기 사격을 했다"고 시인하는 헬기 조종사나 헬기에 탄 사병, 또는 지휘관의 증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건리 위원장은 지난 13일 광주 전일 빌딩을 방문한 자리에서 "진실에 침묵한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선의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당 방위에 의한 자위권 발동' 이란 궤변으로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집단 발포에 대한 변명을 해 온 전두환 씨 등 신군부 관련자들이 과연 '선의'로 사실을 털어놓을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인명 살상용 헬기를 통해, 시위대들은 위협을 줄 수도 없는 헬기를 통해 사격을 했다는 건 '자위권 발동' 논리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반인륜적 범죄 사실이 명확해진다는 점에서 누군가의 양심만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5.18 특별조사위원회의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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