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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매물' 됐다 돌아온 11번가… 유통가 미래 전쟁의 서막

최우철 기자 justrue1@sbs.co.kr

작성 2017.09.13 10:03 수정 2017.09.13 17:06 조회 재생수1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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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매물 됐다 돌아온 11번가… 유통가 미래 전쟁의 서막
"SK그룹이 SK플래닛에서 '11번가'를 분사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신세계와 롯데에 제안했다." 지난 6월 21일 한 경제신문은 1면 우측에 이런 기사를 실었다. 신세계는 '노코멘트', 롯데는 '금시초문'. 수화기 너머, 제안을 받았다는 두 회사 측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기자가 전화 릴레이를 멈춘 건, SK플래닛 측이 사실상 제안 사실을 인정한 뒤였다. "국내 유통업체들과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고, 실제 미팅도 있었다. 하지만 합작회사는 너무 이른 이야기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이때부터 업계 매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매각은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SK텔레콤이 나섰다. '11번가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힌 것이다. 매각설 공식 부인이다.

잘 나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11번가는 왜 이런 취급을 받게 됐을까. 증권가에서 보는 답은 단 하나, 영업 손실 부담이다. 모바일 쇼핑 등 'E-커머스' 분야가 높은 성장세인 건 맞으나, 수익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11번가 지분 98.5%를 가진 SK플래닛은 지난해 3,652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는데, 업계에선 이 가운데 약 2천억 원은 11번가 탓에 생겨난 손실로 본다.

유진투자증권 주영훈 연구원은 이런 손실 부담이 업계 전반의 고민이라고 진단한다. 지난해 3대 소셜커머스 업체로 손꼽히는 쿠팡(약 5천652억 원 영업 손실), 위메프(-636억), 티몬(-1,551억) 모두 적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영업이익 670억 원을 기록한 G마켓, 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만이 예외일 뿐이다.
쇼핑몰그렇다고 우려가 사업 포기로 귀결하진 않는다는 게, 유통업계의 도도한 기류다. 통계청이 지난 4일 발표한 온라인쇼핑동향을 보면, 쇼핑에서 모바일 분야는 대세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다. 7월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4조 683억 원을 넘겨, 전년 동월 대비 35% 넘게 팽창했다. 4조를 넘은 건 사상 처음. 2015년 7월과 비교하면, 2년 새 2배 성장이다. '모바일에서 앞서지 못하면 도태'라는 인식을 확고히 할 만한 증가세다.

유통업계는 각자 이 문제를 놓고 묘안을 찾고 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도 지난 7월 일본 투자설명회에서 전례 없이 '온라인 매출 증대'와 'AI 프로젝트 강화'를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실행을 맡은 롯데닷컴은 애플리케이션에 빅데이터를 응용한 추천 알고리즘 서비스를 내놨다.

남성 상의나 여성 바지 따위로 분류를 정한 뒤, 자신이 원하는 의류의 사진을 찍어 앱에 제출하는 식이다. 내가 주로 산 옷 무늬나, 친구의 가방 스타일을 이미지로 전송하면, 유사한 스타일의 상품을 추천해 주는 식이다. SKT는 11번가 매각 방침을 철회하며 이렇게 밝혔다. "AI 기술과 빅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변화 속에서 11번가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

AI 기술과 빅데이터. 지금의 'E-커머스'는 함수의 X, Y축에 들어갈 값의 이름만은 알고 있다. 이제 '누가 얼마나 풍부하고 편리하게 접목해 낼 것인가'란 과제만이 남았다. 전문가들은 AI에 정보 값이 적은 데이터를 아무리 준다 한들, 결과물의 정보 값 역시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력이 부실한 밭을 아무리 좋은 기계로 갈아봤자, 농사가 저절로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매물됐다 돌아온 11번가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내놓을까. 많은 유통업체들이 내 일처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