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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상조의 사과가 보여주는 것

[취재파일] 김상조의 사과가 보여주는 것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반. 공정거래위원회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한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 주의 중요한 일정이나 이슈를 체크하는 정도. 대변인은 “김상조 위원장이 오후에 예정된 시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이재웅 다음 창업자의 비판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안내했다.

-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 대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한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나?
“발언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해석하는 건 적절치 않다”
- 인터뷰 당시 대변인이 배석하지 않았나?
“제 개인적으로는 네이버를 통해 발생하고 있는 많은 경쟁법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직접 말씀하지 않는 이상 제 해석은 큰 의미가 없다.”

대변인의 개인적인 해석이 옳다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논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많은 ICT 업계 종사자들이 분노한 것처럼,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이재웅 다음 창업자의 페이스북 글)’의 자질이나 경영능력을 완장찬 듯 품평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을 닮아가는 문어발식 확장, 사이버 골목상권의 침해 등 네이버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한 비판은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지적이다.

‘미래’와 ‘비전’이라는 개념어가 논란을 가중한 측면은 있다. 더구나 항상 논란을 달고 다니는 스티브 잡스와의 비교였으니.

그러나 ‘미래’와 ‘비전’이 꼭 기술혁신과 경영능력과만 연관돼야 하나? 상생협력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IT 생태계라는 또 다른 차원의 ‘미래 비전’도 있다. 그런 ‘미래 비전’을 언급한 것이라면 공정위 수장의 오지랖은 아니지 않은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오후 3시. 김상조 위원장이 예정된 경제민주화단체와의 간담회 장소에 나타났다.

“저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질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재웅 창업자께서 정확하고도, 그리고 용기 있는 비판을 해주셨는데 감사드리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께서 매서운 질책의 말씀을 주셨는데, 겸허하게 수용하고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귀한 조언의 말씀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공직자로서 더욱 자중하고, 그리고 시장의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경제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본연의 직무에 더욱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서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나 우리나라의 ICT산업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심사숙고하면서 생산적인 어떤 결론을 내리는 그런 기회로 승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준비된 발언이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간담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발언의 맥락이 여전히 궁금했다. 조심스러운 대변인의 해석이, 나의 이해가 맞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간담회는 예정된 1시간 반을 1시간 이상 넘겨 끝났다. 기자들이 몰리자, 김 위원장이 간담회장 앞 복도에 다시 섰다.

- 논란의 계기가 된 발언의 맥락은?
“오늘은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는 게 적절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만약에 제가 또 설익은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게 되면 그게 또 논란을 확산시키게 되고, 우리가 좀 더 심사숙고하는 과정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 ICT 산업의 미래에 대해 숙고할 때가 됐다는 게 정책의 변화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인가?
“생산적인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정부도 합리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또 업계쪽에서도 노력을 해주시는 부분이 같이 있어야지 그런 미래를 향한 노력에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어쨋든 위원장으로서의 저의 발언이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이 현실이고, 그런 것이 제 의도와는 무관하게 저희 위원회 업무수행에 장애가 된다면 당연히 제가 그런 질책을 수용하고 앞으로 공직자답게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해진 전 의장에 대한 평가를 번복하시는 건가?
“그것도 다음 기회에 말씀드릴게요.”

개인적으로는 현 정부 정책 수행에 본인이 장애가 되면 안 된다는 의지와 그렇다고 소신을 꺾을 수 없다는 자존심을 함께 읽었다. 공격의 주된 타깃이자, 지지의 가늠자. 그렇게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다는 걸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언어를 통해 실재하지 않는 어떤 개념을 함께 떠올리는 능력은 공동체의 협력과 효율성을 높인다. 하지만 어떤 언어, 어떤 표현이 모두에게 완벽하게 똑같은 경험과 이미지를 불러올 수는 없다. 그 차이를 메우는 게 맥락에 대한 이해이고, 그 맥락을 이해하는데 기본은 화자의 선의를 믿어주는 것이다. ‘미래 비전’에 대한 아쉬움을 통해 그가 말하려 했던 게 온전히 표현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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