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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욕하고 때리는 것만 갑질?"…나도 모르는 새 '일상 갑질' 벌어진다?

[리포트+] "욕하고 때리는 것만 갑질?"…나도 모르는 새 '일상 갑질' 벌어진다?
*그래픽 공익광고
다음 두 의복 중에서 갑(甲)옷을 고르시오
군관의 갑옷 vs 왕의 의복(o)
아이들은 절대 못 맞추는 문제
갑과 을의 세상, 우리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지난 2015년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나온 공익광고입니다. 광고에는 '아이들은 절대 못 맞추는 문제'라며 갑(甲)옷을 고르라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정답은 군관의 갑옷이 아닌 왕의 의복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약자인 '을(乙)'에게 횡포를 부리는 '갑질 문화'를 꼬집는 광고인 겁니다.

■ 회장님의 욕설과 사장님의 폭행…갑질, 정말 그들만의 리그일까?

갑질은 이미 우리 사회의 문제로 대두한 지 오래입니다. 운전 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기업 회장, 공관병에게 골프공을 줍게 하고 빨래를 시킨 육군 장성, 가맹점에 불공정 행위를 강요하는 프랜차이즈 업체 등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갑질에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갑질은 이처럼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욕설과 폭행 등 갑질을 일삼은 주체가 유명 기업의 회장님, 사장님인 것으로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갑질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장인 갑질행태
지난 2015년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604명을 상대로 한 '직장인 갑질 행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8.6%는 직장생활을 하며 갑질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본인이 갑질을 해봤느냐'는 질문에도 33.3%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질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 '갑질 언어' 오가는 회사…참다못해 이직까지

지난 6일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지부는 과장급 이상 80명을 상대로 한 관리자 평가와 갑질 사례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노조에 따르면 공정위의 한 국장은 거의 매주 직원들에게 젊은 여성 사무관들과 술자리를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사무실 냉장고에 '쭈쭈바'(아이스크림)를 사놓지 않으면 조사관에게 짜증을 내고, 퇴근 버스 예약에 여행 시 가족과 머물 숙소 예약 등 개인적인 업무를 직원들에게 시켰다는 과장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직원들에게 야근 강요, 휴가 제한 등 다양한 갑질 사례들이 공개됐습니다.

한 30대 직장인 신 모 씨는 S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직장 내 갑질을 견디다 못해 이직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신 씨는 입사 초기부터 "일을 이따위로 하는데 학교는 어떻게 졸업했느냐?", "XX야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등 상사의 인신공격에 시달려 왔습니다.

[30대 직장인 신 모 씨]
"일이 있어 회식에 빠지려고 하면 '일도 못 하는 XX가 몸으로 때울 생각도 안 한다'며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2년 정도는 참았는데 하루는 업무 시간에 불러서 오늘까지 자기 아들 자기소개서를 대신 쓰라고 시키더라고요.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이직을 준비했습니다."
■ "'을' 직업이 따로 있나요?"…나도 모르게 나오는 '일상 갑질'

특정 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갑질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2015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감정노동 강도 센 직업'에 따르면 1위는 홈쇼핑, 카드회사, 통신사 등에서 전화 상담을 하는 텔레마케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호텔관리자와 네일아티스트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감정노동 강도 센 직업
실제로 지난해 보험사 전화 상담직원에게 무려 150번 넘게 폭언을 일삼은 50대 남성 박 모 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화 상담원 13명이 박 씨에게 폭언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래픽
[50대 남성 박 모 씨]
"말을 싸가지 없이 왜 그딴 식으로 하냐고. XXX이 어디서 건방지게 직장생활을 그딴 식으로 해. 29살 먹은 노처녀가 나한테 그렇게 욕먹고서도 정신 못 차리고."
[피해 상담원]
"그런 말을 들으면 모멸감이 들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회의감도 들고 그렇죠."
경비노동자, 아르바이트생 등도 일상 갑질의 피해 대상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지난 7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기 요금을 줄이기 위해 비닐봉지로 경비실 에어컨을 밀봉한 아파트 일부 주민의 갑질이 누리꾼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춘천의 한 커피숍에서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뜨거운 커피가 든 잔을 던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 갑질이 낳은 또 다른 갑질…이대로 괜찮나?

최근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이 갑질과 정신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갑을관계, 일상에서의 상처와 트라우마' 보고서에 따르면 갑질과 관련해 사람들은 분노, 억울, 화, 우울감, 무기력 등의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업무 현장에서 상습적 갑질에 노출된 경우 의욕 상실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갑질이 낳은 또 다른 갑질…이대로 괜찮나?
한 전문가는 "갑질은 사회 전체에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며 "직장에서 상사에게 폭언을 당한 직원이 회사 밖에서는 악성 소비자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을이 되는 타인의 갑질에는 분노하지만 일상에서 갑질 문화에 수긍하는 분위기도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갑질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갑질 문화, 전문가들은 "갑질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업, 직위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하게 보지 말고 위계질서에서 자신을 떨어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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