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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반달곰을 또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취재파일] 반달곰을 또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 지리산으로 돌아온 반달곰…이번엔 정착할 수 있을까

친구와 가족이 사는 지리산을 떠나 홀로 김천 수도산으로 올라간 반달가슴곰 KM53이 다시 지리산 숲에 방사됐다. 반달곰은 이미 두 차례 경남 함양과 거창을 거쳐 90km를 걸어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찾아갔다.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한 것이다. 그런데 정착할 만하면 환경부가 포획 틀로 잡아들여 강제로 지리산으로 보냈다. 살 곳을 정하는 건 오롯이 반달곰의 자유인데 환경부는 반달곰의 진심을 알아보겠다며 또다시 시험을 하고 있다. 반달곰 KM53은 과연 90km를 걸어 다시 수도산으로 갈 것인가? 환경부에게 반달곰을 시험할 권리가 있는가?
[취재파일] 반달곰을 또 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환경부는 지난 7월 25일 김천 수도산에서 반달곰을 붙잡아 지리산 자연적응 장에 가둔 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두 달간 고민을 했다.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도 들어 내린 결론은 자연으로 들려 보내는데 수도산이 아닌 지리산을 선택했다. 수도산이냐 지리산이냐를 놓고 찬반 의견이 반반이어서 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지리산을 선택한 이유는 곰과 등산객의 안전이었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반달곰을 지리산에 방사한 지 올해로 13년째다. 확인된 개체 수만 47마리다. 인간의 간섭이 없는 지리산 숲에서 짝짓기를 해 새끼를 낳고, 바위굴이나 속이 빈 고목 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며 살고 있다.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해발 1천m를 경계로 능선과 계곡을 누비고 있다. 지리산은 반달곰의 집이다. 반달곰이 안전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지자체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올무와 덫을 제거해 위험요인을 없애고 있다.

또 반달곰이 사는 곳이라는 안내문을 산 곳곳에 설치했다. 등산객들이 탐방로를 벗어나지 말라는 당부도 늘 잊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지리산에 가는 등산객들도 반달곰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갖고 조심을 한다는 게 환경부 생각이다. 반면 수도산의 경우 아직 준비가 안 돼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취재파일] 반달곰을 또 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그런데 13년째 반달곰 방사와 모니터링을 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1년 내내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곰의 흔적을 찾고, 포획틀로 곰을 생포해 유전자 확인과 발신기 교체작업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들만큼 실무경험을 쌓은 사람들은 없다. 최고의 반달곰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트랩에 붙잡힌 경우와 동면굴속 새끼 말고 지리산 숲속에서 반달곰을 직접 마주친 경우는 손에 꼽는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과 맞닥뜨릴 확률은 낮다는 얘기다. 동물 본능 상 인기척을 느끼면 미리 피하는 건 기본 습성이다. 실제 곰과 마주쳤던 한 연구원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곰이 아무런 반응 없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반달곰은 맹수처럼 공격성이 높은 건 분명 아니다. KM53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14일 수도산에서 등산길 정비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에게 처음 발견됐을 때도 반달곰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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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으로 강제 송환 뒤 7월 6일 야생으로 돌아가 다시 수도산으로 올라간 뒤 등산객 눈에 발견될 당시에도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산속에는 반달곰 말고도 삵이나 담비 같은 육식형 사나운 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점 에서 반달곰의 해코지를 우려해 수도산에 터를 잡은 반달곰을 지리산에 살라고 하는 것은 논리가 약하다. 물론 곰의 안전을 위해 수도산 지역의 올무나 덫 같은 밀렵 도구의 확인과 제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취재파일] 반달곰을 또 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종복원기술원 반달곰 연구팀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KM53을 수도산으로 돌려보내자고 주장했다. KM53은 2015년 10월 지리산에 방사된 뒤 발신기 고장 등으로 소식이 끊긴 게 지난해 9월이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지난 6월에 수도산에서 발견됐는데, 과연 언제 수도산으로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연구원들은 지난해 가을쯤 수도산으로 갔다면 겨울잠을 자며 최소 8개월가량 살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면장소까지 찾아 겨울을 보냈다면 이미 반달곰 KM53은 수도산을 보금자리로 삼아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반달곰이 이번에도 다시 지리산을 벗어나 수도산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개체의 행동을 봐도 한번 찾아간 곳을 다시 가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먹이도 풍부하고 다른 개체들과 경쟁을 피할 수 있어서 지리산을 벗어났다면 말이다.
[취재파일] 반달곰을 또 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반달곰 KM53은 두 차례나 지리산을 떠나 김천 수도산으로 올라갔는데, 90km의 이동거리가 짧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도로를 건너야하는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밀렵도구에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위험한 여정을 뻔히 알고도 반달곰에 다시 겪으라고 시험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취재파일] 반달곰을 또 다시 시험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반달곰 KM53은 지난5일 밤 지리산 자연적응 장에서 포획돼 꽤 떨어진 숲에 방사됐다. 종복원기술원은 관찰팀을 만들어 24시간 모니터를 하고 있다. 2명씩 4명이 밤낮 교대로 행방을 쫓아 이동경로를 추적하게 된다. 반달곰 귀에 부착한 발신기 신호를 안테나로 잡아 따라가는 방식이다. 그것도 힘든 여정이다.

반달곰이 연구팀의 예상과 달리 지리산에 살 수도 있다. 만일 수도산 새집으로 다시 찾아간다면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무사히 올라갔으면 좋겠다. 반달곰의 안녕을 빌면서 잘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내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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