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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서면 사라지는 시간들…잊어버리며 산다는 것

[SBS 스페셜] 오늘을 잊지 마 - 사라진 25살의 기억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의 삶은 어떨까.

3일 밤 방송된 'SBS스페셜' 486회에서는 25세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두 사람, 김소리 씨와 김주연 씨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소리 씨

25세의 소리 씨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밥은 먹었는지,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다. 마치 치매환자처럼 말이다. 소리 씨는 불과 8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 그녀는 갑자기 시작된 헛소리와 고열, 호흡곤란 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3개월 만에 의식을 찾았다. 하지만 소리 씨의 기억은 모두 지워진 상태였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물론, 사물이나 도형 같은 기초적인 지식들마저 거의 사라져버렸다.

소리 씨가 앓고 있는 병명은 ‘항NMDA수용체 뇌염’으로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다. 담당의사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은 뇌 어딘 가에 저장이 되어 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는 없다. 발병부터 치료가 될 때까지 그 완치기간에 일어나는 새로운 기억의 형성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소리 씨의 어머니 이미영 씨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가족 외에 많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거기서 아이가 기억이 없는 걸 인지했고, 너무 충격이었다”며 갑자기 기억장애를 얻게 된 딸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

소리 씨의 기억은 3살 수준에 머물러있다. 살면서 배우고 익혀온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몸 안에 항체가 남아있다보니, 여전히 기억의 고리가 상당부분 끊어져있다. 말썽한번 피운 적 없는 든든한 맏딸이, 이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 다시 소리 씨를 찾아간 제작진은 다행스럽게 희망을 봤다. 소리 씨가 갑자기 대학 때 전공서적을 읽으며 통계학 단어를 말하는 것을 포착한 것. 얼마 전까지 ‘열기구’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그녀가 책 속 그래프나 단어들을 올바르게 읽고 있었다. 엄마는 이런 딸을 보며 “어제까지만 해도 아기들하고 스티커 놀이를 했는데, 갑자기 오늘 통계공부를 하네”라며 기뻐했다.

소리 씨는 자신이 다녔던 학교, 친했던 친구 이름까지 기억해냈다. 8개월만에 켠 컴퓨터 속 자신이 작성한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도 찾았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상태가 확실히 호전되고 있었다. 엄마는 희망을 봤다.

의사는 소리 씨가 앓는 병의 완치율은 30% 정도라고 했다. 의사는 “완치 후에는 완전 정상이다. 공부했던 거나 직장에 다녔던 기억이 남아있어서, 완쾌되면 복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워진, 발병기간 동안의 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나중에 치료가 끝나면 제 얼굴도 기억 못 할 거다”라고 말했다.

▶한국판 메멘토, 5분 만에 기억이 지워지는 주연 씨

또 다른 25세, 김주연 씨도 기억에 문제가 있다. 길을 나선지 5분만에 길을 잃고, 방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5분마다 기억이 지워지는, 단기 기억상실을 앓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소식이 몇 달 동안 뉴스에 나오고 있을 무렵, 주연 씨은 TV를 틀 때마다 “너무 불쌍해. 어떻게 저렇게 된거야?”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기억이 짧다보니 거듭되는 질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잦은 두통과 건망증을 호소했다는 주연 씨는 19살때 뇌종양을 발견했다. 악성은 아니었지만 종양이 자라고 있는 부위가 문제였다. 시상하부라는 부위에 뇌종양이 있었는데, 그걸 다 절제하면 생존할 수 없어 수술은 못하고 화학요법으로 치료했다. 그런 와중에 종양 내부에서 출혈이 발생하는 바람에 기억과 관련된 조직들이 손상됐다.

그래서 주연 씨의 기억은 19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세 이전에 배운 지식은 곧잘 기억하는데, 그 이후, 즉 지금 일어나는 순간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담당의는 “사고순간, 또는 수술 받았던 그 시점에서부터 가까운 기억들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굉장히 먼 기억은 남아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30분 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나 이런 것은 기억하기 매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기억의 연속인데, 그 순간을 담지 못하는 주연이의 생활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작업치료사를 꿈꿨지만 이를 포기해야 했다. 엄마가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다.

주연 씨의 어머니 정미자 씨는 “내려놓고 살자,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면서 살자 하는데도, 내가 먼저 가면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이 아이가 살아갈 방법이 무엇일까. 그래서 제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는데, 실상은 달라진 것은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주연 씨는 기억을 못한다는 답답함보다, 이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이날 ‘SBS스페셜’이 소개한 두 사람은 모두 기억 상실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고 가족은 마음 아파하며 이들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치료를 위해 계속 힘쓰는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온전히 지금을 ‘기억’을 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SBS funE 강선애 기자)    

▶ 5분마다 지워지는 기억…19살 전과 후로 나눠진 삶
▶ 매일 낯선 풍경 앞에 설 딸을 위해…'오늘을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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