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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5년 농성 끝내는 장애인들…'부양의무제 폐지'가 뭐기에?

[리포트+] 5년 농성 끝내는 장애인들…'부양의무제 폐지'가 뭐기에?
지난 5년간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넘는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그들이 다음 달 5일, 5년간의 지하도 농성을 끝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를 한결같이 요구해왔습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관계자들은 지난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남을 갖고 농성 종료를 공식화했습니다. 박 장관은 농성장에서 '송파 세 모녀'를 비롯해 복지 사각지대에서 숨진 희생자와 활동가 18명의 영정에 헌화하고 묵념한 뒤, 공동행동 관계자들과 면담을 했습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공동행동 측이 5년간 농성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농성 도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사연을 살펴봤습니다.

■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역 지킨 장애인들

170여 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행동은 지난 2012년 8월 21일 광화문역 지하도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18대 대선 예비후보들로부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침이었지만, 대통령이 두 번 바뀔 때까지 농성은 계속됐고 지난 21일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농성장 장애인들은 멸시와 추위를 견디며 고스란히 5년을 버텨냈습니다.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광화문역 지킨 장애인들
이들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에게 폐지 촉구 서명을 요청받은 시민 가운데에는 이들에게 화를 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매월 강제퇴거명령서까지 날아왔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에도 농성자들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 장애인 등급제 폐지…불길 피하지 못한 송국현 씨

공동행동 측이 5년간 목소리 높여 3대 적폐 폐지를 촉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애인 등급제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인을 1∼6급으로 나눠 이에 따라 의료·복지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필요가 아닌 의학적 기준으로 등급을 적용하는 현행 제도는 오히려 장애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게 공동행동 측의 지적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데도 장애등급이 기준에 미달해 불편을 겪는 일이 속출한다는 겁니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불길 피하지 못한 송국현 씨
지난 2014년 4월 화재로 사망한 송국현 씨 사건은 장애인 등급제의 허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송 씨는 보행과 거동이 불편한데도 3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가사, 외출, 이동 등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활동보조인은 장애등급 1, 2급까지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송 씨는 국민연금공단에 등급 재판정을 신청했지만 다시 3급 판정이 났습니다. 결국 활동보조인 없이 생활하던 송 씨는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집에서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송 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흘 만에 숨졌습니다.

■ 부양의무제 폐지…자살을 택한 장애인들과 송파 세 모녀

부양의무제란 부모나 자식 등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는 부모-자녀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입니다. 이 제도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수급을 받으려면 아무리 가난해도 부양의무자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합니다.
부양의무제 폐지…자살을 택한 장애인들과 송파 세 모녀
부양의무제 문제는 지난 2014년 2월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크게 논란이 됐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가 경제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0대 두 딸과 어머니가 부양의무자로 얽혀 있어 발생한 비극이었습니다.

장애인 가족의 죽음도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지난 2015년 1월 대구에서는 발달장애인 언니를 둔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같은 해 2월 40대 발달장애인 아들이 70대 아버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장애인인 가족 구성원을 부양하는 데에서 오는 부담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12년간 531명 사망한 부산 형제복지원

공동행동 측은 장애인 수용 시설 폐지도 계속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장애인을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 수용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게 공동행동 측의 입장입니다.

또 1975년부터 12년간 장애인, 무연고자 등을 대규모 시설에 불법감금하고 성폭행, 강제노역 등이 자행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최근 2년 8개월 동안 129명의 장애인과 노숙인이 사망한 '대구 희망원 사건' 등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 사태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12년간 531명 사망한 부산 형제복지원
공동행동 측은 수용 시설 대신 장애인들이 삶의 결정권을 갖고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활동 보조 서비스 및 평생 교육 확충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동행동이 5년간의 농성을 마무리하는 다음 달 5일은 장애인 인권단체인 '전국 장애인 차별철폐연대'가 설립된 지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단계적 폐지를 약속하면서 농성을 해제하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이제 막 뗀 것으로 아직 가야 할 길은 멉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농성을 중단한다고 하니까 일각에서는 우리가 복지부와 모든 ‘합의'를 마치고 싸움을 ‘끝'내는 줄 알 까봐 우려스럽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한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농성이 아닌 다른 형태로 더욱 치열하게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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