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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타이완서 '진상' 낙인…"해외 나가본 적도 없어"

[취재파일] 타이완서 '진상' 낙인…"해외 나가본 적도 없어"
● SNS에 얼굴 사진 유포…나라망신 '진상녀' 취급

직장인 이모 씨는 얼마전 친동생으로부터 다급한 문자메시지 하나를 받습니다. "누나의 얼굴 사진이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다"는 것.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충격적이라기보단 이해할 수 없기도 했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 자신의 얼굴이 나라망신 시킨 '진상녀'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타이완 방송국 세 곳에서 이 씨의 얼굴 사진을 공개한 겁니다. 곧 이 씨의 다른 친구들도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 호텔 떠돌며 무전취식…"이 여성을 조심하라"

지난달 27일, 타이완의 한 공영방송국에선 '무전취식 한국 여성'이란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타이완에 유학온 한국 여성이 타이완 내 호텔을 돌며, 한 달째 무전취식했다는 겁니다. 피해 금액은 확인된 것만 250만 원. 이 방송국에선 호텔 CCTV 영상까지 공개하며 "이 여성을 조심하라"고 알렸습니다.

해당 여성의 얼굴도 공개해버렸습니다. 대만의 한 국립대학에 유학 온, 중국어가 유창한 43살 여성이라는 소개도 덧붙였습니다. 피해 호텔 관계자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곧이어 타이완 소재 다른 방송국 두 곳에서도 같은 내용의 보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타이완 방송국에서 공개한 얼굴 사진의 주인공은 직장인 이 씨였습니다.

● 나이는 20대, 여권은 백지

이 씨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는 일이 바빠서 타이완은커녕 단 한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직접 확인한 이 씨의 여권은 백지였습니다. 출국기록이 없다는 것이죠. 나이도 다릅니다.

타이완 방송국에서는 40대 여성이라고 보도한 이 씨의 나이는 28살. 방송국에서 공개한 사진은 이 씨의 개인 SNS 사진을 무단으로 퍼나른 것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가 가장 먼저 궁금했지만, 그보다 잘못된 보도 내용을 정정하고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진 사진을 삭제하는게 우선이었습니다. 이 씨는 외교부의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 방송국과 직접 접촉…변호사 선임해야

외교부 담당자는 친절하게도 이 씨에게 두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합니다. 첫번째로는 문제의 타이완 방송국에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 등을 보내 직접 정정보도를 요청할 것. 여의치 않으면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전'을 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국어와 영어에 익숙치 않은 이 씨는 지인 등을 통해 해당 방송국에 어렵게 이메일과 SNS 쪽지를 보냈지만, 답변은 없었습니다. 전화를 해보려해도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만한,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친구를 찾기 힘들었기 떄문입니다.

취재진이 타이완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문제의 보도를 찾아낸 뒤,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 연결을 시도해 담당자와 통화하기까진 8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물론, 중국어에 능통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사이에도 이 씨의 얼굴 사진은 "근 한달동안 대만에서 열일한 한국 남녀"라는 제목으로 SNS를 통해 유포됐습니다. 자국민의 황당한 피해를 막으려는 외교부의 노력이 아쉬웠습니다. 외교부에서 해당 방송국에 '공문' 한 통만 보냈다면 더 빨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까요?

● "담당 기자는 휴가 중"

취재가 시작되자 외교부에서는 이 씨에게 제시한 두가지 방법은 "메뉴얼 대로 한 것"이라면서 이제라도 직접 타이완 방송국과 접촉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해당 기자가 휴가 중"이라던 타이완 방송국에서도 밤 늦게 급히 연락이 와 "이 씨의 사진을 삭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 씨의 사진을 사용했냐?"는 질문엔 "경찰 측에서 제공을 받았다. 출입국 당시 얼굴 식별 사진과 대조했지만 잘못된 사진을 사용했다"는 지금 글로 써봐도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했습니다. 실제 무전취식을 한 여성과 이 씨의 이름이 같기 떄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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